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넷에 덜컥 '사장님' 된 것, 후회합니다

[돈의 맛- 쓰다①] 무턱대고 공인중개사 창업... 돈의 쓴맛은 탐욕에서

등록 2012.06.01 15:07수정 2012.06.0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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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부동산 사무실 안. 나의 첫 사업 보금자리인 이곳이 내게 처음으로 '돈의 쓴맛'을 맛보게 해줄 줄은 몰랐습니다. ⓒ 서상훈


3개월쯤 전에 일어난 입니다. 제가 운영하고 있는 부동산에 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그의 행색은 영락없는 노숙자였습니다. 냄새는 안 났지만요. 그 손님은 의자에 앉더니 다짜고짜 사무실과 원룸, 아파트를 각각 하나씩 구해 달라고 했습니다. 상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겠습니까? 부동산 중개업은 엄연히 서비스업입니다. 외양적인 것 때문에 손님을 차별하는 건 프로답지 못한 일이죠. 그 손님의 주문대로 여기저기 물건를 수소문했습니다. 그 손님이 대뜸 말합니다.

"계좌번호 불러 줘. 수수료 쏴 줄 테니까."

그 말을 들은 저는 속으로 난감하게 생각했습니다. 아직 계약서를 작성하지도 않았고, 물건을 보러 가지도 않았는데 중개 수수료부터 준다? '이게 말로만 듣던 '사기꾼'이구나'라고 의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정말 수수료를 잘 주는 손님일지도 모르는 거잖아? 대충 계산해도 백만 원 이상은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든 이 손님에게 중개수수료를 받자는 생각이 들면서, 손님의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속마음이 들킨 건가요? 좀 잘 보이려고 고개를 숙였더니, 손님은 거만해져서 한껏 저를 업신여겼습니다. 커피가 별로라느니, 니가 사업을 아냐느니, 요즘 부동산들 다 밥 굶고 있다며 불쌍하다느니…. 제가 손님의 신상에 대해 기본적인 질문을 할 때면 "아, 수수료 준다니까!"라는 식의 말로 제 입을 막았습니다.

'아, 수수료 준다니까!'

"돈 준다는 데 뭔 말이 많아"란 말에 저항도 못한 나

아직도 그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말을 하던 그 손님의 거만한 표정과 목소리도 생생합니다. 돈을 준다는 데 뭔 말이 많으냐, 뭐든 내가 시키는대로 해라, 이런 느낌을 받았지요. 그런데 그런 말에 별다른 저항도 못하는 제 자신이 더욱 더 모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얼마 후, 그가 사기꾼임을 이웃인 D중개업소 사장에게 들었습니다.


수수료를 넣으러 은행에 간다던 그는 D중개업소에도 갔던 모양입니다. 그곳에서 점심 값이 필요하다며 2만 원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는 고시원에 살며, 자신은 사업해서 얼마든지 자금을 융통할 수 있다고도 했답니다. 저보다 중개 경험이 많았던 D중개업소 사장은 그 손님이 두고 간 제 명함을 보고 연락했습니다.

허탈했습니다. '돈의 쓴 맛', 이런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부동산을 시작하고서 저는 '돈의 쓴맛'을 여러 번 보고 있습니다. 부동산이 돈과 가장 밀접한 재화여서 그런 것 일지도 모르지요. 얘길 꺼낸 김에 '돈의 쓴 맛'에 관한 저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저는 벌써 '돈의 쓴 맛'을 보았습니다. 아직 서른 중반도 안 돼서 부동산 중개업자가 된 저를 주변사람들은 의아해 할 정도로 바라봅니다. 개업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죠. 하지만 여전히 동네 어르신은 "젊은 사람이 부동산 하네~"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는 저는 '나이도 적은데 기특하다'는 뜻으로만 받아들였지만, 한편으로는 '부동산 하기에는 아직 어리다는 뜻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최근에야 들고 있습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남의 밑에서 일을 했지만,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었습니다. 무작정 사장이 되고 싶었죠. 이것부터가 탐욕의 발단이었습니다. 경험이 부족한데도, 섣부른 마음으로 사장이 되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별다른 준비도 없이 천만 원이란 거금을 빌려서, 서대문구에 부동산을 차렸습니다. 매월 월세가 수십만 원이 나가도, 저는 별다른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정말로 무식했죠.

첫 번째 '돈의 쓴 맛' : 부동산 창업

집 내놓은 사람과 집 구하는 사람을 잘 연결시켜주고, 계약서를 써서 수수료 받으면 되지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하고, 부동산 중개업계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미 이곳 서대문구는 다른 지역처럼 부동산 중개업소가 포화 상태라는 걸 모르고요.

