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남자, 전라도에 푹 빠진 사연은?

전남 여수 박진용 화백..."예술활동 하기엔 전남이 으뜸"

등록 2012.03.19 15:02수정 2012.03.1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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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에 정착한 해양화가 박진용 화백이 바닷가에 있는 작업실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 이돈삼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근데 예술활동을 하려면 전라도로 가야 해요. 나는 더 나은 예술활동을 하기 위해서 왔어요. 전라도 여수로."


이른바 '해양화가'로 알려진 박진용(65) 화백이 전남에 둥지를 튼 이유다. 박 화백은 경상북도 포항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오랫동안 산 '경상도 사내'였다. 탯자리가 바닷가인지라 어려서부터 바다와 친구하며 지냈다. 오랜 기간 외항선을 타고 80여 개 나라를 누빈 마도로스이기도 했다. 바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이었다.

그림 그리기는 학창시절부터 좋아했다. 본격적인 그림 인생은 지난 1975년 세계적인 화가 고갱의 박물관을 찾은 게 계기였다. 원색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고갱의 작품을 보는 순간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진한 감동이 느껴졌다.

이후 외국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미술관을 찾아다녔다. 그림의 소재도 자연스레 바다가 됐다. 그는 천부적인 소질로 눈에 담은 바다 풍광을 자신의 예술세계로 승화시켰다. 크고 작은 전시회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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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미래로. 바다를 주제로 한 해양화가 박진용 화백의 작품이다. ⓒ 박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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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용 화백이 그의 작품 무대가 되는 여수 바다를 가리키고 있다. ⓒ 이돈삼


그림에 매료되면서 전라도가 그리워졌다. 전라도에는 내로라하는 예술작가들이 많았다. 주민들의 예술작품을 보는 시각과 수준도 높았다.

"지난 2001년이었어요. 여수가 세계박람회 유치에 처음 도전할 때였죠. 당시 해양수산부에서 박람회유치 기원전을 열었는데요. 그 전시를 통해서 전라도 사람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내 고향 사람들처럼 정말 따뜻하게 대해 주더라고요. 그때부터 전라도를 가끔 찾았죠."


발품을 팔며 직접 돌아본 전라도는 정말 아름다웠다. 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수많은 섬과 갯바위에 매력적이었다. 하나하나가 모두 작품의 소재로 충분했다. 싸목싸목 사는 전라도 사람들의 인심과 정도 도타웠다. 한 마디로 "뿅 갔다"는 게 그의 표현이다.

전라도 인심과 정에 '뿅'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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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용 화백이 손수 모은 조개껍데기들. 그의 작품 재료로 활용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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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용 화백의 작품. 여수 바다와 해돋이를 표현하고 있다. ⓒ 이돈삼


박 화백은 그 길로 이삿짐을 꾸렸다. 여수의 한적한 바닷가인 돌산도 죽포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지난 2008년 2월이었다. 그는 돌산도 바닷가에서 파도소리를 벗삼아 붓을 잡았다. 잠에 들고 일어나는 시간에도 파도소리가 함께 했다.

틈나면 바닷가로 나가 오랫동안 파도가 다듬어놓은 조개껍데기를 주웠다. 이것은 작품의 소재로 제격이었다. 바닷가에서 건진 마른 불가사리까지도 미술작품의 소재로 활용한다. 올해로 5년째다.

삶터가 여수로 바뀌면서 그의 작품 수준도 한층 높아졌다. 미술평론가들도 그의 작품이 한층 발효·숙성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박 화백의 그림에는 그의 삶이 투영돼 있다고. 바다 풍광을 자신의 예술세계로 정제시켰다고. 그러면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회화적 언어를 갖게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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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용 화백이 여수 향일암 가는 길에서 벽화 작업을 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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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일암에서 내려오는 여행객들이 박진용 화백이 그리고 있는 벽화를 보고 있다. ⓒ 이돈삼


박 화백은 자신이 사는 여수에서 열릴 2012세계박람회에도 관심이 많다. 하여, 박람회장 공사를 시작할 때 기공 기념전도 가졌다. 박람회조직위원회 문화예술자문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오는 5월 12일 박람회 개막을 전후해 기념전을 갖는 것도 조직위원회와 협의하고 있다. 향일암으로 가는 길목 담벼락에 손수 벽화를 그리는 것도 박람회의 성공 개최를 비는 마음으로 하는 자원봉사다.

그동안 바다를 소재로 한 개인전과 초대전, 단체전 등을 수십 차례 연 박 화백은 "전라도에서의 생활이 매우 만족스럽다"면서 "앞으로도 바다와 함께, 역동적인 바다를 화폭에 담으며 뼛속까지 전라도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단장되지 못한 처소는 좋은 작품을 위한 불편쯤으로 여기고 있다"는 그에게서 전라도사람보다도 더 전라도사람다움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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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화가' 박진용 화백이 그의 작업실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돈삼

#해양화가 #박진용 #귀촌 #여수 #돌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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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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