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철화끈무늬병개성·창조·기교적인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생각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김정봉
"한국예술은 서구미술의 개인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천재성, 이성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 이원론에 기초한 표상주의, 엘리트주의 등의 한계를 넘어 무심, 자연, 무아의 토대위에 그려지는 것이다"라고 한 야나기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여기서 언급한 이성, 인간 중심적 사고는 유가사상이나 서양사상이 내세우는 진(進)의 사상이며 무심, 자연, 무아라는 것은 근본으로 되돌아가야한다는 귀(歸)의 사상, 즉 노자의 사상이다.
우리의 미에는 바른말이 마치 반대되는 것 같은 노자의 정언약반(正言若反)의 철학이 담겨있다. 고유섭은 "중국미술은 웅장한 건실미가 있으나 구수한 맛이 없고 일본예술은 세부까지 치밀하고 전체가 아름답게 정돈되어 있어도 큰 맛이 없는 반면 한국미술은 비록 작다하더라도 구수한 큰 맛이 있다"고 했다.
자연의 제약에서 오는 '작은 것'과 구수한 큰 맛에서 '크다'는 것은 서로 개념적으로 모순되면서도 서로 통할 수 있는 것은 절대성에 대한 부정에서 출발한다.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미는 없으며 세월의 흐름 속에 변화해가며 미가 추(醜)가되기도 하고 선이 불선(不善)이 되기도 한다.
최순우도 한국미(韓國美)속에 내재한 미적감정을 얘기하면서 "어설프면서도 깊이 있는 아름다움, 그런 것이 한국미다"라고 하고 있는데 '어설프다'와 '깊이 있다'라는 상반된 미적 감정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어설픈 것은 깊이 있는 것으로 전화(轉化)한다. 변증법적 구조다. 한국미는 구수하면서도 큰 맛이 있고 어설프면서도 깊이가 있다. 울음이 있으면서 웃음이 있다. 고유섭이 말한 "어른 같은 아해(아이)"와 통한다.
자연의 제약에서 오는 작은 것은 구수한 큰 맛으로, 어설픈 감정은 깊이 있는 감정으로 질적 전화해 가며 한국의 미가 형성되었다.
일본에서 큰 대접을 받는 조선막사발은 무명의 도공에 의해 무욕의 경지에서 무심히 만들어진 것이다. 너무나 평범해 보여 누구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유치원생이 도자기체험관에서 조몰락거리다 우연히 만든 그릇 같다. 어설프고 어수룩하고 구수하게만 보이지 않는다. 이 그릇에는 깊이가 있고 큰 맛이 있다. 그래서 이런 그릇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의 손을 빌려 만들었다고 하기까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