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관의 발견>을 발견하다

일곱 사람이 쓴 <김두관의 발견>을 읽고

등록 2012.06.20 19:54수정 2012.06.21 09:07
0
원고료로 응원
a

<김두관의 발견>(사회평론 간) 표지 이 책에는 일곱 명의 전문가가 각자 주어진 입장에서 김두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정치인에 대한 책 치고는 객관성과 논리성이 담지된 책이어서 호감이 갔다. ⓒ 이명재

그렇다. <김두관의 발견>을 발견했다. 김두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한 내가 모르는 것 투성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까. 그래서 '발견'이다. 이것보다 더 좋은 글 제목이 있을 성 싶지 않다. 김두관은 정치인이다. 정치인에 대한 글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가 오해를 사기 쉽다. 그래서 <김두관의 발견>에 대한 서평을 쓰는 데도 망설임이 없지 않았다.

정치인에 대한 책은 대부분 미화되기 쉽다. 그가 걸어온 길이 어떠하든 그의 정치적 지향점이 어디이든 우리의 정치 현실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수식어들이 붙어 독자를 붙잡는다. 서문만 읽어보면 책 내용이 훤히 보인다. 이것이 내가 정치인에 대한 책 읽기를 주저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김두관에 대한 책은 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를 내 세우는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으로 그를 말하게 한다. 이것은 대단한 장점 중의 하나에 속할 것이다.


몇 년 전 알고 지내는 목사가 김두관에 대한 책을 쓴다기에 원고를 보냈던 적이 있다. 책 제목이 <내가 만난 김두관>이었는데, 나는 서울민통련 때 함께 활동한 경험에 비췬 김두관을 '변함없이 인간적인 사람'이란 타이틀로 정리했었다. 어머니, 부인 등 가족에서부터 수행팀 자원봉사자에 이르기까지 33명의 사람들이 김두관에 대해 쓴 글이다. 김두관 자신의 글도 그 중에 포함되어 있다. 이 책에는 그의 장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어서 대권 주자로 운위되고 있는 그를 아는데 도움이 된다.

<김두관의 발견>도 김두관을 잘 아는 사람이 그에 대해 쓴 글 모음이다. 그런데 좀 이상한 데가 발견된다. 저자가 일곱 명이나 된다. 그것도 각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내로라하는 사람들이다. 촌부(村夫)인 내가 알 정도의 사람들이니 그들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들을 대충 짐작할 수 있으리라. 세상을 올곧게 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한 사람들이라 더 눈이 갔다. 남재희, 박석무, 김삼웅, 정성헌, 정상용, 김 근, 노혜경. 일곱 명의 필자, '일곱'이란 수는 성경에서는 영적 완전수라고 말한다. 완전수의 사람들이 한 인물을 두고 쓴 글이라?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필자들의 면면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사람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그들이 살아온 삶을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남재희에서 노혜경에 이르기까지 곡학아세(曲學阿世)하지 않고 자기 영역에 전문성을 쌓아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남재희는 국회의원에 장관까지 지낸 사람이지만 내겐 박학다식(博學多識)한 언론인으로 새겨져 있다. 박석무는 중고등학교 교사와 국회의원을 역임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다산 연구가로 알려져 있다. 다산의 대중화 작업에 그가 끼친 열정은 옅지 않다.

