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원짜리 옷 입은 효과...다 나만 따라와

[체험기] 인형탈 쓰고 한 '선거 참여 캠페인'... "청년의 힘을 보여줘"

등록 2012.04.03 14:09수정 2012.04.0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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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 투표 공짜, 꼭 해! ⓒ 윤형준


4·11 총선까지 남은 날짜가 드디어 한 자리 숫자로 떨어졌다. 선거 운동 허용기간으로 들어선 이후 후보들의 선거 운동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이와 함께 선거 캠페인의 열기도 달아오르고 있다. '달인' 김병만이 빨간 원 안에 들어가 기표도장 형태를 만들어낸 CF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방송 3사의 아나운서가 모델로 등장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현수막도 길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개인이나 단체가 시행하는 선거 참여 캠페인도 있다. 이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선거 참여 캠페인을 하고 있다.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 총선 때도 선거 참여 캠페인을 하기로 했다는 강인웅(25)씨를 만나 함께 캠페인을 하며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30만 원짜리 인형탈 쓰고 나선 거리... "사진 찍어도 돼요?"

강씨와 기자가 캠페인을 벌이기로 한 곳은 경기도 고양시의 호수공원. 지하철역과 인접해 있고 웨스턴돔, 라페스타라는 고양시의 양대 번화가를 끼고 있어 이 지역에서는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3월 31일 오전 9시, 자기 몸보다 큰 주황색 보자기를 들고 나타난 강씨를 만났다. 보자기 속에 들어 있는 내용물은 다름 아닌 강아지 인형탈. 지난 6·2 지방선거 때는 곰 인형탈을 대여했는데 대여비 8만 원에 보증금이 10만 원이었단다. 강씨는 대여비를 따로 내면서도 보증금 때문에 깨끗이 써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느니 하나 사는 게 낫겠다 싶어 이번엔 아예 30만 원을 들여 인형탈을 장만했다고 한다.

그는 인형탈과 함께 판넬 두 개를 들고 왔다. 하나에는 '4월 11일 청년의 힘을 보여줘', 다른 하나에는 '특종 투표 공짜 꼭 해'라고 적혀 있었다. 선관위나 유력 NGO들의 작품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뜻만은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 듯했다. 강씨가 이런 캠페인은 시작한 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재미있어 보이고 의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난 2010년 처음으로 인형탈을 쓰게 됐단다. 이날은 강씨 대신 기자가 먼저 인형탈을 쓰고 거리에 나섰다.

인형탈을 쓴 채 호수공원 광장 가운데에 서자마자 중년의 아저씨가 다가온다. 트위터에 올릴 사진을 함께 찍어달라는 요청이었다. 별 것도 아닌데 괜히 뿌듯하다. 아저씨와 사진을 찍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번엔 근처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던 한 후보가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사진을 찍잔다. 오늘, 느낌이 좋다.


바람은 불고 앞은 잘 안 보이고... "투표 꼭 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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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탈 머리 부분, 스티로폼으로 내부가 채워져 있어 매우 답답하다. ⓒ 윤형준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광장에 서있는데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인형탈을 쓰고 있으면 더워서 고생한다'는 말을 들어 옷을 얇게 입고 나갔는데, 봉변이었다. 사람은 두 명이고 인형탈은 하나였으니 한 명은 꼼짝없이 추위에 떨 수밖에.

인형탈도 마냥 편한 것은 아니었다. 탈의 머리 부분 80% 이상이 스티로폼으로 되어 있어 답답하고 통풍도 잘 되지 않았다. 시야도 제한돼 굉장히 불편했지만 강한 바람 때문에 서로 인형탈을 쓰고 싶어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이것 보다 우리를 힘들게 했던 건 '청년층의 무관심'이었다. 강씨는 '인형탈'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이유가 "얼굴을 가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신기하고 재밌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원 한복판에서 인형탈을 쓴 정도로는 청년층의 관심을 유도해내기 힘들었다. 토요일 오전 시간이라 청년층이 많이 지나가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지나가는 이들도 한번 슬쩍 보고는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11일이 투표일인지도 모르고 있었을 사람들에게, 이를 알려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자위했지만, 어떤 청년이 지나가며 스치듯 던진 말에 힘이 쭉 빠졌다.

"투표, 꼭 해야 돼?"

선거가 다가오며 각 정당과 언론사들이 저마다 다른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그들의 말 중에도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번 총선에서 '20대'가 큰 변수가 될 것이고, '20대 투표율'이 승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20대 투표율이 40%를 넘겼던 두 번의 선거, 즉 2004년 17대 총선과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는 진보·개혁 정당이 크게 이겼고, 20대 투표율이 60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0~30%대를 기록했던 16대·18대 총선에서는 보수 정당이 크게 이겼다. 게다가 지금은 등록금이나 청년 실업 문제와 같은 이슈들이 현안으로 떠올라 있는 상태다. 그러니 만약 그 청년과 다시 마주친다면 이젠 말할 수 있다. "어, 투표 꼭 해야 돼"라고.

가슴을 울린 한 마디 "저희도 2년 뒤에 투표 꼭 할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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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총선, 청년의 힘을 보여줘 ⓒ 윤형준


인형탈에 가장 큰 호응을 보였던 건 다름 아닌 꼬마아이들과 여학생들이었다. 꼬마아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인형탈을 신기해했고 몇몇 아이는 진짜 강아지인지 확인해본다며 탈을 벗기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꼬마아이들이 워낙 좋아하니,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던 부모님들도 미소를 지으며 우리의 캠페인을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고양시 지역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라 그런지, 다른 캠페인과 설문조사를 하고 있던 학생들도 많았다. 헌혈 캠페인을 하고 있던 학생도 있었고, 학교폭력과 관련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던 학생들도 있었다. 오전 11시 쯤 되었을까, 설문조사를 진행하던 학생들이 갑자기 다가와 우리에게도 설문조사 피켓에 스티커를 붙여주길 요청했다. 스티커를 붙이고 나니 한 학생이 손에 사탕을 몇 개 쥐어준다. "좋은 일 하시는데, 이거라도 드세요." 그리고, 다른 학생의 한 마디가 뒤통수를 친다.

"수고하세요. 저희도 2년 뒤에 투표 꼭 할게요."

그 한 마디가 주는 힘이라니, 청년층의 무관심에 받은 서운함과 추위가 한 번에 날아갔다. '그래, 지금 당장은 이런 캠페인이 효과가 없을지라도, 언젠가는 빛을 볼 날이 있겠지. 이 학생들이 자라서 투표를 하고, 이런 캠페인을 봤던 꼬마아이들이 언젠가 또 이런 캠페인을 진행하고…' 그런 생각을 하며 남은 시간은 즐겁게 캠페인을 진행할 수 있었다.

오전 9시에 시작했던 캠페인은 오후 1시쯤 끝이 났다. 추위도 추위지만, 바람 때문에 들고 있던 판넬이 부러질 지경이었다. 캠페인을 끝내고 탈을 쓴 채 근처의 식당으로 향하는데, 총선 후보들의 선거전이 한창이었다. 그래,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앞으로 일주일간 이들과 마주칠 횟수가 차후 4년간 이들을 볼 기회보다 많겠지. "평소에 잘하겠다"는 어느 후보의 말은 결국 공약(空約)이 되어 버리겠지. 강씨와 약속이나 한 듯 옆구리에 끼웠던 판넬을 다시 꺼내 들고 걸었다.

"4월 11일, 청년의 힘을 보여줘"

덧붙이는 글 | 윤형준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윤형준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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