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옥씨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 아버지 고 김정근씨가 불편한 몸으로 참석했다.
김병옥
결혼을 하고 병옥씨 등 1남 1녀를 낳았지만, 몸도 성치 않은 김씨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었다. 다리를 잘라낸 후 김씨는 평생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했다. 병옥씨는 이런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행상과 막노동 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했다고 말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김씨를 더욱 괴롭혔다. 그러다 김씨는 주변 사람으로부터 원호대상자 신청을 해보라는 조언을 듣는다. 다리를 잘라낼 수밖에 없었던 게 바로 전투에서 입은 파편상과 동상 때문이라는 것을 입증만 한다면 국가의 생계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김씨는 원호처(현 국가보훈처)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이 때가 1969년의 일이다.
육군-원호처 "원호 대상 아니다"
군 복무시 자신에 대한 치료 기록, 특히 다리를 잘라내서 더 이상 군 복무를 수행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내려진 명예제대 특명 기록이 남아 있다면 원호대상자로 지정받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김씨는 어처구니 없는 답변을 듣게 된다. 김씨의 군 복무 기록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신청서 접수 자체가 거부된 것.
이후 김씨는 자신의 군 복무 기록을 찾아달라는 진정서를 육군에 제출했지만, '김씨는 부상으로 인한 명예제대가 아니라 만기제대를 했으므로 원호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회신을 받았다. 또한 다리 절단과 군 복무 중 입은 동상과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 육군이 내린 결론이었다.
이 때부터 김씨의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목발을 짚고 절뚝이면서 집을 나서시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통신도 열악하고 교통도 불편했던 70년대, 아버지는 당신의 부상 사실을 입증해 줄 전우들을 찾아 불편한 몸으로 전국을 헤매셨습니다. 지금도 그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아버지에겐 전쟁이 끝나지 않으셨던 셈이죠."김씨는 여러 해 동안 전우들과 상관, 군의관들을 수소문해 진술서를 받아 자신을 원호대상자로 심사해 줄 것을 청원하는 진정서를 여러 차례 제출했지만, 그 때마다 번번이 기각 당했다.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의 군번(5101150)과 관련된 의무 기록이 실제의 부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51년 1월 포천지역에서 입은 부상은 그 전해인 50년 10월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다가 왼쪽 하퇴부에 파편상을 입고, 동상이 악화된 것이지만 남아있는 의료기록에는 좌측대퇴부에 부상당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 51년 6월에는 실제 군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지만 입원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 등 자신의 의료기록으로 보기에는 의문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생전에 김씨는 당시 같은 연대에 똑같은 이름을 가진 병사가 자신을 포함해서 모두 3명 있었다는 점을 들어 이 같은 오류가 생겼을 것이라고 추측했다고 한다. 실제 김씨의 군번(5101150)과 의료기록의 군번(5150484)이 다르다는 점이 김씨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이 같은 김씨의 항변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원호대상자 심사 청원 번번이 기각
결국 지난 8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김씨가 여러 차례 낸 원호대상자 심사 청원은 그 때마다 원호처의 전공상 심의에서 번번이 기각됐다.
"아버지는 10년 넘게 육군본부와 원호처를 상대로 여러 차례 진정서를 내셨어요. 그 기록만 수백페이지입니다. 돌아가시기 직전 아버지는 당신의 군 기록이 잘못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런 엉터리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의아해하셨어요."병옥씨는 아버지가 이렇듯 힘겨운 싸움을 하는 동안 식구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극빈자 수준의 삶을 이어가야 했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을 정도로 지독한 가난이었다.
"정말 이를 악물고 살았어요. 아버지가 눈을 감으시면서 아무한테도 손 벌리지 말고 악착 같이 살라고 하신 말씀대로, 공사판 십장으로 일하면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병옥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먹고살기 바빠 한동안 아버지의 일을 잊고 살았다고 말했다. 그가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난 2010년, "조국을 위한 희생은 시공을 초월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나서였다.
그 해 9월 서울 북부 보훈지청에 이미 고인이 된 아버지의 서류를 접수한 후 올 1월 받은 회신에서 병옥씨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보훈처가 서울지방병무청에 병역사항을 조회하면서 발급된 병적증명서에 그동안 명예제대증 제 3631호의 성명과 생년월일이 그동안 아버지 김씨가 아닌 김OO씨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육군본부에서 보내 온 회신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 4월 13일 육군본부 병적관리과는 병옥씨가 제기한 민원에 대한 회신에서 아버지 김씨의 군번인 5101150의 성명과 생년월일이 2010년 12월 22일자로 김OO씨에서 아버지 김씨로 정정되었다고 밝혔다.
명예제대 특명-군번 일치하는 동명이인이 있었다?
병옥씨는 김OO씨가 아버지의 군번과 명예제대 특명을 도용해 그동안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아온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보훈처와 육군본부의 문서를 종합하면 김OO씨는 1934년생으로 한국전쟁 직후인 50년 8월 22일 입대해 51년 11월 5일 명예제대 한 것으로 나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