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벗어난 아이들, '진짜' 학교를 만들다

입시경쟁교육 반대하며 '희망의 우리학교' 세운 아이들

등록 2012.05.17 09:11수정 2012.05.1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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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운영방향에 대해 대화하고 있는 학생들 희망의 우리학교 학생들은 매일 회의를 통해 앞으로 운영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앞으로 운영방향에 대해 대화하고 있는 학생들희망의 우리학교 학생들은 매일 회의를 통해 앞으로 운영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강연준

"IT 교육에 관심있는 사람 있어요?"
"정윤서요", "김준서도 관심 있어요", "저도요!"
"그런데 이 수업 뭔가 알아야 들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개론이라서 잘 몰라도 괜찮아요."

서로 마주보며 앉아 있는 청소년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앞으로 진행할 커리큘럼을 짜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배우고 싶은 것이 많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중 몇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 적절한 커리큘럼을 짜는 것이 쉽지는 않다. 시간, 장소, 실습 도구,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정말 배우고 싶은 과목'인지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다. 어느새 회의 시간이 2시간을 훌쩍 넘어간다.

이 친구들이 스터디 모임을 하기 위해 커리큘럼을 짜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앉아 있는 곳은 학교다. 학생들이 자기들 손으로 만든 '진짜' 학교다. 12명의 학생들은 이 학교의 주인이다.

이 학교는 한 고교 자퇴생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지난 2월 29일 고교를 자퇴한 최훈민(17)군은 그 다음 날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죽음의 입시경쟁교육을 중단하라"고 1인 시위를 하며 '희망의 우리학교'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최군의 제안에 의기투합해 전국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모였는데 그중 11명의 학생이 최종적으로 참여할 결심을 했다. 수능을 7개월 앞두고 자퇴를 결심한 정윤서(17)양은 "고3이 되기까지 11년 동안 제도권 교육에 있으면서 성적 하나로 나태함과 부지런함을 구분하고, 성공과 실패를 구분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친구들이 스트레스로 자살하고 학교폭력이 만연하는 데는 현교육의 입시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참여 이유를 밝혔다.

꼭 기존의 교육제도에 문제의식을 가진 아이들만 이 학교에 들어오려고 것은 아니었다. 박소운(15)양은 "어느 날 엄마가 신문에서 본 것을 소개해 줘서 이 학교를 처음 알았다"며 "평소에 학교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학교 이야기를 듣고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학교에 특별한 문제가 있었냐는 질문에 박양은 "특별한 문제없이 학교를 다녔다"며 "아마 여기오지 않았으면 계속 다녔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군이 학교를 만들자는 제안을 한지 꼭 73일째 되던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청 한우리홀에서는 '희망의 우리학교' 개교식이 열렸다. 개교식에 참석한 어른들은 학교 만드는 일을 스스로 해낸 학생들을 대견스럽다며 치켜세웠고, 함께하고 싶었지만 자퇴만은 안 된다는 부모님의 반대를 꺾지 못한 친구들은 아쉬운 마음으로 개교식을 지켜만 봐야 했다.


지난 12일 종로구청 한우리홀에서 열린 '희망의 우리학교' 개교식 지난 12일 종로구청 한우리홀에서 열린 '희망의 우리학교' 개교식이 열렸다. 개교식중 최훈민군이 발언하고 있다.
지난 12일 종로구청 한우리홀에서 열린 '희망의 우리학교' 개교식지난 12일 종로구청 한우리홀에서 열린 '희망의 우리학교' 개교식이 열렸다. 개교식중 최훈민군이 발언하고 있다.희망의우리학교

아이들 스스로의 힘으로 학교 운영

개교를 한지 4일이 지난 지금(16일)도 아이들은 여전히 '학교만들기'에 한창이다. 아이들은 학교를 자신들의 힘으로 만들고 있다. 기존에 있던 대안학교 관계자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지만 아이들은 그저 그 이야기를 '참고'만 할 뿐이다. 대신 아이들은 무엇인가를 결정하기 전에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모두의 이야기를 듣는다.