김삼웅 역시 언론인이다. 아니 언론인으로만 소개하기 아까운 분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 다수의 저서를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독립운동가에 대한 평전을 그만큼 많이 쓴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대한매일신문(현 서울신문) 주필을 역임했고 참여정부 땐 독립기념관장으로 민족혼을 한 자리에 모으는데 힘을 쏟았다. 정성헌은 가톨릭농민회의 사무총장을 오래 맡아 농민운동에 헌신한 그야말로 가농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 후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을 거쳐 지금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정상용은 광주 5.18 민주화동지회 회장과 국회의원으로 활발하게 움직인 경험을 갖고 있다. 그의 정의감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정치적 생명에 연연했다면 당선이 보장된 광주의 지역구를 쉽게 내려놓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주의라는 높은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서울 강남으로 지역구를 옮겼다가 그 벽이 높다는 것만 실감한 채 낙선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정상용이 책에서 거론했듯이 노무현, 김두관 그리고 지난 총선 때 대구에서 출마한 김부겸과 함께 우직한 정치인의 반열에 올려도 좋을 사람이다. 김 근은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으로 칼라가 분명한 글을 써서 지식인들에게 문명을 떨쳤다. 국민의 정부 때 연합통신 사장, 참여 정부 들어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과 방송위원회 위원을 지낸 분이다.


나는 노혜경이 시인인지 몰랐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노사모가 동시에 연상되는 것은 그 모임에서 노혜경의 역할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리라. 내가 <김두관의 발견>에 글을 올린 필자들을 이렇게 장황하게 소개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먼저, 그들은 삶에 생각을 맞추려고 노력한 것이 김두관과 닮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언행일치를 늘 염두에 둔 삶을 산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두 번째는, 그들은 이 책에서 김두관을 마냥 칭찬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주장에 김두관을 가져다 붙였다고나 할까. 각 글의 중반부까지는 김두관에 대한 언급이 없어 좀 의아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셋째, 이들이 기대하는 정치인 상(像)은 서민 지향적인 것인데, 말이 아니라 생활에서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그리고 있다. 거기 맞아 떨어지는 사람이 김두관이라는 식이다. 김두관이 말했듯이 서민을 위한 정치인이 아니라 서민 자체인 정치인….

이렇게 자기 입장이 뚜렷한 사람들이 한 인물 김두관에 대해 기술하는 글이라고 하니 호기심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김두관의 발견>을 두 번 정독했다. 흔치 않는 일이다. 이유가 뭘까? 김두관에 대해 천편일률적으로 칭찬만 늘어놓은 책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뚜렷한 근거 없이 추상적 미화 일변도였다면 읽다가 중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각 필자의 입장에서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정치 영역을 설명한 다음, 그 일을 해 낼 적임자로 김두관을 가시권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꼭 김두관이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지 않다. 김두관이 자기들의 생각에 가깝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 채….


남재희는 흔히 비판적 보수주의자 지칭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지인(知人)을 갖고 있다. 언론인, 국회의원, 장관을 거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百戰老將)이다. 그는 유신 정권 때 여당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멀리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것은 건전한 사고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는 건전한 보수와 건강한 진보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재희는 우리의 정치지형에 대대적 물갈이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양반층 정치인(사장, 고위관료, 법률가, 박사 등등)을 서민층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으로 확 바꿔보면 어떨까 하고 주문한다. 농사로 치면 심경(深耕)을 하듯. 나는 그의 이 말이 감정에 격해 나온 것이 아님을 잘 안다. 심경의 정치 변화, 이것은 정치 발전의 다른 이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재희는 그 서민층을 대표할 수 있는 예로 김두관 같은 정치인을 꼽고 있다. 시골 마을 이장에서 출발해서 농민운동, 지역 언론 <남해신문> 발행인, 민선 군수, 초대 행자부 장관을 거쳐 도백에까지 오른 김두관을 남재희가 서민층을 대표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언급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날고뛰는 보수 정객이 부지기수인 마당에 비판적이라곤 하지만 보수적 시각을 가진 인사가 진보 개혁적 정치 행보를 걸어온 김두관을 예거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더욱이 이 말은 <김두관의 발견>에서 김두관을 의식하고 사용한 말이 아니라, 그 전 어느 정치 신인을 추천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언론인 남재희는 이 책에서 김두관의 미숙한 언론관(言論觀)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고 있다. 보수 언론의 대명사 조선일보에서 발행하는 주간지에 대선 출마 예상자들을 두고 한 말에서 작은 허점이 노정된 적이 있다. 이것도 중앙정치인이 아닌 순박한 지방 정치인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일이라며 너그럽게 봐주고 있다. 사람을 대할 때도 위 아래 구분하지 않고 한결같이 겸손한 김두관이 언론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는 언론인을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찾아가서 대화하는 정치인이다.

