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3·15 부정선거 꿈꾸게 둘 수 없다

잘못된 3·15 부정선거 역사 돌아보며

등록 2012.03.16 14:57수정 2012.03.1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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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선거사에 잊을 수 없는 3·15 부정선거를 반 백년 만에 돌아본다. 온갖 부정선거를 자행하여 국민의 분노를 일으킨 부정선거는 김주열 학생의 죽음과 온 국민의 저항이 전국적으로 일어나 항의 데모가 계속되었다. 당시 서울은 4월 6일 야당의 주체로 국회의사당인 지금의 서울시의회 건물 앞에서 민주당 지도부와 당원을 중심으로 300명이 3·15 부정선거 항의 시위를 시작했다. 시청 앞을 지나 당신 반도호텔, 지금의 롯데호텔 앞으로 해서 을지로를 행진했다.


시위대는 일반 시민과 학생들까지 가세하여 어느덧 3천 명으로 늘어났다. 당시 고 2학생이던 필자도 그 대열에 끼어들었다. 구호는 주로 "3·15 부정선거 다시 하라" 와 "정부는 부정선거 가담자를 처벌하라"와 "이승만 정권은 물러나라"는 구호였다. 그런데 시위대는 을지로 4가를 돌아 종로4가를 향해 5천 명으로 불어났다. 그리고 종로로 행진할 때는 6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잠시 후에 광화문에 네거리에서는 중앙청으로 가자는 구호에 시위대열은 함성을 지르며 구름처럼 행진하며 항의했다.

3·15 부정선거 항의 시위, 300명 시작으로 6천 명까지 늘어나

그런데 경찰은 기마경찰을 동원하고 아울러 소방차를 동원하여 물대포를 쏘아댔다. 시위대열은 주춤했다. 이번에는 경무대로 가자는 구호가 나왔다. 종로경찰서 소속 경찰은 물론 경무대 경찰까지 중앙청 앞에서 성을 쌓았다. 요즘의 명박산성처럼 막고 있었다. 시위대는 할 수 없이 광화문 네거리에서 서울역 미도파 을지로 종로로 나뉘어 시위를 계속했다. 그때는 최루탄도 없었고, 경찰의 저항도 크지 않았다. 결국, 필자 같은 학생과 청년들은 모두 연행되었다. 난생처음 시위에 참여하고 종로경찰서에 구금되고 감옥에 갔었다.

당시 이승만의 정권은 헌법을 무시하고 3선 개헌을 단행하면서 "초대 대통령에 한해서는 대통령의 임기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영구집권의 길을 튼 헌법을 개정하여 12년을 독재정치를 하고 자유당 정권으로 영구집권을 꾀한 3·15 부정선거를 단행한 것이다.

부정선거는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조병옥이 치료차 도미한 미국 월터 리드 육군병원에서 사망하자 이승만 후보가 당선될 것이 분명해 진 상태에서 이승만이 사망 시에 승계권의 부통령 선거에 초점이 맞춰졌다. 부통령 후보로 나선 이승만, 이기붕은 '40% 사전투표', '3인조 또는 5인조에 의한 공개투표', '유령유권자 조작과 기권 강요 및 기권자의 대리투표', '내통식 기표소의 설치', '투표함 바꿔치기', '개표 때의 환표' '득표수 조작발표' 등 온갖 회귀한 방법의 부정선거를 계획하고 감행하였다. 그 결과 이승만, 이기붕이 각각 88.7%, 79%의 득표로 당선되었다고 공표되었다.


김주열 열사 죽음... 4월 19일부터 전국적, 전국민 항의 시위

그러나 국민은 자유당의 부정선거를 직접 보고 확인하였다. 분노를 넘어 항의 시위와 참여하여 이승만 정권 타도에 들어갔다. 당시 중학생이던 김주열 학생은 경찰이 쏜 총탄으로 숨졌다. 이를 은폐하기 위해 마산 앞바다에 돌멩이를 달아 완전히 수장하려 했으나 4일 만에 시체가 떠올라 온 국민을 분노케 한 것이다. 전국적으로는 산발적 시위였으나 4월 18일 고대생들이 안암동 교정을 나와 시가를 행진하고, 국회의사당에서 농성하였다. 이어 을지로 4가를 지나 학교로 가는 도중 임화수 이정재 깡패집단의 공격으로 피투성이가 되고 중상을 입은 학생이 수백 명이었다.

이로 인해 4월 19일부터 전국적으로 학생시위는 물론 일반인과 중·고등, 심지어는 초등학생까지 거리에서 항의 시위를 한 것이다.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여 송요찬 육군 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이었다. 그러나 군대 탱크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위는 거리를 누볐다.

