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농약 '기적의 사과'... 꼭 키워낼 겁니다

3년째 방치된 죄 없는 사과나무... 포기대신 다시 희망을 붙잡다

등록 2012.03.21 18:18수정 2012.03.2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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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를 본 이웃들이 딱하거나 아님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는다.


"사과나무가 왜 저래요?"
"사과 언제나 먹을 수 있는가?"

집을 짓고 다음 해, 그러니까 2010년 봄. 집 앞 300평 땅에 사과나무를 심었다. 부사와 홍로, 1년생과 2년생을 섞어서 60여 그루를 심었다. 마침 서울서 내려온 친구와 함께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심고 물을 줬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가슴 뿌듯한 명구를 되새기며 시원한 막걸리까지 맛나게 들이켰다. 그리고 3년 차.

기적의 사과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

당시엔 신중에 신중,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 선택한 작목이었다. 포도, 오이, 감나무, 뽕나무, 블루베리, 복숭아 등등 선택의 여지는 다양했다. 주변에서는 돈을 벌려면 무조건 포도나무 아니면 오이 농사를 해야 한다고 강권했다.


"그냥 하던 거 계속해. 다른 거 하면 골치만 아퍼."

결국 사과나무를 선택했다. 우선 시설비도 들지 않고, 나무 수명도 30년 이상으로 길다는 이유 등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서 화제가 된 '기적의 사과나무'(친자연 농법으로 길러 사과가 썩지 않는다고 한다)에 정신적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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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하게 서 있는 사과나무 3년 된 사과나무가 겨우 숨이나 쉬 듯 힘들게 서 있다. ⓒ 이종락


나도 한 번 '무농약 사과'에 도전하고 싶은 의지가 너무 강했던 것이다.

첫 해, 살충제 대신 난황유를 뿌리고 목초액을 치고, 풀을 매줬다. 그리고 주변의 조언대로 거름은 주지 않고 넘어 갔다. 주변에선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뽑아버리고 포도나 오이를 심으라"고 채근했다.

그 해 겨울, 극심한 동해로 유목들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 가운데 사과나무 역시 동해를 입은 듯했다. 60여 그루 중 한 그루에서 꽃 한 송이 피운 게 전부였다. 그나마 얼어 죽지 않음을 다행이라 여겨야 했다.

이미 나무는 심각한 성장 장애를 입은 상태였다. 그 와중에 포도농사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핑계로 사과나무는 거의 방치 상태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풀이나 겨우 잡아줄 정도로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올해 3년 차. 나무는 겨우 연명이나 하듯 크지도 굵어지지도 않은 채 덩그러니 서 있다. 2년 동안 온갖 벌레에 시달리고 살아남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이웃들이 한마디 할 때마다 나는 되레 큰소리(?)를 치곤했다.

"이 나무가 그래도 동해 피해 입고, 무농약으로 살아남은 아주 강한 나무들이야!"

귀농해서 무농약으로 사과농사를 짓다가 경제상황만 어려워지고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들이 옆구리 시리게 들려왔다. 휘어진 회초리처럼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사과나무를 오랫동안 먼발치서 바라보다가 사과나무를 포기하기로 했다.

포도도 무농약을 못하는데 가장 약을 많이 친다는 사과 농사를 과연 할 수 있을 것인가. '차라리 일찍이 접자' '고추라도 많이 심어 자급자족이라도 해보자'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막상 포기하자니 지난 세월이 아쉬웠고 가슴이 착잡해졌다.

앙상한 사과나무 '우리가 무슨 죄?'

사과나무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할 요량으로 간만에 가까이 다가갔다.

한참을 바라보니 주인 닮아 앙상하게 서 있는 나무와 나, 모두가 참으로 불쌍하다는 회한이 밀려왔다. 몇 그루는 이미 죽었고, 불면 날아갈 정도로 가녀리게 살아있는 사과나무를 둘러보면서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심한 농부를 만나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있던 사과나무들. 쌀쌀한 봄바람에 추운 듯 힘들게 서 있는 나무들이 내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주인님, 제발 포기하지 말아요. 거름도 주고 벌레도 잡고 해주세요.'
'우리가 무슨 죄가 있나요?'

일순, 나무에 대한 미안감과 못난 농부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우루루 밀려오면서 사과나무를 다시 잡아보기로 했다.

'그래, 한 번 더 도전해보자. 그동안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나무인데, 이렇게 살아있다. 이제 거름도 듬뿍 주고 친환경 약도 열심히 쳐주고 올해 한 번 더 해보자.'

부활의 욕구가 가슴 속에 거세게 살아났다. 어줍잖은 남자의 오기도 다시 생겨났다.

'그래 남자가 한 번 심었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살려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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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름을 준 사과밭 앙상한 사과나무에 포기 대신 희망의 거름을 주다. ⓒ 이종락


당장 퇴비를 옮기고 나무 주변을 정리해가면서 퇴비를 뿌려 줬다.

나무 주변이 검은 퇴비로 덧칠되면서 마치 내가 보약을 먹은 것처럼 뿌듯했다. 며칠 후 비  오기 전에 다시 거름을 흙과 섞어줬다. 비오면 빨리 잘 스며들라고. 그리고 다시 가지치기 작업도 해줬다. 어서 빨리 거름이 스며들어 기진맥진한 사과나무에 기운을 불어넣어주길 마음으로 빌었다.

'기적의 사과'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무심한 농부를 만나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나무를 보니 너무도 미안한 생각에 올해는 나무를 위해 먹을 것 먹여주고, 줄 것들을 주고, 노력을 기울이고 싶은 마음이다.

일 년에 열 몇 차례 약을 쳐야 한다는 사과. 껍질을 깎아 먹어도 불안한 사과. 내 손으로 껍질째 먹는 사과를 한번 키워 보고 싶은 도전은 올해도 계속될 것 같다.
#사과 #무농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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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찬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을 존경하고 깨어있는 농부가 되려고 노력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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