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에서 기획안 찢고, PD책상 뒤지고..."

MBC 노조, 유튜브에 PD수첩 부당검열 사례 공개

등록 2012.03.16 15:05수정 2012.03.1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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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안이 핫이슈가 벌어지면 항상 그 얘기를 한다. '시끄러운데, 우리는 시끄러울수록 조용히 하자' 그러다가 그 사안이 다 지나가고 나중에 후속으로 검증만 하겠다고 했을 때는 '아니, 이제 조용해졌는데 괜히 시끄럽게 만들지 말자' 이 두 마디로 모든 아이템을 다 막아왔다." (임채원 < PD수첩 > PD)

MBC 노동조합(이하 노조)이 파업 기간 중 만드는 자체제작 영상 <파워업 PD수첩>이 지난 1년간 < PD수첩 > 내부에서 벌어진 비상식적 인사조치와 아이템 검열 사례들을 공개했다. 15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23분여가량의 이 영상에는 < PD수첩 >에서 일했던 PD들의 증언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노조가 처음으로 지적한 것은 2011년 2월 윤길용 시사교양국장의 취임 직후 이뤄진 강제 인사 조치다. 윤길용 당시 시사교양국장은 < PD수첩 >의 김태현 CP, 홍상운 MC, 최승호·박건식·전성관·오행운 PD에 대한 인사조치를 단행했다. PD들은 윤 국장의 해명을 요구하며 간담회를 열었고, 윤 국장은 "원칙적으로 1년을 기준으로 (인사조치를) 했다"는 답변을 내놨다.

그러나 노조는 "전문성을 중시하는 방송사에서 일괄적인 1년 단위 인사는 유례를 찾기 힘든 조치였다"며 "권력형 비리를 폭로해온 최승호 PD의 강제 발령에 < PD수첩 >을 순치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지적했다.

최승호 PD는 <파워업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 "하고 싶어하고 실제로 잘하는 PD들을 대거 다른 데로 발령내 버린다는 것은 그 PD들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프로그램들이 상당히 많은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권력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서 방송을, 프로그램을 짓밟아버린 사례"라고 꼬집기도 했다.

'제주 7대자연경관 선정' 다루려던 PD 앞에서 기획안 찢어


a  15일 MBC 노동조합이 유튜브에 공개한 <파워업 PD수첩>의 한 장면

15일 MBC 노동조합이 유튜브에 공개한 <파워업 PD수첩>의 한 장면 ⓒ MBC 노동조합


아이템 검열 사례도 잦았다. <파워업 PD수첩>에 따르면, 남북경협 관련 아이템 취재차 답사길에 올랐던 김동희 PD는 김철진 부장으로부터 '돌아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에 따르지 않자 윤길용 국장은 '사내 위계질서를 깼다'며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고, '간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 것에 대해 사과하라'고 했다.

또한 이 아이템을 취재하자고 경영진을 설득한 이우환 PD는 경기도 용인 드라미아로, < PD수첩 > 팀은 아니었지만 윤길용 국장과의 간담회 사회를 보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던 한학수 PD는 경인지사 수원총국으로 발령받았다. 노조는 "제작PD 본인의 이견을 무시하고 비제작부서로 발령 낸 것은 유례가 드문 일"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이우환·한학수 PD는 법정 공방 끝에 다시 제작부서로 돌아왔다.


'남북경협'뿐만 아니라 '강정마을 해군기지 논란' '한미 FTA' '한진중공업' 등의 이슈는 모두 < PD수첩 >에서 제외됐다. '제주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을 다루려던 이중각 < PD수첩 > PD는 "팩트 체크 담당인 배연규 팀장이 '시청률 안 나온다' '남의 잔칫상에 재 뿌려서야 되겠냐' '제주도 사람들이 다 올라오면 어떻게 하냐'는 이야기를 하면서 기획안을 내 앞에서 찢고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말했다.

노조는 윤길용 국장의 뒤를 이어 김상수 신임 시사교양국장이 부임한 현재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최고참인 김영호 PD가 '한미FTA 발효 이후 서민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주목하겠다'고 설득해 허락을 받았으나, 해외 출장 중 취재 중단지시를 받았다"며 김영호 PD를 인터뷰했다.

김영호 PD는 이 영상에서 "3일간 연이어 김철진 부장과 1시간 이상 통화를 했다"며 "'어떻게 하면 이것이 안 나갈 수 있겠는가, 방법이 없겠는가'에 대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 PD는 "어쩜 옛날과 똑같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 PD수첩 >을 노태우 전 대통령 때 하고 지금 다시 하는데, 그때도 아예 원천적으로 봉쇄했다"며 씁쓸한 마음을 드러냈다.

