새누리당은 '싫어'... 민주당은 '자살골'

[총선 격전지-동대문 을] 홍준표-민병두, 모두 발바닥에 승부건다

등록 2012.03.17 14:13수정 2012.03.1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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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동대문을에 출마한 민병두 민주당 후보가 행인을 만나 살갑게 인사하고 있다. ⓒ 안홍기


"민 무슨 두, 그 사람은 많이 오던데요."

서울 답십리동 현대시장 근처의 한 분식집 60대 여사장은 선거 얘길 꺼내자 "나는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다"면서도 "아, 민병두 그 사람은 몇 번이나 오고 그러더라"고 말했다.

지난 2008년 17대 총선에서 홍준표 한나라당 후보에게 1만 표 이상의 큰 차이로 패배(37618표 대 27187표)한 민병두 민주당 후보가 낙선인사를 다니는 동시에 18대 총선 선거운동을 시작했다고 하더니 빈말이 아니었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유권자에게 이름은 알렸으니 말이다.

홍준표 후보에 대해 물었다. 이 여사장은 "홍준표씨야 물론 알지. 여기서 장사를 오래 했으니까. 그런데 잘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여사장은 누굴 찍을거냐는 질문에는 "아직 모르지. 그런데 우리 딸은 막 누구 찍으라고 하대. 그런데 뭐 찍으라고 해서 그 사람 찍나. 내 맘이지"라고 답했다.

답십리1·2동, 장안1·2동, 전농1·2동에 걸친 동대문을 지역구는 새누리당엔 자갈밭이라는 서울 동북권에 속해 있다. 그러나 그간의 총선 당선자를 보면 13대부터, 그러니까 1988년부터 민정당·민자당·한나라당 후보를 뽑아준 새누리당의 아성 같은 지역이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 거센 탄핵역풍에도 홍준표 한나라당 후보를 당선시켰다. 

전략가 민병두가 중앙정치에서 사라진 까닭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의 전략가 혹은 기획통으로 역할했던 민병두 후보가 복잡한 전략 따위 내던지고 시종일관 발로 뛴 것도 동대문을이 강남 못지않게 어려운 지역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15일 오전 장안동 전곡시장 앞에서 만난 민 후보는 "18대 총선에서 패배한 뒤 두 가지 방향제시가 있었다. '민병두는 전략가로서 계속 담론을 생산하고 토론에 나서서 최전선에서 싸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고, '홍준표 의원이야말로 고공전투를 잘 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니 반대로 민병두는 중앙정치에서 잊히는 길로 가자. 오로지 발로 뛰자'는 제안이 또 하나인데, 후자를 택했다"며 "잘 한 선택인 것 같다. 이제 나만큼 동대문을을 잘 아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인사를 하는 민 후보는 말이 많았다. 시장 보러 나온 두 여성에게 "정아 어머니, 정아 고모였죠?", "머리 새로 하셨네?"라며 살갑게 말을 붙이고 "이번만은"이라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른 한 여성은 반갑게 인사하는 민 후보에게 "좀 전에 봤잖아요"라며 웃으며 지나쳤다.


민 후보는 전략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뭣한 '지역구 바닥 훑기'에 '작은 아들 전략'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민 후보는 홍 후보를 빗대 "큰 아들 잘 키워서 유학도 보내고 해서 큰 인물 되고 성공했는데, 정작 집안에는 무심한 거 아니냐"면서 자신은 '작은 아들'에 비유했다. "집에서 별로 잘 해주지도 못한 작은 아들이 집안일을 잘 챙기고 효도한다는 전략"이라는 것.

지역구를 얼마나 돌아다니는지, 이날 민심 취재에 나선 기자도 오전에 민 후보를 만난 뒤 오후 2시에 장안동 사거리에서 한번, 오후 3시쯤 장안동 우성 2차 아파트 앞에서 또 한번 마주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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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총선 서울 동대문을 민병두 민주당 후보. ⓒ 안홍기


정권심판론 작용, 2010년 지방선거부턴 민주당 승리지역

민 후보측에서는 'MB-홍준표 공동심판론'을 내세우고 있다. MB정권 초반 여당 원내대표를 맡았고, 또 한나라당 대표를 지내기도 한 홍 후보가 정권 실정에 같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 이에 더해 최근의 선거 상황은 '동대문을은 보수정당의 텃밭이 아니다'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 정권심판론을 제대로 살리면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조짐은 MB정권 중반인 지난 2010년 6월 5회 지방선거에서부터 나타났다. 동대문구청장 선거에서 유덕열 민주당 후보가 방태원 한나라당 후보에 크게 승리했다. 동대문을에 해당하는 전농동·답십리동·장안동 개표결과만 봐도 38771표 대 28117표의 큰 차이다. 시의원 선거도 동대문3·4구를 민주당이 모두 이겼다.

같은 서울시장선거 전체 결과로는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가 한명숙 후보를 근소하게 눌렀지만 전농동·답십리동·장안동만 보면 오 후보는 33285표, 한 후보는 34421표로 민주당이 앞섰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그 격차는 더 크게 벌어져 같은 지역에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는 29604표를 박원순 야권후보는 35771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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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총선 서울 동대문을 홍준표 새누리당 후보 ⓒ 안홍기


홍준표 "심판론은 이제 잠잠, 인물 대 인물 구도"

그러나 홍준표 새누리당 후보가 승리를 장담하는 이유는 "이젠 심판론이 많이 잠잠해졌다"는 것. 

