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복판에 '노인나라' 있는 거 아세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낙원동 됫골목

등록 2012.05.10 18:14수정 2012.05.10 18:14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낙원동 뒷골목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발소. 예전그대로 모습에 정감을 느끼게 한다. 이발료는 3500원, 봉사하는 정신으로 노인들에게 이발한다고 한다.

낙원동 뒷골목 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발소. 예전그대로 모습에 정감을 느끼게 한다. 이발료는 3500원, 봉사하는 정신으로 노인들에게 이발한다고 한다. ⓒ 김학섭


초여름 날씨를 보이는 후덥지근한 날씨. 지난 9일 오후 2시, 서울 낙원동 213번지 일대를 거닐었습니다. 탑골공원 후문 쪽 담 밑에는 더위와는 관계없다는 듯 노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이곳은 노인들의 천국이었지만, 지금은 종묘공원 쪽으로 이동해 낙원동 뒷골목에서는 많지 않은 노인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탑골공원에는 원각사지십층석탑을 비롯해 대원각사비, 팔각정, 삼일운동 기념부조, 삼일운동 찬양비, 만해 한용운선사비, 삼일운동선언 기념탑, 손병희선생 동상 등 역사적 주요 시설물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노인들이 쫓겨났다며 불만을 털어놓는 한 할아버지는 그때가 그리워 아직도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지금도 낙원동 213번지 일대는 서울의 별천지 같은 곳입니다. 서울 중심가에 이런 곳이 있다니... 의아해집니다. 시간이 정지돼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조금만 벗어 나면 높은 빌딩이 하늘을 찌르고 있지만, 이곳은 몇십 년 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낡은 지붕이며 허름한 가게, 50년 된 이발소까지... 이런 집들 때문에 더 정겨운 골목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이나 오래 살어"라던 할아버지

a 낙원동 뒷골목   오늘 생일이신 분 식사무료라는 간판이 보인다. 일주일에 한번씩 생일잔치를 무료로 차린다고 하니 고마운 분이다.

낙원동 뒷골목 오늘 생일이신 분 식사무료라는 간판이 보인다. 일주일에 한번씩 생일잔치를 무료로 차린다고 하니 고마운 분이다. ⓒ 김학섭


이곳은 사람 냄새가 나는 곳입니다. 어떤 이는 이곳이 노인들의 '마지막 보루'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개발돼서는 안 된다고들 합니다. 개발하면 노인들이 그냥 있지 않을 거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이곳은 서울의 딴 세상처럼 느껴지는 곳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동네가 있다는 것이 무척 신기합니다.   

탑골공원 담장을 기대고 졸고 있는 한 노인에게 이곳 사정을 물어 봤습니다.


"금년 내 나이 구십이여. 여기가 내 고향이지. 하지만 이제는 다 잊어버렸어, 다 떠났어, 나도 빨리 가야하는데 큰 걱정이구먼."

동문서답을 합니다. 어버이날이 하루가 지났것만 노인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자식에게 서운한 감정이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좋은 세상 오래 살아야죠."

그러자 노인은 금세 불쾌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는 당신이나 오래 살어."   

그 노인은 이렇게 말하며 자리를 옮깁니다. 오래 살라는 말이 노인에게는 좋은 말로 들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노인은 귀찮은 듯 자리를 조금 옮겨 담장에 기대 눈을 감습니다.

머리 자르는 데 3500원... "가격인상 계획은 없다"

a 낙원동 뒷골목   포장마차에 불이 들어 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때로는 일 이천 원으로 싸우기도 하지만 외상으로 달아주는 후한 인심도 여기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한다.

낙원동 뒷골목 포장마차에 불이 들어 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때로는 일 이천 원으로 싸우기도 하지만 외상으로 달아주는 후한 인심도 여기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 한다. ⓒ 김학섭


박아무개(78)씨는 아들 딸이 있지만,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고 합니다.

"며느리하고 같이 사는 것이 더 부담스러워, 자식이 형제지만 혼자사는 게 훨씬 신상이 편혀. 괜히 같이 살면 눈치만 서로 보일테고, 왜 그렇게 살어."

최근 발표에 의하면 홀로 사는 노인 가정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하던데, 이런 이유 때문인 것 같습니다.

