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아프니까 청춘? 나 같으면..."

22일 연세대에서 '경쟁하는 20대, 청춘은 어디 있는가' 강연

등록 2012.05.23 09:46수정 2012.05.2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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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 (자료 사진) ⓒ 유성호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을까?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잘 알려진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의 저서 <생각의 좌표>(한겨레출판)를 여는 첫 문장이다. 그는 이 책에서 "지금 내가 생각하는 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한 물음은 자기성찰의 출발점"이라고 쓰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어떻게 내 것이 되었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2일 연세대에서 열린 강연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내 생각이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는 화두를 던졌다. 생각을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났나? 아니면 스스로 생각을 창조했나? 그것도 아니라면 '생각을 선택'했다는 것인데, 그 선택에 '나'는 얼마나 개입했느냐는 것이다.

또 그는 자유인으로서의 '나'가 진정한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선 네 가지, 즉 폭넓은 독서, 열린 토론, 직접 견문, 그리고 성찰이 필요한데, 오늘날의 대학생들은 이 네 가지보단 제도교육과 대중매체에 의해 생각이 형성된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 날의 강연은 연세대 학술동아리 JSC가 준비한 포럼 특강 '세대 간 소통과 20대'의 일환으로 준비됐으며, '경쟁하는 20대, 청춘은 어디 있는가'라는 주제로 약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자신으로부터의 인정 가장 중요... 인생의 최종 평가자 자신이어야"

그는 "경쟁의 늪에 빠져 있는 여러분의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대학 시절 '선배를 잘못 만나서' 이렇게 되었다며, "여러분께 잘못 만난 선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가 처음 강조한 개념은 '자기형성의 자유'였다. 그는 "우리 존재를 어떤 존재로 만들 것인지는 바로 여러분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이 바로 자기형성의 자유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인정의 욕구'가 있다며 "감히 말하지만 자신으로부터의 인정이 제일 중요하고, 여러분 인생의 최종 평가자는 자신이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아실현'과 '생존'과의 긴장관계가 '자기형성의 자유'를 제한하는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누구에게나 건강한 한국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발전도 이룩하려는 '자아실현'의 목표가 있지만, 우리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 또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전자는 도외시하고 생존이라는 조건에만 몰두해 물신주의가 팽배해 있고, 이 탓에 자아실현의 목표가 너무 일찍 실종되어 버렸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이 '끊임없는 긴장'이라고 말한다. '자아실현의 꿈이 유보가 되더라도 포기하지는 않는 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의식세계, 생각의 세계는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요? 내가 내 생각에 대하여 점검할 때, 이것이 내가 주체적으로 형성한 것일 때라야 비로소 자기형성의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홍세화씨의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영화 <매트릭스>의 예를 들었다. <매트릭스> 속 세계가 '이미 프로그래밍된 세계'이듯, 만약 우리의 멘탈 세계가 사회 체제를 통하여 기획, 선택된 내용만 담고 있다면 그 역시 <매트릭스>와 다를 바가 없지 않겠냐는 이야기다.

데카르트가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스피노자가 말했다. "사람은 생각을 갖게 되고 누구나 고집한다"라고. 홍세화씨는 이 두 철학자의 명언을 인용하며, 학생들에게 '거칠게' 물었다. 우리가 고집하고 있던 생각이 스스로 해낸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사회화 과정을 통해 지배적인 가치관을 주입시킨 것일 수도 있다는 질문이다.

"(생각을) 갖고 태어났습니까?"
"창조하셨습니까?"
"갖고 태어나지도 않았고 창조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여러분이 고집하는 생각, 그러면 선택하셨습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왜 고집하십니까? 왜 고집하면서 소중한 자신의 푯대로 삼고 있습니까?"

"소유가 존재를 규정... 지금 한국사회 솔직히 참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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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에세이 <생각의 좌표> 표지 ⓒ 한겨레출판

그러면서 그는 특유의 '달걀론'을 펼쳤다. 그는 칠판에 가로로 길게 줄을 긋고 이 선 아래에 있는 사람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어려운 사람으로, 선 위에 있는 사람을 최소한의 존엄성은 지킬 수 있는 사람으로 보자고 말했다. 그렇게 '삶의 조건'을 분포도로 그린다면 한국 사회는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종으로 서 있는 상태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달걀 밑을 깨야만 서 있는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형태다.
그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키워드가 '불안'이라고 바라보았다. 실제로 '존엄성을 지키기 어려운' 사람은 7% 정도지만, 사람들이 불안에 지배되며, 누구나 '어떤 상황이 와서 내가 저 선 아래로 추락할 수 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는 그 때문에 사람들이 경쟁을 하게 되고, 또 그 경쟁이 불안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존재는 설 자리가 없고 소유가 존재를 규정한다. 지금 한국사회는 솔직히 참담하다"라고 밝혔다. 프랑스에서 2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보았던 광고 두 개의 예도 들었다, BC카드의 '부자 되세요' 광고와 롯데 캐슬의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군지 말해줍니다' 광고다. 그는 "처음 '부자 되세요' 광고를 봤을 때 앞에 어떤 문구가 생략된 줄 알았다" "열악한 주거환경을 가지신 분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와 같은 광고가 거리낌 없이 나갈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야만적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바라는 달걀의 모습은, 종으로 세워진 달걀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누운 달걀이다. 존엄성을 유지할 수 없는 '선 아래 사람'은 없고, 대신 중산층이 두꺼운 사회구조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그는 학생들에게 "각자가 각개약진하는 것보다 연대하는 것이 온당하며 이는 가능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경쟁의 늪에서 벗어나 연대를 모색하는 방안을 주문한 것이다.

예로 그는 반값등록금 문제를 들었다. 자신의 아이가 프랑스에서 대학원을 다니는데 학비가 1년에 약 390유로(약 60만 원)라며, 이미 프랑스에서는 국민소득이 1만불이 되기 전부터 무상교육에 가까운 정책을 시행했다는 것이다. 즉 우리 역시 '위로 가기 위한 경쟁'만 하지 않고 서로 연대한다면 충분히 시행할 수 있는 정책이라는 이야기다.

강연 말미에, 대학생들에게 하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독서'가 주체적인 생각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며 일주일에 최소 두 권씩 책을 읽으라는 '무리한 주문'을 하기도 했다. 강연이 끝난 후 한 학생이 "청춘 콘서트처럼 20대를 불안한 세대, 위로가 필요한 세대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홍세화씨는 "불안한데 뭘 위로받느냐"라며 "오히려 분노하고 싸우라고 말하고 싶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도 있지만, 나 같으면 '청춘이냐, 싸워라'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뼈있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윤형준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윤형준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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