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리를 듣거나 글을 읽다보면 연상되는 것이 있습니다. 오붓한 산길, 나무 빼곡한 산길을 걷고 있을지라도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끼룩거리는 갈매기 소리가 들려오면 파도 철썩거리는 바닷가가 연상됩니다.
마찬가지로 뱃고동 뿌뿌거리는 바닷가일지라도 읽고 있는 책에서 '야호'라는 글을 읽게 되면 머릿속으로는 산꼭대기를 연상하게 됩니다.
정민 지음, 김영사 출판의 <일침>을 읽다보니 지금 여기서 느끼는 세태, MB 정권의 미래가 연상됩니다. <일침>은 한자 4자, 4자성어로 세상만사를 풍자하고, 질타하고, 직시하며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조롱, 호통, 지혜, 예지가 다 들어 있습니다.
침통에 빼곡하게 들어있는 침처럼 4자성어 하나하나는 따끔할 만큼 날카롭습니다. 회초리처럼 휘감아 때리기도 하고, 종아리를 문질러주는 어머니의 손처럼 부드럽기도 합니다. 한 방의 침이 막혔던 혈을 터주듯이 제대로 새기기만 하면 자아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필패지가', 틀림없이 망하게 되어있는 집안
김근행(金謹行)은 오랜 세월 권력자를 곁에서 섬긴 관록 있는 역관이었다. 그가 늙어 병들어 눕자, 젊은 역관 하나가 죽을 때까지 받들어 지켜야 할 가르침을 청했다. 그가 말했다.
"역관이란 재상이나 공경公卿을 곁에서 모실 수밖에 없네. 잘못되면 연루되어 큰 재앙을 입고 말지."
"필패지가必敗之家를 어찌 알아봅니까?" "내가 오래 살며 수많은 권력자들의 흥망을 이 두 눈으로 지켜보았지. 몇 가지 예를 들겠네. 첫째, 요직을 차지하고 앉아 말 만들기를 좋아하고, 손님을 청해 집 앞에 수레와 말이 법석대는 자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네. 둘째, 무뢰배 건달이나 이득 챙기려는 무리를 모아다가 일의 향방을 따지고 이문이나 취하려는 자 치고 오래가는 것을 봇 보았지. 셋째,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점쟁이나 잡술가(雜術家)를 청해 다가 공사 간에 길흉 묻기를 좋아하는 자도 틀림없이 망하고 마네. 넷째, 공연히 백성을 사랑하고 아랫사람을 예우한다는 명예를 얻고 싶어 거짓으로 말과 행실을 꾸며 유자儒者인 체 하는 자도 안 되지. 다섯째, 이것저것 서로 엮어 아침의 말과 낮의 행동이 다른 자는 근처에도 가지 말게. 여섯째, 으슥한 길에서 서로 작당하여 사대부와 사귀기를 좋아하는 자도 안 되지. 일곱째, 언제나 윗자리에 앉아야만 적성이 풀리는 자도 꼭 망하게 되어 있네. 윗사람을 모셔도 가려서 해야 하네. 그가 한번 실족하면 큰 재앙이 큰 재앙이 뒤따르지. 특히 잊지 말게나. 다른 사람이 자네를 누구의 사람이라고 손꼽아 말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되네." - <일침> 179쪽
대규모 국제회의, 무슨무슨 라인으로 회자되고 있는 사조직, 불법 사찰 등 작금의 정치 상황에 견줄 때 열거 된 일곱 가지 모두가 낯설지 않으니 '필패지가'라는 말에서 '필패정권'이라는 말이 연상됩니다. 에두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은인자중하지만 촌철살인으로 세상의 질곡을 질타하고, 작금의 정치현실을 단 4글자로 풍자하며 나아갈 정도를 지적하고 있음에 놀라울 뿐입니다.
4자로 구성된 말들이니 폐부를 뚫고 들어가는 침처럼 짧습니다. 침처럼 짧지만 오장육부와 사지를 다스릴 수 있는 침처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모두 바르게 아우를 수 있는 지혜가 담겼습니다.
긴급처방, '지지지지'
'지지지지(知止止止), <일침>에 나오는 4자 성어 중 하나로 '그칠 데를 알아서 그쳐야 할 때 그쳐라'라는 뜻입니다. 필패지가 아니 필패정권에 대한 긴급처방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무엇, 어떤 사람이라고 특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탐욕, 성냄, 불법 사찰, 권력남용, 탈법적 행위, 여타의 부정행위야 말로 그칠 데를 알아서 그쳐야 필패를 피할 수 있는 소로가 되다는 것을 귀뜸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자는 <일침>을 통해 필패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승자가 될 수 있는 지혜, 치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통렬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필패와 필승, 덕목을 갖추어야 할 치자는 고관대작이 아닌 우리 모두이며 일상입니다.
일침 一針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
정민 지음,
김영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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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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