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한미FTA, 설계도 아닌 시공의 문제"

충남도지사, 투자유치차 방미... "제주 해군기지 등 민주적 리더십 부재"

등록 2012.03.23 14:23수정 2012.03.23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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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지난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한미 FTA.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지난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한미 FTA.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 최경준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지난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한미 FTA.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 최경준

"설계도의 문제가 아니다. 설계도는 그렇게 가야 하고, 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시공 능력에 있다."

 

해외 투자유치를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인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지난 2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동포·기자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지난 15일부터 발효된 한미FTA(자유무역협정)를 설계도에 빗대, 향후 대비책 마련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야권과 시민단체에서는 "한미FTA가 ISD(투자자-국가 제소조항) 등 독소조항을 포함한 불평등 협정"이라며 개정 내지는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안 지사도 이를 의식한 듯 "이 얘기를 잘못하면 (한미FTA) 찬성이냐 반대냐고 묻는데, 지금은 찬반 가지고 다뤄야 할 국가 주제는 별로 없다"며 "정치적 쟁점을 찬반으로만 가져가면 국가가 굉장히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FTA 문제를 두고 찬반, 선악으로 싸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안 지사는 한미FTA, 제주 해군기지 등 노무현 정부 때 추진했던 대형 사업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MB 정부의) 민주주의 리더십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정부 시절 시작한 일... 모르는 척 반대는 내 길 아냐"

 

"안희정 도지사는 민주당 내에서 유일하게 한미FTA를 찬성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혹시 (당내에서) 해코지는 안 당했는지 걱정이다."

 

한 재미동포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사회자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그러나 다른 참석자들은 불쾌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동포간담회 참석한 6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보름 전 주미 한국대사관 앞에서 '한미FTA 반대' 시위를 벌였던 동포들이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은 안희정 도지사의 표정에도 잠시 당혹감이 스쳤다. 행사장 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안 지사의 답변이 이어졌다.

 

"똑같은 감기약을 지으러 가도 사람의 체질에 따라 처방전이 다르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각 나라마다 개방의 속도와 방법은 굉장히 어려운 주제다. 이것을 가지고 찬반, 선악으로 싸우면 안 된다. 서로 간에 논의를 해야 할 문제이다. 저는 사실 한미FTA에 대해서 특별히 얘기한 게 없다. '참여정부 시절에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모르는 척 하면서 반대하는 것은 제가 선택할 길이 아니다'는 정도가 그동안 제가 했던 말이다."

 

안 지사의 애매한 답변에 한미FTA를 반대하는 참석자들의 표정에는 다시 한 번 실망감이 어렸다. 일부 참석자들은 굳은 표정으로 안 지사의 다음 말을 기대했지만, 안 지사는 한미FTA에 대한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다른 주제로 답변을 이어갔다.

 

앞서 안 지사는 인사말을 통해 한미FTA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간접적으로나마 피력했다. 그는 "한미FTA에 대한 (찬반) 논쟁은 20세기적 대립 구도의 연장선상에서 서로 간에 싸우는 것"이라며 "지금은 국가의 역할과 재정마련 방안을 두고 논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 참석한 안희정 충남도지사.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 참석한 안희정 충남도지사. ⓒ 최경준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 참석한 안희정 충남도지사. ⓒ 최경준

"개방화요? 전 세계적으로 서로 경쟁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것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흘러가는 흐름과 같다. 그것이 미국식이냐, 유럽식이냐 하는 것은 한 국가의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논쟁이지, 개방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논쟁은 아니다. 개방을 허락하면 뭔가 옳지 않고 보수적인 것, 내수에 기반한 국가경제의 틀로 주장하면 진보적인 가치라고 하는 것은 20세기의 선입견이 묻어있는 논쟁이다."

 

동포간담회에 이은 기자간담회에서도 한미FTA 문제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특히 기자들은 한미FTA 문제와 함께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 등 노무현 정부 때 추진했던 대형 사업들이 정권이 바뀐 뒤에도 계속 논란을 빚고 있는 것에 대한 안 지사의 입장을 물었다. 이에 대해 안 지사는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리더십의 부재"를 지적했다.

