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실 버린 전주대 총장님, 어디 계신가요

[엄마들의 파업①]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 - 정애진씨

등록 2012.06.21 14:42수정 2012.06.21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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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치인이나 바꾸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개인 한 명 한 명 연대의 힘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올초 한일병원 식당노동자들의 파업을 이끌었던 한 조합원의 말이다.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아줌마'이자 '엄마'였다.

한달을 넘긴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이 파업에 동참한 조합원 역시 아줌마들이다. "아줌마들이 뭘 알겠느냐"는 전주대·온리원 측의 조롱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녀들의 파업의지는 점점 강해져만 간다. 순박하고 평범한 우리 엄마들이 어쩌다 파업에 나서게 됐을까? 누가 그녀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녀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기자 주>

정애진씨(55)씨는 3주 전부터 트위터를 시작했다(트위터계정 @duocell213). 전화 통화 외에는 딱히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았던 정씨가 '작정하고' 트위터를 시작한 이유는 오직 한 가지다. 그녀가 몸 담은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현장과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서다.

올해 5월 7일 시작한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파업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팔로어 숫자는 점점 늘어난다. 정씨를 지난 6일 전주대학교 총장실에서 만났다.

정애진씨는 34명의 청소노동자 중에서 막내다. 나이순으로는 '언니'에 속하지만, 입사 경력은 가장 짧다. 정씨는 이곳에 오기 전, 화장품 판매업과 식당 사업 등 많은 일을 했다. 자녀들도 모두 남부럽지 않은 곳에 취직했고, 이제 남편과 함께 여생을 즐기며 사는 일만 남았다.

가장 마지막으로 했던 식당 사업을 정리한 뒤 1년쯤 쉰 정씨는 새로운 일자리를 찾았다. 집에서 놀고만 있으니 "몸이 근질근질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곳이 바로 전주대·비전대 청소용역이었다. 올해 2월 20일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좋은 자리가 있나 싶었죠. 주말에 쉬고, 일찍 퇴근하고... 그런데 막상 와서 일하는 것 보고 너무 놀랐어요. 다들, 일을 무서워하지 않고 너무 열심히 하는 거예요. 제가 보기엔 너무 힘든 일인데도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억척같이 일하는 걸 보고 놀랐죠."


a  정애진씨는 직장생활을 하고있는 자녀들에게 혹 피해가 갈지 모른다며 정면사진은 정중히 사양했다. 어쩔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이다.  그 마음을 잘 알기에 더이상 요구하지 못했다.

정애진씨는 직장생활을 하고있는 자녀들에게 혹 피해가 갈지 모른다며 정면사진은 정중히 사양했다. 어쩔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이다. 그 마음을 잘 알기에 더이상 요구하지 못했다. ⓒ 안소민


그것이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열정에서 나온 근무가 아니란 걸 정씨는 곧 깨달았다. '반론' '이의제기'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근무환경 탓이었다. 

"근무요건이나 환경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집에 가서 애나 봐라'는 식으로 우리 말을 무시했어요. 무슨 말을 해도 말이 통하지 않았어요. '싫으면 관둬라'는 식이었으니까. 처음에 여기와서 노조가 없다는 사실이 정말 이상했어요.


제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노조는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만드는 거잖아요. 그런데 온리원 측 관리자들이 '노조는 무조건 빨갱이다, 노조는 회사 피빨아먹는 존재다'라는 말도 안 되는 인식을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주입시켰던 거예요."

학생회관서 점심먹다 계약서 사인 강요당해 

이건 아니다 싶었다. 정씨는 처음에 근로계약서 작성할 때부터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이었다. 일을 마친 정씨가 학생회관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데 온리원 측의 청소용역 담당자가 오더니 계약서를 내밀며 사인하라고 했다. 정씨는 계약서 내용을 천천히 읽어본 뒤 다음날 하겠다고 했으나, 온리원 측에서는 읽을 필요 없으니 그냥 사인만 하면 된다고 했다. 쥐고 있던 숟가락 대신 볼펜을 쥐여주며 사인을 반 강제로 시켰다.