이제는 구호가 "3·15 부정선거는 무효다! 이승만은 하야하라!"는 반정부의 시위와 항의가 계속되었다. 다행히 계엄군이 중도를 지키고 있었지만, 경무대를 향한 시위대를 향해 경무대 경찰은 총탄을 발포해 백 명이 넘게 마치 4월의 꽃잎이 떨어진 것처럼 쓰러져 죽어갔다. 계엄군도 이제는 시위대 편에 섰기에 발포하지 않고, 시위대는 탱크에 올라타 거리를 누볐다. 결국, 4월 24일 대학교수단 데모대들이 서울 거리를 행진할 때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했다. "국민이 물러가라면 물러가겠다"는 이승만의 발표에 4월 혁명은 결실을 맺고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 승계를 꿈꾸던 이기붕은 이강석의 총탄에 일가 4명이 자결하고,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7·29 선거는 이미 합의한 내각책임제 개헌으로 민 의원과 참 의원을 선출하여 민주당 신파의 장면이 총리가 되고 구파인 윤보선이 대통령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해방, 광복이라고 했지만, 남한만의 정권으로 12년 자유당 독제 정권을 학생과 민중이 4월 혁명으로 완성하는 듯했으나 민주당 정부 8개월 만에 소위 은인자중했다는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그로부터 군사문화는 40여 년 존속되었다.

박정희 소장은 3년의 군정을 하더니 제3공화국 헌법을 만들어 윤보선과 2번의 대선 경쟁에서 15만 표와 140만 표 차로 당선했지만, 사실은 군표와 기타 부정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승만과 닮은 3선 개헌을 불법으로 단행하더니 71년 선거에서 당선하고 이어 야당의 득세에 그만 유신헌법을 단행하여 종신 대통령을 하다가 유신의 심장에 총을 쏘았다는 김재규 중정부장의 총탄에 유신의 막을 내렸다.

4월 혁명, 192명 아까운 희생... 오는 4·11 선거 한반도에 중요한 선거  

지난 반 백년 전 3·15 부정선거로 발단한 4월 혁명은 192명이란 아까운 희생자를 내어 4·19 묘지에서 잠들고 있다. 그동안 많은 부정선거가 자행되어 국민을 아프게 하였지만 25년 전 6월 항쟁으로 유신 이후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는 항쟁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었다.

오늘의 선거에서도 여러 가지 부정의 유형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많이 발전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10·26 서울시장선거에서 나타난 '디도스' 같은 제2의 3·15 부정선거 같은 부정을 꿈꾸며 자행한 MB 정권이기에 아직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방송을 장악하여 3개 방송사가 투쟁을 벌이고 있는 면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번에 역사를 돌아보면서 3·15 부정선거 같은 구시대적 발상은 없어야 한다. 물론 올바른 공명선거를 정부는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아직도 책임이 밝혀지고 있지 않은 디도스 사건도 있지만, 공영방송이 편파보도를 자제해야 한다. 돌아오는 4·11 선거는 한반도에 중요한 선거라는 사실이다.

상식이 통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분단 67년의 아픔을 치유하는 평화통일도 우리는 방관해서는 안 된다. 4월 혁명은 한반도에 평화를 자주적으로 이루려는 통일 염원하기도 했다. 강정마을의 평화를 위한 노력도 계속해야 한다. 이미 다져진 민심이 천심이라는 지난 6·2선거와 10·26 선거를 상기하며 4월 총선에 임하는 국민이 되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52년만에 되돌아보는 3·15 부정선거는 엄연한 역사의 반면 교사다. 다시는 그런 불행만 반역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돌아오는 4월 11일 총선이야말로 중요한 선거이기에 지난 역사를 돌아보았다. 아직도 정권은 지난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지난 3·15 선거에 버금가는 '디도스' 부정획책에 우리는 방관해서는 안 된다. 바른 선거야 말로 상식이 통하는 사회와 나라를 세우는 일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52년만에 되돌아보는 3·15 부정선거는 엄연한 역사의 반면 교사다. 다시는 그런 불행만 반역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돌아오는 4월 11일 총선이야말로 중요한 선거이기에 지난 역사를 돌아보았다. 아직도 정권은 지난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지난 3·15 선거에 버금가는 '디도스' 부정획책에 우리는 방관해서는 안 된다. 바른 선거야 말로 상식이 통하는 사회와 나라를 세우는 일이 아닐까?
#3.15부정선거 #자주통일 #반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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