 

"역시 국가의 민주주의 수준과 품격은 민주주의 리더십에 있는 것 같다. 부안 방사능폐기물처리장 건은 부안 군수가 해당 장관에게 청원해서 추진됐지만 두 달 동안 주민들이 반대해서 결국 원점으로 돌렸다. 국민들과 대화를 하면 많은 어려운 문제가 풀릴 수 있다는 점에서 대화의 리더십이 정말로 필요하다. 해군기지가 있어야 한다고 하면 그것을 반대할 국민이 별로 없을 것인데, 그 싸움을 이렇게 격하게 만드는 것은 민주주의의 리더십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안 지사는 또 한미FTA 문제와 관련 "문제는 설계도가 아니라 시공 능력"이라며 그 대안으로 지난 2006년 참여정부 시절 성장과 복지의 동반성장을 위해 제시된 '국가비전 2030'을 제시했다. 

 

"시장 개방으로 인해 초래되는 고용의 불안정성, 양극화, 산업 간의 경쟁요소에 대한 불균등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가 기본 수요를 어느 정도 책임져 줘야 한다. 실업자가 되어도 내 자식이 학교에 못가는 불행은 막아주는 것, 실업자가 되어도 너무 비인간적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아 주는 것, 또 다른 재기의 기회를 보장해주는 것, 이런 것을 국가가 더 개입해서 다른 방식으로 디자인해야 하고, 그것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 때 추진했던 '비전 2030'이었다."

 

안 지사는 이어 "(이명박 정부가) '비전 2030'이 가지고 있는 국가의 비전과 제도에 대한 정비를 한방에 조세감면과 부자감세로 없애고 나서 한미FTA만 추진한다면 감기약 지으러 갔는데, 위장약 빼고 항생제만 처방하는 것과 똑같다"고 지적했다.

 

"2010년 2월에 이명박 대통령이 '비전 2040'을 발표했는데, 그 안에는 재정계획이 없다. 재정계획 없는 비전은 아무 의미가 없다. 국가가 어떤 형태로 시장 개방에 대한 대응 체제를 갖출 것인가의 문제는 재정과 국가의 기본 수요에 대한 디자인이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논쟁은 거기에 집중 되어야 한다. 그게 시공 능력이다."

 

그러나 안 지사는 참여정부 시절 한미FTA와 제주 해군기지를 추진했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반대 입장으로 선회한 민주통합당에 대한 평가는 유보했다. 그는 "총선을 앞두고 있지 않느냐"며 "가뜩이나 뜨거운 판에 제가 기름 그릇에 뛰어들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지난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한미 FTA.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지난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한미 FTA.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 최경준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지난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서 한미 FTA.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 최경준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파업하는 특파원들'

 

한편, 동포간담회에서는 안 지사를 향해 '만일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국가를 만들고 싶은가', '지금 읽고 있는 책 3권은 무엇이냐' 등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김한엽 미주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의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했는데, 국가가 시장을 어떤 방법으로 견제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안 지사는 "노 전 대통령의 말은 거대한 (특정) 대기업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라 시장의 원리가 국가의 지배적 운영 원리가 됐다는 뜻"이라며 "시장으로 넘어간 권력이 좀 더 인간의 얼굴을 하려면 민주주의가 잘 확립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참석자는 "안 지사에게 물어보고 싶은 질문도 많고, 토론도 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20여 명의 워싱턴 특파원들이 참석, 안 지사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참석한 특파원들의 3분의 1 이상이 국내 언론 자유를 위한 자사 파업에 동참하고 있어서 안 지사와 실질적인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기가 어려웠다. 한 기자는 "괜히 질문했다가 중요한 답변이라도 하면 파업 때문에 기사도 못 쓰고 난처해지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안희정 지사는 지난 19일부터 시작한 미국 방문을 통해 총 2억4천만 달러 상당의 외자를 충남도에 유치하게 됐다. 안 지사는 25일까지 미국 세인트루이스, 알렌타운 등 4개 도시를 잇달아 방문한다. 그는 "이번 순방은 천안·아산지역에 실리콘웨이퍼 및 산업용가스 생산 공장 증설을 위해 미국의 2개 글로벌기업과 외자유치 MOU를 체결하는 경제외교활동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한미FTA #강정마을 해군기지 #안희정 #충남도지사 #워싱턴 동포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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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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