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구 해군기지 공사현장 앞에서 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제주 해군기지의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유성호
참여정부와 비교할 때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전면 재검토하고, 대안을 찾아야 할 사유는 많다. '민군 복합관광 미항'이라는 당초 사업 취지는 많이 퇴색된 지 오래다. 해군 보고서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입지로 적당한 지도 다시 따져봐야 한다. 무엇보다도 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의 저항과 무리한 공권력 투입이 충돌하면서 사회적 비용이 급등하고 있다.
국가전략과 안보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 때 해군기지 사업 추진의 가장 큰 명분은 말라카 해협의 해적 위협 대처였지만, 주변 국가들의 공조에 힘입어 말라카 해적은 거의 소탕됐다. 또 다른 명분인 이어도 문제 역시 영유권 분쟁 대상이 아니고, 이명박-후진타오 정상회담 차원에서 외교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한 상황이다.
외교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해놓고 한국이 제주 해군기지를 이용해 이어도 초계 활동에 나서면, 한중 관계의 마찰과 이에 따른 한국 안보와 경제 불안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서해상의 안보가 크게 불안해진 상황에서, 제주 남방해역에서 중국과의 마찰을 야기할 수 있는 해군기지 건설이 필요한 지도 따져봐야 한다.
동아시아 지정학의 맥락에서도 재검토의 사유는 더욱 커졌다. 이미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아시아-태평양에 해군력의 60%를 집중하기로 하고 기지와 기항지를 늘리겠다고 발표한 상황이다. 또한 '한미 전략동맹'을 천명한 이명박 정부 들어 한미간의 미사일방어체제(MD) 협력은 은밀하면서도 깊숙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이미 한-미-일 3자 안보 대화가 시작됐다며 핵심 의제가 바로 'MD'라고 밝히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MD를 고리로 한 한-미-일 삼각 동맹체제가 부상하고 있는 상황, 또한 남중국해-대만해협-동중국해-서해를 잇는 동아시아 해양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와중에 동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지인 제주도에 건설되고 있는 해군기지가 이와 무관하다는 정부와 해군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제주 해군기지가 미중 갈등에 한국을 휘말리게 하는 전략적 부담으로 작용할 공산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노무현 정부가 해군기지 건설을 결정했을 때에 비해 국가안보적 필요성은 줄어든 반면, 건설 강행 시 직면하게 될 전략적 부담과 위험은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은 이러한 점들에 주목해, 결자해지 차원에서 해군기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주항과 화순항에 건설 예정인 해경 부두를 해군이 기항지로 이용하는 방안을 포함해 다양한 대안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 보기). 공청회와 설명회를 거쳐 강정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묻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분명한 것은 12월 대선에서 제주 해군기지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점이다. 다수당을 차지한, 그리고 총선에서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안보 프레임'에 넣어 야권 공세의 도구로 활용해온 새누리당은 대선에서도 이 문제를 쟁점화하고 내년도 예산안에 이 사업 예산을 포함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에 맞서 강정마을과 시민사회단체들, 그리고 이들과 함께하겠다고 다짐해온 많은 국회의원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내년도 해군기지 예산 삭감을 목표로 삼고 있다. 무엇보다도 총선 결과에 대한 '작은 낙담'은 대선에서 해군기지 문제를 반드시 해결할 수 있는 후보를 당선시키겠다는 '큰 결의'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결국 민주통합당이 해군기지 문제를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그렇다면 당당히 맞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정의 아픔과 꿈을 알리는데 적극 나서고, 국민들에게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원죄를 씻는 길이고, 진정한 평화와 안보를 여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쓴 책으로 <핵의 세계사>(아카이브, 2012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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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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