박석무는 경세가(輕世家) 다산 정약용의 목민관을 현실에 가장 잘 적용시키는 정치인으로 김두관을 든다. 특이하게도 2세기 반 이전의 봉건왕조 관료였던 정약용의 경세 철학이 오늘날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에서 시대를 앞서 살다 간 다산의 탁월함을 읽을 수 있다. 김두관의 좌우명으로 알려져 있는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 백성은 가난한 것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공평하지 못한 것에 분노한다)은 <논어(論語)> '계씨편(季氏篇)에 나오는 말이다. 다산의 애민사상(愛民思想)은 단단한 동양 사상에 기초하고 있고, 백성(국민)을 사랑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해 가치를 인정받는 진리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그의 철학이 아직도 빛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석무는 김두관에게서 다산을 발견했다.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발양(發揚)되어야 하는가에서 2세기 반의 시간을 두고 살아가는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중앙 집중에서 벗어나 지방 자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그렇다. 다산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을 모두 지녀, 작은 고을에서 제왕의 역할을 했던 지방관, 즉 군수 현감 현령 등의 수령들을 그 지방의 최고 지도자로 여기고 그들이 지녀야 할 자격이나 자질이 어떠해야 하느냐에 대한 접중적인 논의를 폈다(p.53). 봉건 왕조 시대 때 지방의 중요성을 인지(認知)하고 사상을 전개했다는 것은 위험천만(危險千萬)하면서도 결코 역사적 의미가 적지 않다는 것에서 다산의 위대성을 발견할 수 있다. 김두관의 목민관이 다산에게서 기인(起因)했다고 박석무는 결론 맺고 있다. 

독립기년관 관장을 지낸 김삼웅은 김두관의 역사안(歷史眼)을 두 가지 경험을 들어 평가하고 있다. 중국 유주시(柳州市)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머물렀던 장소에 전시실을 꾸미고 개관행사가 열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행사에 불청객 김두관이 불쑥(?) 찾아와서 관심을 보인 것에 대해 몹시 인상 깊게 생각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나는 상황에서 중국에 공부하러 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궤적에 관심을 보인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상웅은 김두관이 뚜렷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몇 되지 않는 지중파(知中派) 중의 한 사람이라고까지 적고 있었다.

또 한 번은 김두관이 몇몇 지인들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독립기념관 관람을 왔었다고 한다. 행자부 장관을 물러나고 쉬고 있을 때였다. 김두관이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전시실을 빠지지 않고 관람하면서 수첩에 필요한 것을 꼼꼼히 메모하는 모습에서 공부하는 정치인을 발견했다며 흐뭇해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을 방문하는 장차관 국회의원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적지 않지만 이렇게 꼼꼼하게 메모해 가면서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관람을 하는 정치인은 김두관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역사 인식이 문제가 될 때가 있다. 그들만의 탓이 아닐 것이다. 아직도 뿌리 깊이 남아 있는 식민사관을 도려내기까지는 아직도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김삼웅은 김두관이 역사의식이 뚜렷한 정치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가톨릭농민회 운동의 상징적 활동가 정성헌은 김두관을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왔다고 한다. 김두관이 남해에 내려가 농민운동을 할 때, 정성헌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정성헌은 김두관을 알고 지낸 사람이기 때문에 관심 갖고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김두관의 인생 역정이 그가 추진하는 생명운동에 근접해 있기 때문에 그를 지지한다고 했다. 정성헌은 앞으로의 운동은 인간 중심의 운동이라기보다 평화 생명 중심의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가 맡고 있는 한국DMZ평화생명동산은 극좌도 극우도 아닌 중도의 길을 걷는 생명운동인데 여기에 근접해 있는 정치인으로 김두관 지사를 들고 있다.

