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교시 시간 앞당긴 고교의 '잔머리'... "너무하네"

인천 상당수 고교, 0교시 편법 운영으로 '학습선택권 조례' 무시

등록 2012.05.04 16:10수정 2012.05.0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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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까지는 0교시를 하고 정규수업 1교시가 9시에 시작하니까, 0교시에 조금 늦어도 '무단 지각' 처리가 안 됐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1교시를 8시 10분에 시작하니 8시까지 등교하라고 했다. 8시까지 교실에 앉아 있지 않으면 무조건 무단 지각 처리하고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한다. 지난번에는 제 시간에 등교했는데, 두발 단속에 걸려 훈계를 받다가 8시 넘어서 교실에 들어가 무단 지각으로 처리됐다.

나 말고도 20여 명이 있었는데 모두 무단 지각 처리돼 생활기록부에 기록됐다. 생활기록부에 기록이 남으면 대학에 들어갈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데, 너무한 것 아닌가. 1~2학년 때는 개근했는데 3학년이 돼서 개근상을 못 받게 됐다. 물론 지각을 하면 안 되는 것이지만 너무 가혹한 것 같다. 1교시를 일찍 시작해도 보충수업에 야간자율학습까지 하면 집에 가는 것은 어차피 예전하고 똑같다. 몸만 더 힘들어졌다"


지난 3일 만난 인천지역 ㄱ고등학교에 다니는 ㄴ(19)군은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ㄱ 고교는 지난해 말 인천시의회가 강제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학생의 정규교육과정 외 학습 보장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자, 올해부터 편법을 동원해 1교시 수업시간을 8시 10분으로 앞당겨 운영하고 있다.

시교육청은 지난 1월 해당 조례에 따른 '학부모·학생의 학습선택권 보장 운영계획'을 전체 중고교에 보냈다. 이 운영계획에서 정규교육과정 시작 40분 이상 전에 전체 학생을 강제적으로 등교하도록 하는 것(0교시 운영)을 금지하자, 아예 정규수업 시간을 당겨 운영하는 것이다.

학교에선 이를 통해 정규수업이 일찍 끝나는 대신 0교시로 운영하던 방과후학교(=보충수업)를 더 늘려 사실상 0교시를 운영하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누리고 있다.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도 반강제적으로 운영돼 해당 조례 제정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가 최근 조사한 '인천지역 인문계 고등학교 등교시간과 1교시 시작 시간' 자료를 보면, 1교시 시작 시간을 오전 8시 10분으로 당긴 학교는 4곳이었다. 8시 20분으로 당긴 학교는 11곳이었으며, 8시 30분으로 당긴 학교는 18곳이었다.

인문계 고교가 모두 91곳이므로 30%를 넘는 학교가 1교시 시작 시간을 오전 8시 30분 이전으로 당긴 것이다. 이 학교들의 등교시간은 7시 20분부터 8시 30분까지로 다양했다.


문제는 시의회가 조례를 제정한 취지가 사라진 데다, ㄴ군이 다니는 ㄱ고교처럼 이 학교들 모두 1교시 시작 시간이 빨라져 조금이라도 늦은 학생은 '무단 지각' 처리되고 생활기록부에 그 기록이 남는다는 것이다.

고교생을 자녀로 둔 ㄷ씨는 "고등학교는 학생이 먼 곳에 살아도 배정되는데, 8시까지 등교를 못하면 '무단 지각'으로 처리하고 생활기록부에 기록하는 것은 너무한 처사 아니냐"며 "이런 문제로 일부 학생은 힘들어서 학교 근처로 이사를 오기도 했다고 한다. 0교시를 못하게 한다고 1교시를 0교시 하던 시간으로 당긴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교 교사인 ㄹ씨는 "교사들도 8시 10분 1교시 수업을 힘들어한다. 특히 자녀가 있는 교사는 더 그렇다"며 "학교 방침으로 어쩔 수 없이 늦은 학생들을 무단 지각 처리하지만 마음이 좋지 않다. 시교육청은 교사와 학생 모두 힘들어하는 편법 0교시 운영을 제대로 지도해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교육청은 정규수업시간을 당기는 것이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전혀 없다는 의견이다.

시교육청 교육과정 담당장학관은 <부평신문>과 한 전화통화에서 "학교운영위의 심의를 받아 정규수업시간이 당겨졌으면 지각은 당연히 '무단 지각'으로 처리되고 생활기록부에도 기록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누구는 봐주고 누구는 안 봐주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오래 전에는 더 일찍 등교하지 않았나. 새벽시간에 머리 회전이 빨라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으니 더 일찍 등교하고 공부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너무 이르다는 지적은 안 맞는 것 같다"고 답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0교시 #보충수업 #인천시교육청 #전교조 인천지부 #부평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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