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적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시골 공직 사회도 경쟁의식은 여전한가 봅니다

등록 2012.04.24 12:00수정 2012.04.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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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여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하면서 받았던 상 중 가장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상패입니다.
20여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하면서 받았던 상 중 가장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상패입니다.신광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행운


"넌 뭔 짓거리를 하고 돌아다니기에 그 모양이냐?"


평소 친분이 두터운 <뉴시스> 통신사의 한윤식 국장에게서 전화를 받은 것은 2010년 10월 중순경이었습니다.

"어느 언론사에서 귀하를 국무총리 표창 추천을 했습니다. 그래서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저희 직원이 확인차 화천에 내려갈 것입니다."

지난해 가을, 국무총리실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공무원 신분으로 총리표창을 받는다는 것은 솔직히 가문의 영광입니다. 그것도 내부 공적조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추천을 받았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행운입니다.

"형님! 혹시 나한테 말 안 하고 쓸데없는 짓 한 거 있죠?"


표창을 추천할 만한 언론사는 평소 가까이 지냈던, <뉴시스> 한 국장밖에 없다는 생각에 물었더니 "그래, 전국적으로 볼 때 트위터를 통해 홍보하는 것도 그렇고, <오마이뉴스>에 지역의 소식을 풀어내는 것도 좀 별나다고 생각해서 추천은 했는데, 결과는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동료 직원으로부터 받은 내 점수는 표준미달


 언론사로부터 받은 감사패 등은 정부기관의 표창으로 이어지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언론사로부터 받은 감사패 등은 정부기관의 표창으로 이어지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신광태

"오늘, 누가 너에 대해서 묻기에 내가 아는 대로 말해줬다."

읍내에서 음식점을 운영하시는 어느 선배의 전화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던 국무총리 표창 건이 기억났습니다.

"뭐라고 묻던데요?"
"그냥 뭐, 네 행실이 어떤지? 지역에서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리거나 지역 주민에게 비친 이미지는 어떤지 그런 것을 물었던 거 같아!"
"그래서 뭐라고 하셨는데요?"
"그냥 있는 대로 형편없는 녀석이라고 했지!"

이 선배의 말처럼 총리실 담당자는 나에 대한 공적 확인을 떠나서 '이 사람 이 표창을 받을만한 기본적인 자질을 지녔는지 등등...'을 주민을 통해 확인한 것 같았습니다. 이어서 같은 날 오후, 화천군청을 방문, (내게 사전 언급 없이) 직원들 면담을 통해 "이 친구가 계장이란 직책을 이용해 하급직원들에게 부당한 지시를 하지는 않는지" 또는 "직원의 지탄의 대상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직원과의 유대관계는 원만한 지" 등에 대해 면담을 하고 갔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를 잘 모르는 주민이야 지역사회에 (내 소문이 어떻게 났던지) 본인이 듣거나 본대로 이야기를 했을 테지만, 직원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어서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습니다. 어느 날 "귀하께서 이번 표창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나중에 좋은 기회로 다시 뵙겠습니다"라는 문자를 총리실로부터 받았습니다. 머리를 쇠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받은 한 국장의 전화. "문제가 무엇인지 궁금해"냐며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맞장구쳐서 "형님, 혹시 나한테 어떤 문제가 있어서 탈락이 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 그래야 살면서 고쳐 나갈 것 아니냐"고 했더니, 어떻게 알아보기는 하겠답니다.

"너에 대해서 5명 정도의 주민에게 물었는데, 칭찬을 비롯한 좋은 말을 많이 했다는데, 직원들 5명 중 3명은 별로 좋지 않게 말했다더라."

다음날 만난 한 국장의 말은 "너에 대해 묻는 공무원 개별적인 질문에서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 사람 사실 알고 보면 별로다'"라는 식으로 폄하를 하신 분이 5명 중 3명. 즉 60% 부정적인 평가를 얻었으니 표준미달인 셈입니다.

적은 당신 가까이 있습니다

특별한 표창 공무원 신분으로 금년도 <오마이뉴스>로 부터 받은 2월20일 상도 수상했었습니다.
특별한 표창공무원 신분으로 금년도 <오마이뉴스>로 부터 받은 2월20일 상도 수상했었습니다.신광태

"내가 그렇게 문제투성이인가?"

퇴근 후 넋두리처럼 말하는 내게 집사람은 무슨 일이냐고 꼬치꼬치 캐묻습니다. "사실 이러저러해서 그렇게 됐다"고 말하자, "이번 일을 계기로 크게 배웠다고 생각하고 항상 겸손"하라고 "자신감도 좋지만 앞으로는 매사에 잘난 척하거나 우쭐해 하지 마라"고 경고합니다. 제 딴에는 위로라도 해 주길 기대했는데, 이게 뭔 소리입니까?

"입장 바꾸어 당신 같으면 어떻게 말했을 것 같아?"

아내는 내게 핀잔을 준 것이 못내 미안했던지 말을 건넵니다.

"글쎄, 뭐! 잘하면 잘한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봐! 공무원 조직이란 게 계급사회잖아. 특히 총리표창 정도면 가점을 받을 수 있잖아. 결정적일 때 당신은 그 사람들의 경쟁 상대가 되는데, 당신 같으면 좋은 쪽으로 말을 하겠냐?"

갑자기 집사람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시골 공직 사회에는 그나마 아직 인정이 남아 있고, 서로 감싸주는 '우리'라는 진한 결속력 내지는 동료의식이 남아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 혼자의 생각이었던 듯 싶습니다. 이 작은 사건을 통해 '도시 공무원의 경쟁의식이 조그만 시골에서는 이런 식으로 표출되고 있구나!'라는 씁쓸한 기분을 느낀 한 해였습니다.
#공무원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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