조계사의 도움으로 사무실 1곳과 강의실 2곳을 마련해 구색을 갖췄으니 이제 내용을 채워야 한다. 학교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 것인지, 무엇을 배울 것인지, 홍보는 어떻게 할 것인지, 운영비는 어떻게 쓸 것인지 정해야 될 것이 많다. 학교에 다니기만 할 때는 몰랐지만 실제로 학교를 만들어 운영하려고 하니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효율적인 준비를 위해 아이들은 교육팀, 행정팀, 홍보팀으로 서로 팀을 나누었다. 교육팀은 커리큘럼을 짜고, 멘토를 섭외하고(이 학교에서는 선생님을 멘토라고 부른다), 교육과정을 관리하고, 과외 활동을 계획한다.

행정팀은 대외 기관과 협력하고, 대외 업무와 관련한 공문서를 작성하고, 운영자금을 관리한다. 행정업무를 처음 접해본 아이들은 이를 굉장히 낯설어 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서울시대안교육센터에 가서 행정 업무를 배워오기도 했지만 여전히 어려워 한다. 공문서 작성을 담당하고 있는 한 학생은 "공문서 작성이 그렇게 어려운줄 몰랐다"며 "나중에 진짜 수업을 시작하면 (수업) 틈틈이 행정업무를 해야 하는데 빨리 손에 익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홍보팀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희망의 뉴스레터'라는 소식지를 만들고, 카페관리, 회원관리 등을 담당한다. 홍보팀에서 일하는 한 학생은 "처음이라 어떻게 하는건지도 잘 모르고 해서 어렵고 피곤하다"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 마음은 즐겁다"고 웃으며 말했다.

"세상이 우리의 학교다"

기존에 입시교육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이곳에 모인 아이들은 다양한 공부거리를 마련하고 있다. 개교식 중 프레젠테이션에서 "세상이 학교다, 서울광장이 우리의 잔디 운동장이고, 정독도서관이 우리의 도서관이다"라고 말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내용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커리큘럼을 기획한다.

미래에 작가가 꿈인 친구들은 글쓰기 강좌를 통해 글 쓰는 법을 공부하고,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은 철학 강좌를 통해 동양철학에 대해 공부를 한다.

아이들이 준비하고 있는 커리큘럼의 하나인 '고궁탐방프로젝트'는 우선 멘토와 함께 고궁과 관련된 책을 읽으며 기본지식을 쌓은 후 직접 서울 시내 5대 고궁을 다니며 수업했던 내용을 직접 확인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문화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전문가를 '멘토'로 초빙했다.

이들이 멘토를 초빙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그저 자신들이 배우고 싶은 분야를 정한 후 그것을 가르쳐 줄 수 있을 만한 사람에게 '멘토링'을 요청한다. 그 대상 또한 다양해서 전·현직교사, 각 분야의 전문가, 대학생 등 특별한 자격 요건을 따지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이 '배울만한 사람'에게 가르침을 요청한다. 최근에는 이들의 이야기가 매스컴을 타면서 먼저 멘토링을 제안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은 그거 원하는 것을 배우는데서 그치지 않고 배운 것을 실제로 활용할 방법을 계획하고 있다. 이들은 창업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카페를 열어 그곳에서 빵과 커피를 만들어 팔 계획이다.

장래에 파티쉐가 꿈이라는 정유진(17)양은 "중학교 때 이미 제빵 자격증을 땄고, 앞으로 제과와 슈가크래프트(설탕공예)를 배워 카페를 운영하는데 활용할 것"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학생들 최초의 '자유독립선언' 한거나 마찬가지"

멘토를 제외하고 아이들로 가득 찬 '희망의 우리학교'에는 유일하게 딱 한 명의 '성인'이 있다. 이 학교의 학생인 한가주(15)양의 어머니이기도 한 권옥주(53)씨다. 그는 이곳에서 상담 활동을 하며 새로 입학을 희망하는 아이들을 상담하고 있다.

권씨는 "(학교가 개교한 것은) 역사적인 일"이라며 "최초로 학생들 스스로 '자유독립선언'을 한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아이들을 높게 평가했다. 이어 자신은 이 학교에서 "학교지킴이와 관찰자의 역할을 하며 앞으로 이 학교가 어떻게 펼쳐질지 지켜보고 그것을 글로써 기록하겠다"고 다짐했다.
#희망의 우리학교 #최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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