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로와 에까마이 빈민촌 지역의 아이들 지킴이

[인터뷰] 정혁구, 최인숙 선교사 부부

등록 2012.06.19 17:37수정 2012.06.1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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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은 동남아시아의 중심도시로 세계의 그 어느 유수의 도시 못지않게 웅장하고 화려한 도시다. 바이욕 타워를 비롯한 수많은 마천루와 시암 파라곤, 센트럴 월드, 터미널 21, 엠포리엄 백화점 등 각종 쇼핑몰이 즐비해 있고 값비싼 최고급 호텔들과 레스토랑들 그리고 각종 국제학교와 유수의 대학들이 즐비한 도시다.

특히 수쿰윗 로드에 있는 통로와 에까마이는 신흥 부촌으로 유명한 곳으로 각종 쇼핑몰과 외국인 거주지, 최고급 레스토랑, 고급 아파트와 콘도가 즐비해 있다. 하지만 대로변 안쪽에는 한 달에 3000바트 이하의 벌이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도시 빈민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이 존재하고 있다. 도시의 어두운 일면이라 할 것이다. 이 빈민촌에서 빈민촌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학생사역을 하고 있는 부부선교사가 있다. 정혁구, 최인숙 선교사 부부가 그들이다. 기자는 이들 선교사 부부를 만나 통로와 에까마이 지역의 삶에 대해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다음은 정혁구 선교사와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 이곳 통로와 에까마이 빈민촌 지역은 어떤 지역인지?
"먼저 통로지역은 하천부지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무허가 시설로 정부에서 인정한 지역은 아니지만 사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묵인 한 지역이다. 여기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40년 이상 산 사람들도 있다. 경찰아파트와 일반 고급아파트 사이의 시궁창 위에 집을 짓고 살거나 아니면 빡소이부터 통로와 에까마이를 지나가는 하천을 따라 기다랗게 빈민촌을 형성하여 다닥다닥 붙여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여기에 살고 있는 주민은 약 800세대가 살고 있으며 한 채의 집안에 몇 세대가 같이 살고 있으며 방 하나에 보통 4~5명의 가정이 함께 살고 있다.

에까마이 지역은 도시 일용직 근로자들이 주로 모여 살고 있으며 에까마이 소이 30지역이다. 에까마이 지역에는 약 2500세대가 살고 있으며 원래 이곳은 호수로 물이 가득 차 있던 곳으로 사유지가 아닌 국유지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이곳에 나무 말뚝을 박아 집을 지어 생활하는 곳이다. 지금은 깨끗하지는 않지만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변했다. 하지만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주소가 없이 무허가로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집을 사거나 팔 수는 없다. 정부의 묵인 하에 살고 있을 뿐이다. 만일 통로와 에까마이지역에서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은 엄청난 부자인 경우가 아니면 불가능한 곳이다. 국유지인 관계로 국왕의 허락 하에 무허가로 집을 짓고 살고 있는 것이다."

- 이곳 사람들의 생계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대다수 주민들은 도시 일용직 근로자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보통 배운 것이 없고 힘들기 때문에 쓰레기나 넝마 같은 것들을 주어 팔아 생계를 이어가기도 하고 노점상을 하든지 젊은 여자들의 경우는 유흥업소 종사자로 일하며 살고 있다. 간혹 오토바이 납장 같은 경우 한 달에 1만 5000바트 정도 버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경우 오토바이를 소유할 정도의 정상적인 사람들이고,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주민들의 삶은 힘들기 그지없다. 심지어 한 달에 3000바트로 일가족이 생활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또한 태국의 종교는 불교로 전 국민의 94.6%가 불교를 신봉하고 있지만 이지역의 빈민촌은 종교적으로 두 지역 다 이슬람교가 60~70% 이상이다. 이슬람교의 포교를 위한 빈민구제 정책과 도움 때문에 그들은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중들도 이곳에는 없다. 스님이 들고 다니는 바리에 시주를 하고 절을 하는 고덕을 쌓는 일인 탐분이나, 불자들이 스님의 바리에 음식을 넣어 시주를 하기 위해 다니는 싸이 밧 행렬도 이곳에서는 행해지지 않는다. 소이 28지역에서는 탐분이나 싸이 밧이 이루어지지만 소이 30은 스님들로 부터도 소외된 지역이다.