올해 2월에 <아시아투데이>에서 '지방으로 봇짐싸는 부동산 중개업자- 서울, 지방 중개업 양극화 심화'라는 기사가 날 정도로 수도권은 더이상 중개업소를 차릴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방으로 떠나고 있겠죠. 공인중개사 자격증만으로는 중개업이 불가능하냐구요? 물론, 창업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업은 자격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한때, 자격증을 대여해 주는 유혹에 흔들린 적도 있습니다. 1년 대여해 주면 200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자격증 대여같은 일은 하지 않았지만요. 제가 부동산 창업으로 '돈의 쓴맛'을 본 이유는 우아하게 일하며,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기대만 하고 노력할 줄 몰랐고요. 결국, 노력없는 기대는 탐욕일 뿐이고 그런 탐욕은 첫 사업의 몰락이라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공인중개사가 노후대비 최고의 자격증이란 말, 광고 문구에서 보신 적 있으시죠? 이미 그건 큰 의미가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현장에서 거래는 실종된 지 오래고, 임대차 시장도 물량이 없습니다. 전·월세난은 만성화되어 있습니다. 부동산 중개업은 결코 노후에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 아닙니다. 발로 뛰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거든요. 시세차익을 기대하는 부동산 투자도 더 이상 시원치 않게 되었고요.

사진은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 2단지 상가 부동산 모습. ⓒ 연합뉴스


한때 경매 시장이 인기를 끌었던 것도, 오피스텔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수익성 부동산이 주목받는 것도 모두가 기존 주택 시장이 더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는 걸 반증합니다. 지방과 일부 지역에서는 국지적으로 투기 열풍이 일고 있지만, 적어도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내에서 주택으로 시세 차익을 거두는 건 이제 시들해진 것이지요. 하지만, 저 역시 그런 시세 차익을 기대하는 손님에게 편승해서 중개수수료를 벌 생각으로 중개업계에 뛰어든 것이니, 낭패를 볼 수밖에요.

빌린 돈 천만 원이라는 거금에, 다달이 나가는 이자에 월세까지…. 완전 '돈의 쓴맛'을 제대로 보고 있습니다. 이미 주변의 중개업소 사장들은 폐업, 전직, 이사 등을 하고 있더군요.

"방은 많은데, 보러 오는 손님이 없어요" (서대문구 D부동산 박 모 사장님)
"저 사무실 내놨습니다. 보험 팔아요." (서대문구 S부동산 이 모 사장님)
"월세가 부담돼서…. 다른 데로 옮겨갑니다." (종로구 J부동산 사장님)

아직 중개업을 하고 있는 사장도 '너무 하기 싫다','적성에 안 맞는다','움직임이 없다', '요즘 논다','내년에 그만둘 거다' 대개 이런 반응입니다. 중개업소에서 담배와 복권은 물론이고, 사과까지 팔기도 합니다. 또, 대출 상품 판매를 돕고, 이삿짐 센터와 인테리어 샵과 연계하는 마케팅, 분양 대행을 돕는 등 이미 중개업소는 중개업이 아닌 다른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게 일반화 되었습니다. 이젠 부동산에서 택배까지 취급한다더군요.

저도, 이 참에 택배를 취급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의 문제점 하나만 더 짚고 싶습니다. 공인중개사는 국토해양부에서 실시하는 국가공인 자격제도입니다. 현재는 학원가에서는 공인중개사가 '국민 고시'라고 불리울 정도로 응시자가 많습니다. 하지만 합격자 중에는 실제로 개업하는 이가 적은 걸로도 유명한 자격 제도죠.

문제는 공인중개사가 국가에서 공인하는 사실상 유일한 부동산 전문가 자격제도임에도 국가에서 시행하는 전문교육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신규 중개업자의 진입을 어렵게 하고, 중개업 시장이 관습대로 흘러가는 것을 방치하는 현실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기존 중개업소의 경영도 점점 악화됩니다. 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죠.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사정이 어려운 데, 현재 중개업소는 어떻게 먹고 사는 것이냐, 하는 게 의문이요. 대부분 중개업자는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까먹고' 있거나 부동산이 아닌 다른 것으로 수입을 내고 있답니다. 부동산 중개로 돈버는 중개업자는 거의 없다는 게 중개업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지요. 다른 것, 뭐로 수입을 내냐구요?

두 번째 '돈의 쓴 맛' : 주식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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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돈의 맛>의 김강우. <돈의 맛>에서 김강우는 '돈의 쓴맛'을 볼 위기에 여러번 처하게 됩니다. 저는 대체 뭘 믿고 돈에 홀렸던걸까요? ⓒ 휠므빠말


M부동산에 신 모사장은 미혼인 제게 두 번이나 선을 주선해 주었습니다. 그는 두 번째 맞선을 권하면서, 요즘에는 주식에 투자한다고 하더라고요.

