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궁전의 내부. 가죽을 남긴 채 엎어져 있는 호랑이의 모습이 팔레비 레자 샤의 처지와 닮은 듯 하다.
김은주
녹색궁전에서 나와 팔레비 왕가의 개인 전시관을 가기 위해 셔틀버스를 기다렸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곳에는 이미 중국 관광객이 있었습니다. 여자 한 명에 남자들뿐이었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연령대로 보이는 남자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란인들은 중국 여행자들과 우리 일행을 부부 단체 여행자로 오해할 지도 모르겠다는 농담을 하면서 웃었습니다. 한 바탕 웃고 나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회화박물관은 별로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녹색궁전과 하얀 궁전만 구경하고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일행을 인솔하는 길대장이 그림을 전공하고 또 관심이 많았기에 그냥 따라간 정도로 갔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뜻밖의 수확이었습니다. 그림에 관심 없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좋은 그림을 감상하는 일은 재미있었습니다. 팔레비 왕가의 화려한 생활을 구경하는 것 하고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림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해석해보려는 지적 욕구를 느꼈습니다. 회화박물관은, 1층에는 추상화가 있고, 2층에는 사실주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그림은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아이의 모습이 담긴 그림인데, 아이의 아버지와 엄마는 잠에 빠져있고, 아이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는데, 아이에게 보이는 풍경은 환상적인 세계였습니다.
어른들이 모르는 세계에 대해 아이들은 깨어 있고, 깨어 있는 아이에게만 보이는 세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전공했고, 프랑스나 영국의 박물관에서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많이 봤던 길 대장이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예수의 모습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예수에게만 모이는 신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이 그림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를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종교에 관심 많은 나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반면에 작은 딸 하나는, 어떤 여자가 옥상에서 미소 지으며 꽃에 물주는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그 그림이 마음에 드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많이 놀랐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라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나름의 삶의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설명을 요약해보면, 삭막한 도시에서도 마음속에 밝음, 아름다움, 이런 걸 갖고 있으면 상황에 관계없이 행복할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작은 애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좁은 버스를 밤을 새워 타고 갈 때도, 두 끼를 연달아 굶을 때도, 추운 터미널에서 떨면서 몇 시간이고 기다릴 때도, 상황에 관계없이 항상 즐거워하던 하나다운 생각이었습니다.
반면에 큰애는, 어떤 엄마가 아이를 업고 돌다리를 건너는 그림을 베스트로 꼽았습니다. 아마도 큰애의 마음에는 내가 채워주지 못한 모성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연년생의 맏이로서 피할 수 없는 트라우마라고 생각합니다.
회화박물관에서 우린 그림을 보면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림을 통해 자신의 주 감정이나 생각, 가치관, 관심사를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다음에 누군가 간다면 이곳의 그림들을 구경하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을 찾아내는 놀이를 통해 자신을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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