- 정부나 불교단체, 혹은 기독교 단체의 지원은 없는지?
"정기적인 지원은 아니지만 지원이 있으며 정부지원의 경우 원래 이 지역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다가 빈민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 되면서 주소가 등록되어 있지 않은 무허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수도와 전기를 공급해주고 그런 공공 인프라를 정부가 신경을 쓰고 하나씩 늘려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의용소방대 라든지, 자율 방범대 조직 같은 것도 갖추어져 있다."


- 이들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와 현재 하고 있는 사역은?
"저희는 기독교 선교사로 태국에 오게 됐다. 맨 처음 2005년 치앙마이에서 선교사역을 시작 그곳에서 부인을 만나 결혼하게 되고 다시 수영록 교회의 파견 선교사로 태국에 와 언어교육을 받게 된다. 외국으로 파견된 선교사의 경우 그 나라 언어를 배우기 위해 1년 동안 정기적으로 학원을 다닌다. 그 나라 언어를 알아야 선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교육이 끝나고 나면 선교사들은 자기가 할 사역을 찾게 되는데 저희가 맨 처음 생각한 사역은 부인이 유아교육과 출신인 관계로 어린이를 가르치는 유치원 사역을 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학생사역을 하고 있던 선교사가 한국으로 철수하면서 이곳에서의 학생사역에 대한 제안을 받고 이들과 인연을 갖게 되었다. 저희는 부부 선교사로 아직 아이가 없기 때문에 그런 부분으로 인해 더욱 빨리 이곳 아이들과 친숙하게 됐다. 부부이기 때문에 역할 분담을 통해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 모두를 보듬어 안을 수 있었고 그들의 상담 및 지도에 유리하여 아이들이 쉽게 안정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곳에서의 사역으로 에까마이에 타이비전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통로지역에서는 방과 후 학생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에까마이 타이비전센터는 학생들을 위한 청소년 쉼터 형식으로 운영되는데 학생들이 방과 후 센터에 와서 탁구나 컴퓨터 또는 악기를 통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준비돼있고, 매주 2~3회 음악수업이 진행 중이다. 통로 공부방 운영은 주중 매주 화요일~금요일까지 매일 오후 2시부터 오후 7시까지 공부방 형식으로 운영되며, 아이들에게 태국글자읽기, 숙제 도와주기, 그리고 주 2~3회 음악교육으로 바이올린과 플룻을 가르치고 그리고 미술 수업을 한다."

- 이 사역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과 소망은?
"이 사역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은 멀리 타국에 와서 이곳 아이들과 마음이 서로 떠졌다는 것이 보람이라면 보람이다. 저희가 가르치는 부분에 대해 잘 받아드리고 힘들지만 이들과 함께 에까마이 타이비전센터와 통로의 방과 후 학생 공부방을 꾸려 나가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이곳 아이들의 경우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도 소외된 빈부의 차이가 뚜렷이 구분된 태국사회내부의 밑바닥에 사는 아이들이기에 아이들로서 당연한 사랑받을 권리,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를 저학년 교육조차 박탈당한 체 살아가는 도시빈민촌의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의 대부분이 편부, 편모슬하에서 자라고 있으며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상처받은 아이들이다. 그런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그런 역할을 함으로써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소망이 있다면 이 지역의 빈민촌 태국 학생들이 기독교 안에서 장래에 꿈과 소망을 가지고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건강한 태국 청소년으로 사회에 한몫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학생들이 자라는 것이며 이들이 멋들어지게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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