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모은 돈인데...'멘붕'이 왔습니다

[돈의 맛- 달콤 쌉싸름④] 돈에 웃고 우는 인권단체 사무국장 이야기

등록 2012.06.06 14:38수정 2012.06.0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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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모습. ⓒ 친구사이


[#1] "아니, 그걸로 어떻게 운영이 돼요?"


성정체성 관련 상담이나 언론 인터뷰 때문에 내가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이하 친구사이)와 같은 인권단체를 처음 방문하시는 분은 종종 이런 질문을 한다.

"어떻게 운영하고 계시나요? 수입원이 있나요?"

동시에 국가의 지원은 없는지도 궁금해한다. 하지만 친구사이는 어떠한 정부 및 국가기관의 지원없이 매월 소액을 기부하는 소중한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런 사실에 놀라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또다시 그 후원금으로 단체 운영이 가능한지 되물어온다. 그럴 때 내가 상대방에게 건네고 싶은 것이 단체 활동을 소개하고, 후원신청을 할 수 있는 친구사이의 예쁜 리플릿이다. 그렇다. 빠듯한 인권단체의 경제사정에서 가장 든든한 버팀목은 CMS(cash management service) 후원이다. 소수자 인권을 위해 필요한 갖가지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소중한 후원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친구사이 회원들은 리플릿 건네기에 혈안이다. 친구사이는 매년 송년회 때 '올해의 CMS 여왕상'(그 해 가장 많은 CMS 후원 받은 회원에게 주는 상)을 시상하기도 한다. 결국 돈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단체의 가치와 비전을 알리고 이를 실현하는 데 같이 동참해달라고 설득하는 과정 자체가 바로 운동이다. 단체는 적극적인 운동의 결과로 단체운영도 하고, 후원자는 의미있는 운동에 동참하여 달콤한 돈의 맛을 느낄 수 있다. 

[#2] 통장 든 가방 분실에 '멘붕 상태'


인권단체는 사업을 진행한다. 그 사업을 위한 예산에 자체예산도 있겠지만, 이러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금이 나오는 여러 재단의 지원사업에 신청서를 제출해 지원금을 받기도 한다. 해당 지원금의 성격에 맞게 잘 작성한 지원서를 제출해야 선정될 확률이 높다.

지원금 액수가 크면 클수록 이를 현명하게 잘 써야 하기에 지원서를 작성하는 담당자는 신청서 작성 즈음에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사업의 내용과 기획의도를 통해 왜 이 사업이 필요한지, 이 사업의 대상에 어떻게 효과적인 변화를 줄 수 있을지 상상력을 실제로 현실화할 수 있도록 문자화된 글로 쉽고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한 작성자가 작성한 지원서를 다른 동료 활동가에게 회람하여 내용을 수정하고 오타나 비문을 고치며 제출 전까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


갖은 노력과 고민 끝에 받아낸 지원금은 정말 함부로 쓸 수 없다. 그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기부한 수많은 기부자들의 바람을 안고 사업담당자는 사업을 진행한다. 이 공간을 통해 고백하는데 나는 몇 년 전 귀중한 지원금이 들어있는 통장이 든 가방을 분실했다가 고마운 식당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되찾은 적이 있다. 한 이틀 머리가 멍한 '멘붕' 상태였다. 그 때 느꼈던 돈의 맛은 정말 씁쓸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마음이 담긴 지원금을 얼마나 책임감 있게 써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좋은 계기였다.

[#3] 후원의 밤, 격정의 밤

후원의 밤은 격정의 밤이다. 단체 운영상 긴급하게 많은 기금 마련을 위한 자리가 필요할 때 이런 자리를 만든다. 마음이 급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모금의 의미를 설명해야 하고,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단체로서 정말 의미있는 사업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거나 단체 사무실을 옮겨야 하는데 보증금이 많이 부족할 때 등등 이유는 다양하고, 목적의식도 분명하다.

다양한 전략이 난무하는 이 밤에 단체 활동가들은 목표 금액 달성을 위해 며칠 전부터 사랑의 문자 메시지, 우정의 티켓 판매 등의 활동에 여념이 없다. 평소에 얼마나 관계 맺기를 잘했느냐, 그동안 단체가 얼마나 활동을 잘했는지에 따라 그날 모금액의 액수가 판가름이 난다. 결국 하룻밤에 끝날 일이 아니었다. 격정의 밤이 끝나고 나면 평가의 시간이 돌아오고, 목표치 달성여부를 떠나 준비과정에서 겪었던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달래기 위해 쉼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마음 한구석은 모아진 돈으로 단체의 급한 사정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후련하다. 몸과 마음은 피곤하지만,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것 때문에 그래도 한 숨 놓을 수 있다.

[#4] 우리의 가치 실현시키는 '돈의 맛'

인권단체의 재정 상황은 항상 빠듯하다. 재정이 넉넉하면 좋겠지만 사업 규모에 맞게 예산을 작성하고 그 만큼의 돈을 모아 지출하여 실행하는 것이 운영하는 사람으로서는 부담이 적다. 하지만 변화는 좀 더 노력을 해야 가능하다. 미래의 변화를 위해 구성원들 개개인의 상상력이 만날 때 소통이 이루어지고 일은 시작된다. 예산 문제가 골치를 썩일 테지만 생각과 마음이 통하여 서로의 머리를 맞대다 보면 상상력은 결국 운동의 동력으로 바뀌어 곧 변화는 이루어진다.

결국 돈은 상상하는 사람의 상상력을 현실화시키는 데 가장 큰 장벽이지만 또한 대안적인 가치와 변화를 이루어 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가장 끈끈하게 결속시키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이 달콤하고도 쌉싸름한 돈의 맛을 상상하는 순간 우리의 가치는 결국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돈의 맛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세상 사는 사람들의 돈의 맛이 서로 다르겠지만 인권단체 활동가인 내가 느끼는 돈의 맛은 희망을 시작케 하는 꿀맛인 동시에 힘들게 활동하고 싸워야 변화를 얻을 수 있는 쓴맛이다.
#돈의 맛 #인권단체 #활동가 #성소수자 #친구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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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활동하는 이종걸 입니다. 성소수자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이 공간에서 나누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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