김아무개(65) 할아버지는 자식에게 몽땅 재산을 줘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죽고 나서야 저희들끼리 재산을 어떻게 하든 상관 없지만 아버지가 눈을 뜨고 살아 있는데 재산 싸움하는 꼴은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이냐며 효자도 많지만 부모를 버리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지금은 자식들을 다 키워 시집 장가를 보내고 혼자 살고 있는데, 신상이 아주 편안하다고 합니다. 2020년에는 151만 명의 혼자 사는 노인들이 생길 것이라고 합니다(통계청 장래가구추세). 대책도 시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탑골공원 담장을 따라 좀더 걸어가 봤습니다. 파고다 다방, 커피 한 잔에 2천 원, 옛날식 다방입니다. 다방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들어가보니 화려하지는 않지만 깨끗합니다. 노인 몇 분이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차를 팔아도 남느냐고 하자 이미숙(36)사장은 "봉사 정신으로 일한다"며 환하게 웃습니다. 다방 역사는 오래된 것 같으나 직접 맡아서 운영한 지는 3년 밖에 안 됐다고 합니다.

그 옆 이발소, 머리 자르는 데 드는 돈은 3500원. 다른 곳에 비해 매우 싼 가격이지만, 역시 사장은 "값을 인상할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이발소 역사는 50년이 됐다며 그때나 지금이나 오고가는 사람들만 다를 뿐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합니다. 방송에도 나왔다며 손님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들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을 즐겁게 한다고 합니다.

그 옆 음식점 가게 간판에는 이색적인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오늘이 생일이신 분 식사 무료,  이 골목에서 제일 맛있는 집' 닭한마리 가게입니다. 정말 공짜로 주고 있을까요. 이기복 사장님은 주방일을 하면서 지금도 1주일에 한 번꼴로 생일 선물인 공짜 음식이 나간다고 합니다. 가게 문을 연지 30년이 됐다고 하니 그 숫자가 적지 않을 텐데 어른들을 대접하는 것이 즐겁다고 합니다.

1000원 한 장 때문에 싸우지만...

a 낙원동 뒷골목   이 골목에는 순대국집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낡은 건물에 호화로운 간판은 없지만 정이 흐르는 곳이다. 단골 손님은 노인들, 외국 손님도 자주 온다고 한다.

낙원동 뒷골목 이 골목에는 순대국집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낡은 건물에 호화로운 간판은 없지만 정이 흐르는 곳이다. 단골 손님은 노인들, 외국 손님도 자주 온다고 한다. ⓒ 김학섭


낙원상가 밑에는 순대국밥집이 줄 서서 있습니다. 충청도집, 전라도집, 경상도집 강원도집... 아주머니들이 구수한 사투리로 손님을 모십니다. 대부분의 고객은 노인분들, 가끔 외국인도 온다고 합니다. 화려한 건물도 아닙니다. 번쩍거리는 네온사인도 없습니다. 낡은 건물 그대로지만 구수한 사투리에 정이 듬뿍 담겨 있는 곳입니다. 노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지요. 얼큰한 순대국밥 한 그릇 비우면 마음까지 시원해진다고 노인들은 말합니다. 

바로 앞에는 현대식 낙원상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노인전용극장도 있습니다. 노인 전용극장 안에는 음악다방까지 있어 노인들을 젊은 날로 돌아가게 합니다. 낙원상가에는 악기점이 유명합니다. 가수들이나 연주자들이 자주 찾는 곳입니다. 주변에 가요 주점이 있어 예전에는 만날 수 없던 왕년에 인기가수를 직접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고 합니다. 

서울 하늘에 어둠이 내릴 무렵이면 이곳 낙원동 뒷골목은 새로운 생명력으로 꿈틀거립니다. 포장마차가 불을 밝히자 낮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활력으로 꿈틀거립니다. 고기굽는 냄새가 손님을 부릅니다. 술꾼들이 하나 둘 모여듭니다. 마냥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술값 천 원 이천 원 때문에 고성이 오가지만 결국 외상으로 달아준다고 합니다. 사람사는 냄새가 풀풀나는 골목입니다.   

a 낙원동 뒷골목   자기는 거리에 화가라며 부채에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교통사고로 후유증때문에 고생했으나 노래를 연주하는 동안 몸도 마음도 좋아졌다고 한다.

낙원동 뒷골목 자기는 거리에 화가라며 부채에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교통사고로 후유증때문에 고생했으나 노래를 연주하는 동안 몸도 마음도 좋아졌다고 한다. ⓒ 김학섭


탑골공원 담장을 끼고 돌아나오는데 아코디언을 열심히 연주하는 분을 만났습니다. 자기는 박월광(78)이라며 부채에 그림을 그리는 길거리의 화가랍니다. 교통사고 후유증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부지런히 손가락을 놀리면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 주면 기분이 좋다고 합니다. 사람이 있으나 없으나 그의 연주는 매일 계속 되고 있습니다. 다음에 오면 그림 실력을 보여주겠다며 환하게 웃습니다.

낙원동 213번지 탑골공원 됫골목. 이곳은 이렇게 시간이 정지되고 사람 냄새가 풀풀나는 노인들만의 세상입니다.
#낙원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2. 2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3. 3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4. 4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5. 5 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