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적인 여행지? 30년 전 그들의 '피땀'을 보세요

파독 동포들의 설움이 어린 '독일마을', 그리고 <그리움의 종착역>

등록 2012.06.11 15:57수정 2012.06.1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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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리움의 종착역> 포스터 영화 <그리움의 종착역>은 독일마을 세 부부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담고 있다. ⓒ (주)에스와이코마드

2010년 제 고향인 충남 당진에, 경남 남해에 이은 국내 두 번째 독일마을이 들어선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려는 목적이겠구나 싶었는데 내용을 들여다보니 과거 파독된 광부, 간호사들이 정착할 터전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무심하게 보도를 받아들이고 같은 해 남해안 일주도 할 겸, 독일마을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 여름휴가 차 그곳을 찾았습니다.

여행을 앞두고 이 마을에 대해 여러 블로그와 보도를 찾아보다가 독일마을의 아름다운 풍광 뒤에 숨겨진 슬픔과 조우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제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파독되어 청춘을 바쳤고, 또 다시 고국에 정착까지 어려움을 겪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독일마을은 사진에서 보는 다홍빛 지붕이 아름다운 이국적 관광명소가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안고 있는 우리네 자화상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후에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면서 알게 된 사실은 더욱 참혹했습니다. 그해 독일마을 여행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삶과 우리나라 산업화의 이면을 들여다 보는 좋은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영화 <그리움의 종착역>을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그리움의 종착역>은 30년간 파독 간호사로 살아온 세 명의 할머니들이 전하는 파독과 정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독일인과 결혼을 했지만 고향을 그리워했고, 결국 30년 뒤 독일인 남편들과 함께 경남 남해의 '독일마을'에 정착하게 된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군사 쿠데타의 희생양, 파독 광부와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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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마을에서 내려다 본 남해 쪽빛바다 독일마을에는 남해의 쪽빛바다만큼 깊고 진한 사연이 있다. ⓒ 이재승


1961년, 군사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의 제1목표는 경제 발전과 산업화. 이를 위해서 군부는 많은 돈이 필요했지만 돈을 빌려오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이에 박정희는 독일이 간절히 원하던 광산 노동자와 간호사를 파견하여 3500만 불의 외화 벌이에 나서게 됩니다.

당시 파독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한국으로 송금해 오는 금액의 우리나라 총 수출액의 30%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고 합니다. 유학, 돈의 꿈을 품고 떠났지만 그들이 말하는 3년간의 광부 생활은 그야말로 생지옥을 방불케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독일에서 3년 계약이 끝낸 광부와 간호사들은 자신의 꿈을 찾아 미국, 캐나다, 스위스 등 전 세계로 흩어졌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박정희에 의해 독일로 보내진 제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광부와 간호사들 대다수는 지금도 낯선 땅 독일에서 낯선 이방인으로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가난한 조국에서 못 이룬 꿈을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고, 이제는 다시 그곳에서 이룬 가정을 위해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들은 한 번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남해군, 파독 광부와 간호사에게 손 내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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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마을 안내문 독일마을 건립을 주도한 김두관 경남도지사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다. ⓒ 이재승


이들의 소식을 들은 남해의 따뜻한 손길이 전해진 것은 지난 2003년입니다. 독일마을에 대한 아이디어는 당시 남해군수로 재직하던 김두관 경남도지사에 의해 탄생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남해군수인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남해 스포츠파크에 심을 사계절 잔디를 구하러 독일을 방문했다가 만난 파독 광부의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집도 없고 터전도 없다'는 하소연을 듣고 독일마을 사업을 검토했다고 합니다.

당시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 황폐해지기 시작한 남해에 파독 광부, 간호사들의 터전을 만들면 지역 개발은 물론 이역만리 동포들의 향수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남해 독일마을은 그렇게 탄생되었고,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가족들이 고국 남해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독일마을 건립에 앞장선 김두관 경남도지사의 첫째 형 역시 파독 광부로 일했었다는 점입니다. 그의 첫째 형은 귀국 이후 개척교회 목사를 거쳐 현재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과거 탄광 체험을 하면서 첫째 형에 대한 소회를 자주 털어놨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독일마을이 남해에 자리잡게 된 이유가 가족을 이역만리 타향에 보내고 가슴아파했을 가족의 마음으로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바라봤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지금도 남해 독일마을에 가면 "남해군 전임 김두관 군수가 행정자치부, 문화관광부, 경상남도의 지원을 받아 1960~1975년에 간호사와 광부로 머나먼 이국 땅 독일로 건너가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고, 조국 근대화에 큰 주역을 담당했던 우리 교포들이 고국에서 조용히 노년을 보내게 정착할 수 있는 삶의 터전 독일교포 정착마을입니다"라는 안내문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영화 <그리움의 종착역>에서 만나는 독일마을의 또 다른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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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 간호사들의 삶을 그린 영화 <그리움의 종착역>의 한 장면 ⓒ (주)에스와이코마드


남해 정착 10년, 독일마을에서 여생을 보내는 세 부부는 지금도 서로 독일어로 대화를 합니다. 가장 마음 아프게 다가온 장면은 수십 년 전에 고국을 떠나 향수병을 앓았을 아내들처럼 귀국한 지 10년 된 남편들이 이와 유사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독일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관광지로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것도 좋지만 노년을 보내는 집이 늘 관광객으로부터 포위당하는 느낌을 받는 이들에 대한 배려 역시 필요해 보입니다.

남해의 독일마을은 이미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꼭 찾아가봐야 할 '이국적인 국내 여행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마을에 숨겨진 이야기는 여전히 남해 쪽빛 바다처럼 깊은 심연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피땀 흘려온 30년의 세월, 한 정치인의 아이디어와 그 뒤에 숨겨진 가족 이야기가 그것들일 것입니다. 독일마을의 아름다운 풍광만큼이나 그들의 이야기도 회자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영화의 제목처럼 남해 독일마을이 힘겨운 삶을 살아온 그들의 종착역이 될 수 있길 바라봅니다.
#그리움의 종착역 #독일마을 #파독 광부 간호사 #김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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