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누나, 중국 아저씨와 김밥 만들었어요

서울시 이주외국인 한국가정방문행사 열려

등록 2012.05.16 16:53수정 2012.05.1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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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서울시 이주외국인 한국가정방문 행사소감문!'이라고 제목이 달린 메일이 도착해서 궁금함을 안고 열어봤다. 지난 13일(일) 오후 4시, 행사를 신청했던 여의도 고등학교 글로벌 리더십 프로그램 학생 중 한 명이 보낸 메일이었다.


"마음으로 통해요!"

서울시 이주외국인 한국가정방문행사는 국내 체류 외국인과의 소통을 위해 서울시가 시민 신청을 받아 매년 실시하는 행사다. 이번 행사에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를 통해 이주노동자를 초대했던 박혜란씨는 행사가 끝난 후, "다들 집에 잘 돌아갔는지 모르겠네요?"라는 말로 안부를 전하며, 이주노동자를 가정에 초대해 본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몽골에서 온 바트씨! 태국에서 온 폰차이씨! 시리펀씨! 바트씨는 아이들이 정말 예쁘더군요. 아내와 애들이 보고 싶겠어요. 폰차이씨, 시리펀씨는 태국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게 사진도 보여주었어요. 열심히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 정말 즐겁게 지냈습니다."

한국가정방문행사에 참여한 여의도 고등학교 글로벌 리더십 프로그램 학생들 중 한 명인 강민구 학생은 손님으로 초대했던 이주노동자과의 즐거웠던 만남에 대한 소감을 가슴 뭉클하게 전했다.

"몽골에서 온 볼로마 누나, 중국에서 온 정국정 아저씨, 포흥웨이 아저씨. 방직공장을 5년째 다니고 있는 몽골인 누나는 한국말을 잘했던 반면, 마장동에서 소와 돼지를 도축하는 일을 하시던 중국인 아저씨들은 한국에서 2년을 살았는데도 아직 한국말이 서툴렀다.


반팔 옷을 입고 온 아저씨의 팔에 드러난 상처들이 많아 안타까웠다. 많은 감정이 올라왔지만, 아저씨와 누나가 웃으며 즐거워하고, 틈틈이 사진 찍는 모습을 보니…. 보람이 있었다."

이들은 가정방문행사를 통해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입을 모았다. 각 가정을 방문한 이주노동자는 각자 준비해 갔던 자그마한 선물을 초대 가정에 전달했다. 강민구 학생의 집을 방문했던 이주노동자는 월병 세트, 유자 장아찌, 오렌지 등과 같은 선물을 전달했고, 초대 가정에서는 음식을 대접했다.


비록 의사소통 상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음식을 같이 만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깊어졌다고 한다.

매운 음식을 잘 먹는다는 몽골 출신 볼로마씨는 "서울에 처음 왔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띄었던 게 한국 사람들이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좋은 피부였다"면서 그 이유를 말했다. 그는 "몽골인은 말고기, 양고기, 소고기 등 육식 위주의 음식을 즐긴다"며 "한국 가정에 와서 식사해 보니, 야채를 많이 먹는 게 그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강민구 학생은 "한국에 온 지 2년이 됐지만 아직 말이 서툰 포흥웨이씨와 정국영씨와 인터넷에서 검색한 중국어로 몇 마디 대화를 시도했다"면서 "나눌 수 있는 대화가 많지 않았지만,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몸짓과 표정으로도 부족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밥 옆구리 터지는데도 즐거워!

초대 가정에서 준비한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식탁 위에 모인 이들은 김밥을 만들었다. 이들은 각자 자기 앞에 도마를 놓고, 그 위에 김발을 펼쳤다. 초대 가정주부의 시범에 따라 김밥을 만들었다.

김밥 만들기 체험 한국 가정 초대를 받은 이주노동자들이 김밥을 만들고 있다.
김밥 만들기 체험한국 가정 초대를 받은 이주노동자들이 김밥을 만들고 있다.강민구

"자, 이렇게 해 보세요. 구운 김을 김발 위에 올리고, 밥을 한 주걱 정도 떠서 김 위에 넓게 펼칩니다. 그리고 속 재료를 나란하게 밥 위에 올린 다음에 김발로 김밥을 꼭꼭 누르며 잘 말아주면 돼요."

김밥을 처음 만들어 보는 것은 이주노동자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엄마가 해 주는 것만 먹었던 학생도 마찬가지다. 다들, 처음 싸는 김밥을 만들었다. 김밥 싸기에 재미를 붙이자 김밥이 수북해졌다. 이번에는 김밥을 썰어, 호일에 담는 순서가 이어졌다.

강민구 학생에 의하면 몽골에서 온 블로마 누나는 "누나의 얼굴처럼 예쁘게 김밥을 썰어 잘 담았는데, 중국 아저씨는 김밥을 썰자 옆구리가 터져서 속 재료가 다 튀어나왔다"고 전했다.

그래도 "하하 호호". 호일에 쌓인 김밥이 한 줄, 두 줄이 쌓일 때마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금세 오후 8시가 되었다고 한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음날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기 위해 집에서 쉬어야 하는 이주노동자과 헤어져야 할 시간. 초대 가정에서는 준비한 작은 선물 가방에 호일에 싼 김밥을 담아 마음으로 배웅해 주었다.

초대받았던 이주노동자는 환승 하는 역까지 같이 가려던 학생에게 같이 가지 않아도 집으로 찾아갈 수 있다면서 학생을 배려했다. 강민구 학생은 "어린 자신을 배려하는 마음을 확인하며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짠했고, 동시에 누나와 아저씨의 웃는 얼굴이 마음 어딘가를 점점 환하게 채워주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서울시 이주외국인 한국가정 초대 #이주노동자 #김밥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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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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