한 작가의 문자 "방금 팀장님이 PD님의 책상을 뒤적뒤적..."

a  15일 MBC 노동조합이 유튜브에 공개한 <파워업 PD수첩>의 한 장면

15일 MBC 노동조합이 유튜브에 공개한 <파워업 PD수첩>의 한 장면 ⓒ MBC 노동조합


노조는 "이런 가운데 < PD수첩 > 팀장이 PD의 책상을 뒤지는 사건도 발생했다"고 전했다. 노조는 한 < PD수첩 > 작가가 담당 PD에게 "방금 팀장님이 PD님의 책상을 뒤적뒤적… 아이템이 무척 궁금하신 듯"이라고 보낸 문자를 공개했다.

또 임채원 PD는 "처음 발령받았을 때 주변 스태프가 '나갈 때 책상을 잠그고 가든가, 조심하라'고 해 이유를 물었더니 '팀장이 책상을 뒤진다'고 하더라"며 "주변에 물어보니 그게 만연한 일이었다, 작가들이 노트북을 잠그고 암호를 걸어놓고 나간다거나 휴대폰을 잠그고 나간다거나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고 토로했다.

또한 노조가 제시한 화면에는 김철진 부장이 한 PD의 책상에서 서류 묶음을 집어드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 김 부장은 "보기에 정신이 없어서 정리해 주고 청소해 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임채원 PD는 "아이템을 워낙 통제하니 PD들이 어떤 아이템을 할 지 터놓고 이야기를 못 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사교양국 PD들도 심적으로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파워업 PD수첩>에서 한 PD는 아이템 검열 후 스스로도 '칙칙하다'는 생각이 들어 치욕스럽기도 했다고 털어놨고, 또 다른 PD는 시사교양국이 아닌 다른 부서로 전출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임경식 < PD수첩 > PD는 당시의 상황을 아래와 같이 표현했다.

"'과연 우리는 누구와 싸우는 것인가'. 눈앞에 있는 팀장과 싸우는 것인가, 아니면 국장과 싸우는 것인가, 더 나아가 MBC 사장과 싸우는 것인가, 아니면 더 큰 어떤 존재와 싸우는 것인가를 알 수 없게 되어 버리니까 정말 그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평PD들 '한미FTA'편 불방 항의성명... MBC, 김정근 아나운서 등 4명 고소

a  15일 MBC 노동조합이 유튜브에 공개한 <파워업 PD수첩>의 한 장면

15일 MBC 노동조합이 유튜브에 공개한 <파워업 PD수첩>의 한 장면 ⓒ MBC 노동조합


한편, 15일 MBC 시사교양국 평PD협의회는 김영호 PD의 '한미FTA' 편 제작 보류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김재철 사장 체제의 < PD수첩 >이 숱하게 겪은 검열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비노조원을 대상으로도 멈추질 않고 있다"며 "여야 간 의견이 다른 쟁점에 대해 보도를 금하는 선거방송준칙이 존재하는가?"라고 반발했다.

이들은 "참여정부 당시 한미FTA에 대해 < PD수첩 >에서는 2차례 연속 방송을 통해 국민적 환기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며 "비판적 내용에 대해 정부와 갈등을 벌인 적이 있기는 했지만 방송 자체가 불가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들은 "유독 김재철 체제의 <PD수첩>에서 한미FTA라는 주제는 세 번이나 아이템 채택조차 불가능했고, 이번에는 비노조원이 제작하던 방송마저 제작중단 지시를 받게 되었다"며 "우리는 한미FTA에 대한 보도지침 이상의 보도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일련의 사태들에 대해 <파워업 PD수첩>에서는 영상에서 지목된 김철진 부장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으나, 김 부장은 14일 제작진에 "<파워업 PD수첩>의 제작·전파가 사규에 저촉된다 판단한다"며 "<파워업 PD수첩> 제작용 질의서에 대한 답변 행위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라는 답변만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MBC는 16일 노조의 또다른 파업 관련 동영상인 <제대로 뉴스데스크>에 관여한 노조 집행부 4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정영하 노조위원장, 이용마 노조 홍보국장을 비롯해 내레이션을 맡은 김정근 아나운서도 포함되어 있다.

MBC는 보도자료를 통해 "피고소인 4인은 파업기간 중 총파업특보 및 동영상 <제대로 뉴스데스크 1회 -김재철을 찾아라>, <제대로 뉴스데스크 3, 4회-숙박왕 김재철 스페셜 1, 2탄>을 제작하고, 김재철 사장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김 사장의 사회적 명성과 인격을 훼손했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PD수첩 #피디수첩 #MBC 파업 #한미FTA #강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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