입은 있으되 말해선 안 됐고, 귀가 있어도 못 들은척 해야했다.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들은 이렇게 몇 년간을 온갖 잡일을 하며 근근이 버텼다. 다행히 정씨는 최근에 입사한 터라, 선배들만큼 어처구니없는 노동과 부역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선배들한테 들은 얘기에 의하면 온리원 매장을 청소하거나, 체육부 학생들의 김장을 담가주거나, 지역 축제마다 세워지는 온리원 매장부스에서 물건을 파는 등의 업무 외 일은 당연히 해야되는 것으로 여겼다. 그 일에 대해서 한마디 반론이라도 제기한다면 돌아오는 대답은 오직 하나였다.

'싫으면 관둬'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대단한 혜택을 받겠다는 것도 아니고 불로소득을 얻겠다는 것도 아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다. 노조를 인정해주고 기본적인 근무환경을 조성해달라는 것이다.

총장실을 버린 총장

이들이 전주대 총장실을 검거한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그러나 총장은 총장실을 버렸다.  집무실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아예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간접표현이다. '총장 고 건'이라는 명패옆에 나란히 한 여자화장품이 이 부조리한 현실을 보여주는 듯 하다.

a  총장실을 점거한 이후, 조합원들에은 이 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총장이 버린 총장실의 책상위에는 명패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총장의 명패와 나란히 자리한 조합원들의 화장품이 기묘한 현실만큼이나 어색해 보인다.

총장실을 점거한 이후, 조합원들에은 이 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총장이 버린 총장실의 책상위에는 명패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총장의 명패와 나란히 자리한 조합원들의 화장품이 기묘한 현실만큼이나 어색해 보인다. ⓒ 안소민


"가장 화가 나는 건 무시당한다는 사실이에요. 총장실을 점거했는데도 그냥 우리를 유령인간처럼 취급하고 있어요. 아예 사람취급을 안 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더 싸울 겁니다."

다행히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들의 소식이 트위터를 통해 알려지면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소설가 공지영씨가 후원계좌로 도움을 주었고, 쌀, 화장지와 같은 생활용품도 전국에서 도착하고 있다. 직접 격려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의 걸음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연대'의 힘이 이들을 지켜주고 있다.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역시 가족이다. 정씨의 아들과 딸은 어디 내놓아도 부럽지 않을 만큼 탄탄한 직장에 다니고 있다. 자녀들은 엄마에게 일을 그만두고 편히 지내라고 권유한다. 그럴 때마다 정씨는 단호하게 말한다. 엄마 인생 엄마가 사는 거라고. 정애진씨의 남편 역시 아내의 파업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파업 그만두라고 말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사실 말없는 지지인 셈이다.

"한번은 남편이 저에게 '보여?'라고 묻더라고요. 제가 '뭐가 보여?'했더니 남편은 '끝이 보이냐고?'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뭐랬는 줄 아세요. 당연히 보인다고 했어요. 이기는 날까지 당당하고 독하게 싸울 겁니다."

파업으로 삶에 변화, 새로운 눈이 뜨인 것

이번 파업으로 인해서 정애진씨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전까지는 큰 풍파 없이 평범한 삶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채널을 돌렸고, 정치·사회문제는 남자들의 전유물인 줄만 알고 지내왔다. 지난 4·11총선때도 별다른 관심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새로운 눈이 뜨인 것이다.

"예전에 파업하고 시위하는 사람들 보면 정말 이해가 안 됐어요. 저렇게 시위할 바에 딴 데 가서 일하면 될 것 가지고 왜 그럴까, 싶었죠. 그런데 막상 제 일이 되고 보니까 이제야 알겠어요."

a  55세에 시작한 트위터다. 트위터에 멘션을 올리고있는 정애진씨의 뒷배경으로 현수막과 대자보가 걸려있다.

55세에 시작한 트위터다. 트위터에 멘션을 올리고있는 정애진씨의 뒷배경으로 현수막과 대자보가 걸려있다. ⓒ 안소민


오늘도 총장실로 출근하는 정애진씨. 34명의 조합원들중에서 유일하게 스마트폰을 가지고있다는 이유로 트위터를 시작했지만 트위터는 그녀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다. 그녀는 앞으로도 조합원들의 입과 귀가 되어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관심입니다. 더불어 경제적인 후원도 절실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후원 부탁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관심입니다. 더불어 경제적인 후원도 절실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후원 부탁드립니다.
#전주대 비전대 청소노동자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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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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