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이 끝나고 얼마 후, 농번기를 앞둔 충남 당진의 고향집을 찾았습니다. 오랜만에 아버지도 뵙고 선거 이후 왠지 모를 허무함도 달랠 겸 찾은 고향 동네의 풍경은 평상시 분주한 농촌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논에는 물을 대고 모내기를 준비하는 손길이 바쁘고, 들에는 밭을 갈고 푸성귀를 다듬는 손길이 분주합니다.
이 시기, 동네 마을회관에는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많아집니다. 하루 종일 고된 노동에 지친 몸을 이끌고 막걸리 한 잔이라도 나누고,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지요. 특히, 마을회관 앞마당 정자나무는 소위 동네의 오피니언 리더격인 어르신들이 일찌감치 자리 잡고 앉아 계시기 마련이지요. 제가 막걸리 한 병을 사기 위해 마을회관을 찾은 그날도 그랬습니다.
시골 마을회관 오피니언 리더들의 관심사 '이장 출신 대선주자 김두관'
"아니, 요즘 이장이 어디 예전 같은 이장인줄 알유? 이제는 이장 잘하면 군수도 하고, 장관도 하는 세상 아니유. 또 알유? 이장 출신 대통령이 나오게 될지. 그러니께 저한테 잘혀유."
동네 이장님은 이미 거하게 취기가 오르셨는지 연신 동네 이장을 무시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같이 앉아 계시던 어르신들도 한마디씩 거듭니다.
"하긴 그러고 보면 이장 말마따나 그 사람 참 대단혀. 동네 이장질하던 양반이 군수에 장관, 도지사까지하고 말여. '개천에서 용 난다'더니 정말 딱 이짝이지. 근데 그 양반이 대통령 나오긴 나온디야?"
갑자기 좌중의 시선이 '서울서 내려온' 저한테 꽂힙니다.
"글쎄요. 누구 말씀하시는지?"
머뭇거리며 답하자 바로 이장님의 푸념이 이어집니다.
"아, 요즘 이렇다니께유. 젊은 사람들이야 그냥 문재인, 안철수지, 그 양반한테 관심이나 있간유? 젊은 사람들이나 서울 사람들이 그 양반에 대해서 알기나 하겄슈? 그게 문제지유. 아무리 좋은 일을 했어도 사람들이 모르니. 제가 동네서 아무리 잘하면 뭐혀유. 시내에만 나가도 모르는 사람이 천지니. 제가 시장할 재목이어도 시내 사람들은 처음 보는 촌놈이니 딱하니 안 키워준다 이거 아니유. 허허허."
이장님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바쁘게 자리를 빠져나와 생각해 보니 이날 마을회관 '오피니언 리더 그룹'의 관심사는 이장 출신의 김두관 경남도지사인 것 같습니다. 고향 어르신들은 이장에서 시작해 도지사까지 된 그가, 그리고 대선주자로 주목 받고 있는 그에게 마음이 가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묘하게 이날 이후 '젊은 사람들이나 서울 사람들은 그를 모른다'는 이장님의 말씀이 귀에 남습니다.
젊은 사람, 서울 사람들은 모르는 김두관의 '부드러운 직선'
서울에 올라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작 정치에 관심이 있다는 저 역시 김두관 지사에 대해서는 정말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제가 아는 김두관 지사는 이장하다가 남해군수 선거 나와서 당선됐고, 참여정부 시절에 행정자치부 장관하다가 한나라당이 해임건의안을 제출해 장관직에서 물러났고, 이후에 몇 번의 도전 끝에 경남도지사에 당선됐다는 것이 다입니다. 그래서 이날부터 야권 대선주자로 분류되는 김두관 도지사가 이장, 군수시절에는 무엇을 했고 행자부 장관과 경남도지사를 하면서는 무엇을 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짧지만 제가 그의 삶과 활동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느낀 감정은 김두관 도지사의 삶이 도종환 시인의 시 '부드러운 직선'과 닮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그가 실현한 남해에서의 풀뿌리 민주주의와 언론개혁의 실천은 왜 그가 '리틀 노무현'이라고 불리는지 잘 알게 해줬습니다. 아니 누군가의 말처럼 고 노무현 대통령이 '빅 김두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경남도지사 직을 수행하며 도정에 도입한 '민주도정협의회'와 '어르신 틀니 보급사업'은 그런 그의 성품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민주도정협의회는 오랫동안 한나라당이 독점했던 도정 권한을 여러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학계 인사 등이 함께 지혜를 모아서 슬기롭게 한 번 공유해 보자는 취지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민주도정협의회를 통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 무상급식, 어르신틀니 보급, 4대강 사업 대책 등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도정에 '부드러운 직선' 지금껏 그어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어르신틀니 보급사업은 한나라당 일색인 도의회와 더불어 내내 한나라당 단체장과 함께 일해 온 공무원들을 설득해가면서 만들어낸 성과라고 합니다. 사업 초기에는 한나라당 중심의 도의회가 예산안에 대한 심의를 미루자, 김두관 도지사가 대한노인회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협조를 요청해 노인회가 도의회 앞에서 집회를 갖는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는 후문입니다. 여의도 정치판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서전 출간 이후 대선주자로서의 행보 본격화할까
최근 들어 김두관 도지사의 발걸음이 잽니다. 지난주에는 <경향신문>에서 그의 대선출마가 임박했다며 새로 출간될 책에 대해 기사화했고, 14일에는 '교차특강'차 광주를 방문에 5·18묘역을 참배하고 자신의 도정경험을 광주광역시 공무원들과 나눴습니다. 이러한 행보 가운데 그의 지지율이 상승했다는 언론보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야권 대선주자로 분류되는 그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그가 스토리가 좋은 대선후보라는 사실은 알겠지만 그의 정치비전과 철학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보니 수도권의 관심은 여전히 낮기만 합니다. 고향동네 이장님 말씀처럼 젊은 사람들이나 서울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그가 이번 대선에 출마할지, 출마한다면 아직은 미미한 지지율을 어떻게 끌어올릴지도 궁금해집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곧 출간될 예정이라는 그의 책에서 그는 브라질의 영웅 룰라에게서 정치적 비전을 찾았다고 합니다. 이제 사람들의 눈과 귀는 그가 자서전을 통해 기성 정치에 지친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제시하고, 자서전 출간과 함께 대선출마를 선언할지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가 현재의 낮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이장에서 대통령까지'라는 대한민국 정치사에 전대미문인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그의 자서전이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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