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죽느냐 사는냐"... 수양대군, 신숙주로 보다

[리뷰] 2012년 서울연극제 참가작 <전하의 봄>

등록 2012.04.25 11:34수정 2012.04.25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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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의 봄>(제작: 창작공동체 아르케) ⓒ 아르케

지난 24일, 2012년 서울연극제 참가작으로 26일(목)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전하의 봄>(제작: 창작공동체 아르케)을 보았다.

1928년 발표된 춘원 이광수의 역사소설 <단종애사(端宗哀史)>를 기본으로 하여, 1962년 발표된 신명순 작가의 <전하>를 원작으로,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구성한 이해성 작가의 <전하의 봄>은, 지난 2월에 공연되었던 연극<안티고네>의 김승철 연출자의 극중극 형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무려 50년 전에 쓰인 <전하>를 색깔 있는 연출가 김승철 선생이 2012년 대한민국의 현실에 딱 맞게 새롭게 부활한 문제작이다. 원작 <전하>(신명순 작)는 초연 당시에도 변화하려는 자와 변화하지 않으려는 자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지식인의 고뇌를 심도 깊게 그려,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호평을 받았던 화제작이었다.

2012년 올해는 <전하>가 써진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과거 냉철하고, 칼날 같은 현실 비판으로 연극계의 흐름을 주도했던 신명순 작가의 대표작을 재조명해 봄으로써 원작 <전하>의 주제가 반백년 시간의 격차를 두고도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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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의 봄>(제작: 창작공동체 아르케) ⓒ 아르케


이번 <전하의 봄>은 원로 연극인과 중견, 신진 연극인 모두를 아우르는 흥미로운 작품으로 적절한 시의성으로 인해 관객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수작이다. 이 연극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몸부림치는 인간 숙주의 갈등과 고뇌를 그리고 있다. 계유정란과 집현전 학사들의 반란, 단종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500년 전 역사를 빌어 오늘날 현대인들의 실존적 고뇌도 함께 말해주고 있다.

권력과 힘, 국가와 개인, 도덕과 양심을 부정하는 정치적 야망, 충과 효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개인의 관점 차이, 절대 선과 절대 악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사악함 등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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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의 봄>(제작: 창작공동체 아르케) ⓒ 아르케


2012년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도, 권력을 위한 거짓과 부정과 폭력은 난무하고 있다. 정치뿐 아니라 개인의 관계 속에서도 권력구조를 통한 폭력이 행해지고 있다. 정치는 정치인들만의 어휘인 것처럼 위장되어 있지만, 실은 우리 생활 전반을 보이지 않는 강력한 손으로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또한 개인의 욕망과 황금만능 풍조가 모여 지옥 같은 사회를 만들기도 하고, 선의가 모여 극락 같은 사회를 만들기도 한다. 그 사회를 이루는 개인의 심성 속에 이상도 있고 현실도 있다. 그 이상과 현실의 농도에 따라 괴물이 나올 수도 천사가 나올 수도 있다.

연극에 출연한 배우들은 역사와 현실을 통해 되풀이되고 있는 논쟁을 이 시대에 끌어와 질펀하게 입씨름을 해보이고 있다. 그 논쟁을 500년 뒤로 보낼 수 있다면 우리의 후세들은 <전하의 봄>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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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의 봄>(제작: 창작공동체 아르케) ⓒ 아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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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의 봄>(제작: 창작공동체 아르케) ⓒ 아르케


<전하의 봄>은 12세에 왕위에 오른 단종이 그의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쫓기어 강원 영월에서 죽은 역사적인 사실을 테마로 구상된 작품이다. 역사적 사실의 직시와 충군(忠君)사상을 고양하며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연극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조카를 왕에서 몰아내고 권좌에 오른 세조와 집현전의 동료 학사들을 배신하고 권력의 핵심이 된 숙주. 그리고 나라와 임금에 대한 열정과 애정은 함께 했지만, 권력 의지와 입신을 위해 다른 길을 가는 두 사람, 숙주와 성삼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세조와 숙주의 인간적인 고뇌와 충과 효의 문제에 대한 갈등은 연극 곳에서 숨어 있고, 배우들은 연습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의견 충돌 속에 고심한다. "왜, 이런 연극을 지금 공연을 하고 준비를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고 연출자에게 따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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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의 봄>(제작: 창작공동체 아르케) ⓒ 아르케


세조와의 보이지 않는 이해관계와 집현전 동료들과의 따돌림 속에서 고심하는 숙주와 옛 임금에 대한 충절을 간절하게 바라는 숙주의 아내 윤씨와의 갈등. 그리고 배우와 연출자, 선배와 후배, 연출자와 권력기관 혹은 극장주와의 대치, 대립관계를 지속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고뇌하고 고심하는 숙주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현실과 역사적 사실의 관계 속에서 고민하는 배우들의 모습에서 너무도 사실적으로 관객의 의문과 고민의 몫까지 해석해주는 작품이다. 특히 숙주역을 맡은 이형주씨의 고심과 고뇌는 "배역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한탄과 울부짖음으로 강하게 표출된다.

500년 전, 1000년 전에도 아니 수천 년 전에도, 동서양사 어디에서나 있었을 법한 이야기를 햄릿처럼 인간적인 고뇌와 고민 속에서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악이든 선이든 그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끝까지 신념을 버리지 않고 그길로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인간이라고 하면 누구나 겪게 되는 고뇌와 번뇌의 길이라는 것을 연극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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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의 봄>(제작: 창작공동체 아르케) ⓒ 아르케


연극 <전하의 봄>은 500년 전에도, 50년 전에도, 아니 지금도 늘 고뇌하고 고심하면서 다양한 선택의 길을 가야하는 인간의 문제를 햄릿과 수양대군, 신숙주의 이름을 빌어 세상 사람들에게 '칼이 춤추고 피가 운다. 고뇌는 언제 끝날 것인가?'라는 화두로 던져주는 작품이다. 
#전하의 봄 #창작공동체 아르케 #단종애사 #신숙주 #수양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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