홍 후보는 이날 오전 장안동 선거사무소에 빨간 점퍼를 입고 나타났다.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상징색도 빨강으로 바꾸면서 이번 선거운동에선 홍 후보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강을 제대로 살린 셈이다.

홍 후보는 밝은 표정으로 "노래 부르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평소 노래 부르길 좋아하는 홍 후보가 지역구 내 노래교실이 열리는 2곳을 찾아가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걸로 선거운동을 하고 온 것.

홍 후보는 "공천을 받고, 선거운동을 시작하면서 이명박 정부 심판론을 가장 걱정했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했다. 홍 후보는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바뀌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공천을 통한 대규모 인적 쇄신을 하면서 MB정부와의 차별화를 극명하게 했다. 이제 유권자들이 '좀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홍 후보는 "선거는 바람인데, 정권 심판의 바람이 많이 약해졌다. 또 국회의원 선거는 당 대 당 대결도 있지만 인물 대 인물의 구도도 크게 작용한다"며 "내가 '서민대표'였고, 좌파정책이니 우파정책이니 없이 필요한 것이면 다 한 사람이니 심판론이 먹히지 않는다"고 장담했다.

장안동 사거리 부근의 50대 후반의 부동산 중개업자인 이아무개씨는 홍 후보와 비슷하게 이번 선거를 바라봤다. 이씨는 "홍준표 대표가 (당 대표직에서) 밀려나긴 했지만, 그 사람이 정치하면서 돈 받았다는 소리 들어본 적 없고, 크게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인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이 돈 먹고 이래서 사람들이 전부 한나라당(새누리당)을 싫어하는데, 지금은 좀 민주당이 자살골을 넣고 있다"고 진단했다. "큰 정당이면 국가 비전을 내놔야지, 제주도 해군기지 같은 데 가서 데모나 하고, 한·미FTA 되물리겠다고 하는 건 결코 좋게 비쳐지지는 않는다"며 "젊은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같이 50대 이상인 사람들은 그런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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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홍준표 새누리당 후보가 장안동 일대를 돌며 점포 안의 유권자를 향해 허리 굽혀 인사하고 있다. ⓒ 안홍기


홍 후보는 "밑바닥 선거운동이 강할 것 같지만 한계가 있다"고 했지만, 이날 오후 일정은 장안동 일대 '밑바닥 선거운동'이었다. 홍 후보로선 이례적인 선거운동이다. 홍 후보가 이렇게 골목골목 누비고 다닌 적이 없다는 게 홍 후보측 인사의 평가다.

이날 골목을 다니는 홍 후보는 철저하게 낮은 자세였다. 각 점포를 들어가서 인사를 하는데, 유권자를 보면 무조건 허리를 굽혀 인사부터 했다. 그러나 민 후보와 달리 말을 많이 하진 않았다. 그저 "저 또 왔습니다"하고, 이에 유권자가 아는 척을 하면 웃으며 손도 잡고 한 표를 부탁하는 순서였다.

유권자가 번거롭다고 여기거나 거만하게 보이는 것도 철저하게 피했다. 기자가 바싹 붙어다니면 유권자들이 불편하다며 멀찍이 떨어져 다닐 것을 요구했다. '저격수'로서 그동안 정권심판론 등 중앙정치 담론을 외치며 선거운동을 해왔던 홍 후보가 이제는 철저히 바닥민심 달래기로 선거운동 방식을 전환한 셈이다.

3개 여론조사 모두 오차범위 내 '엎치락 뒤치락'...대접전 예고

홍 후보가 '심판론은 없다'며 승리를 장담하면서도 이같이 선거운동 방식을 바꾼 것은 아무래도 이번 선거는 쉽지 않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당장 최근 실시된 3번의 언론 여론조사에서도 이같은 상황이 나타난다.

중앙일보와 엠브레인이 6~9일 실시한 여론조사(500명,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4.4% 포인트)에서 홍 후보는 35.7%를 얻어 29.2%를 얻은 민 후보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한국일보와 한국리서치가 9~11일 실시한 여론조사(600명,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4.0% 포인트)에서 홍 후보는 32.0%를 얻어 29.8%를 얻은 2.2% 포인트 앞섰다.

국민일보와 GH코리아가 9~10일 실시한 여론조사(500명,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4.4% 포인트)에서는 결과가 달랐다. 홍 후보는 39.7%를 얻어 43.5%를 얻은 민 후보에게 오차범위 내인 3.8%포인트 뒤지는 걸로 나왔다. 3차례 여론조사 모두 오차 범위 내에서 엎치락 뒤치락 하고 있고, 아직 선거 초반임을 감안하면, 홍준표 대 민병두의 대결은 쉽게 승부를 점칠 수 없는 대접전 양상이다.  

동대문을 도전자는 홍준표, 민병두 뿐이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동대문운동본부 공동선대위원장이었던 고현종 진보신당 후보와 동대문구 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이었던 김재전 무소속 후보가 출마했다. 중앙일보와 엠브레인 여론조사에서 고현종 후보는 2.2%, 김재전 후보는 3.4%를 얻었다. 홍 후보와 민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펼친다고 가정하면 고·김 후보가 어느 진영의 표를 얼마 만큼 득표하는가도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홍준표 #민병두 #동대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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