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그래서 웅녀가 쑥과 마늘을 먹었구나

[서평] 태고와 오늘을 이어주는 <한국 신화, 그 매혹의 스토리텔링>

등록 2012.05.25 15:04수정 2012.05.2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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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녀가 삼칠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은 것은 여성의 생리주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 임윤수


연세 80이 넘은 국문학자가 한국 신화를 새로운 시각과 각도에서 조명했습니다. 손자 손녀를 앉혀놓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연상되고, 할아버지나 어른들로부터 들었을 법한 이야기들입니다. 평강 공주와 바보 온달 이야기도 나오고,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도 나옵니다. 당연히 한국 신화의 으뜸이라고 할 단군신화,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된 웅녀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런데 지금껏 들었거나 보았던 신화들과는 다릅니다. 지금껏 들었던 신화나 전설이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는 한낱 이야기였다면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 김열규 교수가 <한국 신화, 그 매혹의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고 있는 한국 신화에는 시대적 의미가 담겨 있고, 시대적 가치와 배경을 현대적 감각과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신화들은 황당할 정도로 과장돼 있거나 과학적인 개념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들도 아무렇지 않게 등장합니다. 현실적으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국 신화, 그 매혹의 스토리텔링>에서 저자는 신화에 황당한 무늬로 깔린 배경, 과장되어 이해할 수 없었었던 내용들을 현대적 감각과 언어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습니다.     

웅녀가 스무이레 동안 쑥과 마늘을 먹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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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화, 그 매혹의 스토리텔링> 표지 ⓒ 도서출판 한울

단군신화에서 웅녀는 삼칠일, 스무하루 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의 몸을 받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듣거나 읽었던 단군신화에서는 웅녀는 왜 많고 많은 먹을 것 중에서 쑥과 마늘을 먹어야 했고, 그 기간이 스무하루 동안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웅녀가 햇빛을 쐬지 않고 굴속에서 시간을 보내며 쑥과 마늘만을 먹은 것은, 초경 후 몸을 맑히기 위해서라고 추정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여성의 월경이 극히 근자까지도 부정하고 불결한 것으로 간주된 것을 고려한다면 이런 추정은 상당히 그럴싸한 것이 될 수 있다.


웅녀는 쑥과 마늘에 힘입어서 몸을 맑히고 삼가서 성년이 되고 신부가 될 자격을 갖추었던 것이다." <한국 신화, 그 매혹의 스토리텔링> 195쪽

웅녀가 쑥과 마늘을 먹고 그 기간이 스무하루였던 건 여성의 가임기와 생리적 주기, 여성의 생리에 대한 시대적 가치가 반영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웅녀가 스무하루 동안 쑥과 마늘을 먹어야만 했던 이유를 알지 못할 때는 그냥 허구적인 이야기에 불과했지만 '쑥'의 정화작용, 마늘의 '배가능력', 삼칠일에 담긴 의미를 알고 나면 우리의 신화가 허구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성의 음순을 잘라내는 '할례'도 있었다

"이와 같은 선류몽의 해석은 그다지 쉽지 않다. 해석을 위해 세 이야기의 공통점을 짚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선류몽을 꾸는 주인공은 결혼 직전이거나 결혼할 나이의 젊은 여성이다. 둘째, 꿈을 사는 사람도 앞의 여성과 처지가 같다. 셋째, 언덕이나 고재, 산봉우리 등 높은 곳에서 오줌을 눈다. 넷째, 꿈에서 온 천지가 오줌에 잠긴다. 다섯째, 꿈을 꾸거나 산 사람은 왕비가 된다.

이 다섯 가지 공통점으로 보아 천하를 잠기게 하는 오줌 꿈은 여성이 좋은 신랑을 맞이해 신분이 급상승하게 되는 꿈이라 풀이 할 수 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긴다. 왜 하필 결혼 적령기에 이 같은 오줌 누는 꿈을 꾸는 것일까?" <한국 신화, 그 매혹의 스토리텔링>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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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에서 웅녀는 삼칠일, 스무하루 동안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의 몸을 받습니다. ⓒ 임윤수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한 장면, 오줌을 누는 꿈에 대한 공통점을 분석한 설명입니다. 각각의 신화에 등장하는 하나의 꿈, 오줌을 누는 꿈 하나에서는 찾을 수 없는 공통점을 찾아냄으로 꿈에 반영된 시대의 가치를 읽을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대개의 사람들이 알고 있을 법한 이런 신화들을 단지 탄생신화로만 국한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랫입술'이라고도 했던 음순을 제거하던 '할례'로 시대에 반영된 여성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경(裸耕), '대지라는 여성에게 정액을 쏟듯이 씨를 뿌리는 사내'의 모습을 담고 있는 나경에 대한 설명으로 자연과 동일시되던 당시의 사는 모습도 그려 볼 수 있게 합니다.  

여는 글에 쓴 저자의 말처럼 <한국 신화, 그 매혹의 스토리텔링>은 '환상과 현실사이의 내왕'을 위한 길잡이, '태고와 오늘 사이의 왕복'을 위한 충실한 지표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한국 신화, 그 매혹의 스토리텔링>┃지은이 김열규┃펴낸곳 도서출판 한울┃2012. 4. 30┃값 16,000원┃


덧붙이는 글 <한국 신화, 그 매혹의 스토리텔링>┃지은이 김열규┃펴낸곳 도서출판 한울┃2012. 4. 30┃값 16,000원┃

한국 신화, 그 매혹의 스토리텔링 (반양장)

김열규 지음,
한울(한울아카데미), 2015


#한국 신화, 그 매혹의 스토리텔링 #김열규 #한울 #신화 #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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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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