"한 달에 천만 원은 벌어요."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말이 '주식투자는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해서, 솔직히 주식은 쳐다도 안 봤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부동산을 개업해 1년 정도 지내다보니, 안 그래도 불경기라 이웃 상인들 중에는 주식으로 수입을 올리는 이가 꽤 있더라고요. 부동산 중개업자도 있고요. 그래서 저도 주식투자를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평소에 잘 아는 지인이 추천한 A, B, C 세 종목을 사게 되었지요. 이런 말은 하기 뭐하지만,정말 배고파서 어쩔 수는 선택이었어요. 중개업으로는 살림이 거덜나게 생겼기에 마지막까지 쓰지 않겠다고 결심한 비상금인 400만 원을 주식에 투자했습니다. 점심 값이라도 벌어보자는 생각이었죠.

처음에 산 A, B 두 종목은 꾸준히 올라 주더군요. 저의 주식은 돈을 많이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조금 벌더라도 잃지 않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지인이 정해준 매도 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까지 왔을 때에 전부 팔아버렸죠. 그런데 이 주식이란 게 참 묘하더군요. 없던 욕심이 생겼어요. '50원 만 더 쓰면 몇만 원 더 버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팔기를 주저하고 조금 망설었더니 결심했던 매도 가격은 점점 올라가더군요.

정작 팔고 나서 다행이다 싶었지만, 그후에도 A, B 종목은 가격이 더 올랐습니다. 주위에서는 더 벌 수도 있었는데, 왜 그렇게 성질이 급하냐고 말하는 이도 생겼죠. '더 이상 밥을 굶고 싶지 않았어요.' 부동산 셔터를 내리고, 다른 일을 구하려고 해도 사무실이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또, 대학을 중퇴하고 취직 나이도 넘긴 서른 넷이란 나이인 저를 받아 줄 만한 곳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괜찮았어요. 제가 '돈의 쓴 맛'을 본 건 C 종목 때문입니다. A, B 종목이 조금이나마 수익을 남겨줬기에 저는 같은 지인에게서 추천받은 C를 신속하게 매수했습니다. 살 때에 목표 가격보다 싸게 사서 좋았고, 산 다음날 오르더군요. 신이 난 저는 이번에야말로 목표 가격에 팔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만 가지고 있자는 생각이었습니다.그리고 기다렸죠.
'왠 걸, 그리스 사태로 유로존 위기가 터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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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돈의 맛>의 백윤식. <돈의 맛>에서 백윤식은 돈에 중독되었던 자신의 삶을 회고하죠. 지금 제가 마치 백윤식과 같이 느껴집니다. ⓒ 휠므빠말

순식 간에 주가는 하락을 거듭했습니다. 하루에 20포인트 넘게 계속 빠졌죠. A, B 종목으로 그나마 났던 수익이 다 없어지고, 어느새 수익률은 마이너스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투자자들 표현대로 '물린' 상태입니다.
부동산 창업에 이어 또 한번 '쓴 맛'을 본거죠. 이것, 역시 저의 잘못입니다. 주식으로 돈버는 것이 결국은 돈으로 돈을 버는 것입니다. 역시, 별다른 수고없이 수익을 보려고만했던 저의 탐욕이 '돈의 쓴맛'을 보게 한 것이지요.

글로벌 경제 분석도 하고, 10원이라도 더 싼 가격에 사려고 노력도 해 보고, 더 수익을 내려 하지 말고 손절매를 하던가, 아니면 아예 수익이 난 뒤에 C 종목의 매수를 조금 미루고 시장을 지켜보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는 그리스와 스페인 사태가 잘 해결되길 바라고, 국내외 경제에 어떤 사고가 없기를 바라며 갈수록 손해보는 C 종목을 어찌할 수 없게 된 저는 침울하게 지낼 수 밖에요. 저의 마지막 남은 비상금까지 까 먹고 있으니, 저는 정말 '돈의 쓴맛'을 제대로 보고 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본전을 찾을 것이다, 이런 고난이 분명 저에게 주는 교훈이 있을 것이다 믿고 버티고 있습니다. 

영화 <돈의 맛>의 배우 백윤식이 그랬듯이, 돈을 좇아 산 제 삶에 대해 제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앞으로는 '돈의 쓴 맛'을 보고 싶지 않기에 탐욕을 버리고, 정당하게 노력한 대가만을 바라는, 아니 그것조차 바라지는 않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독자님은 어떠세요, 저처럼 '돈의 쓴 맛'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없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돈의 맛 #쓴맛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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