광주 민중항쟁 지도부의 일원이었던 정상용은 한(恨)이 많은 사람이다. 개인의 한이라기보다 광주의 한, 민족의 한이다. 그를 비롯한 동지회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광주민중항쟁이 국가가 정한 기념일이 되었고, 망월동이 국립묘지로 승격되었으며 만족할 액수는 아닐지라도 보상금까지 받게 되었다. 그 후 정상용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노력한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지방분권주의자 김두관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정상용의 말에 의하면 김두관을 보다 깊이 알게 된 것은 언론운동가 김태홍으로 인해서였다고 한다. 김태홍은 기자협회 회장일 때 일어난 말지 사건의 주역일 뿐 아니라 한겨레신문 창간 멤버였고, 뒤에 광주 광산구청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이다.

김태홍과 김두관 등이 중심이 되어 영호남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머슴골'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지역 갈등의 소모성을 함께 인식하고 영호남 대립의 상처를 보듬으며, 한걸음씩 좁혀가 보자는 마음으로 만든 모임이 '머슴골'이었다고 한다. 활동을 하면서 경상도 단체장 김두관이 호남을 이해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한없이 넓어 둘은 의기투합했고, 이런 정황을 김태홍이 정상용에게 전해서 김두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정상용은 소인배가 판을 치고 있는 정치에 김두관 같은 통 큰 정치인이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김두관에 대해 거는 선배 정치인의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김근은 언론인이다. 그의 언론 이력도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나는 그를 한겨레신문 논설주간으로 마음에 새기고 있다. 지역주의와 보수주의에 대한 그의 논설을 읽으면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시원함을 맛본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 김근이 김두관을 주목하고 있다. 반목과 적대사회의 통합을 위해서 김두관과 같은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근은 김두관의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지 않은 인생행로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제도 정치권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 현실에 물들게 마련인데 김두관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다.

김근은 사람 차별만큼 기분 나쁘고 비인격적인 것도 없다면서 영호남의 지역 구도를 누구보다 우려하는 사람이다. 나아가 이것은 단지 우리나라 내의 지역 차별뿐 아니라 한국에 와 있는 이주 외국인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따뜻한 인정을 나누며 그들의 필요를 도와줄 때,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위하는 친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외국인들에게 너무 야박하게 대우해 줌으로써 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그들이 자국으로 귀국한 뒤 철저한 반한파(反韓派)로 만드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려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에 관심 두고 있는 김두관을 김근은 발견하고 있다.

노혜경은 시인이다. 참여정부를 출범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한 노사모를 만드는 데도 그녀가 일익을 담당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미국 소설가 나다나엘 호돈의 '큰 바위 얼굴'을 원용하여 김두관을 이끌어내고 있다. K형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어지는 글에서 노혜경은, 글의 주인공 어니스트의 입을 빌려 큰 바위 얼굴을 만드는 것은 개더골드 같은 황금도,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 같은 힘도, 올드 스토니 피즈의 권력도 아니고 순박한 사랑과 자비,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이라고 말한다.

마침내 큰 바위 얼굴이 된 어니스트는 정규학교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밭에서 일하며 하루하루의 일상적 노역을 사람들과 함께 했으며, 모든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들과는 달리, 태어나 단 한 번도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는 변방의 사람이었다. 지금 우리의 정치 상황에서 어니스트와 가장 닮은꼴의 정치인을 꼽으라면 K형(김두관) 외에 누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노혜경의 김두관 대망론인 셈이다. 시인의 눈으로 보는 한 정치인이 이렇게 따뜻하게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문학의 힘이고 진실의 힘에 의해서일 것이다. 시인 노혜경의 글은 <김두관의 발견>을 결론짓는 압권(壓卷)의 글이다. 직접 당신이오가 아니라 큰 바위 얼굴을 원용한 간접 지칭이 더 설득력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상의 글로 '<김두관의 발견>을 발견하다'로 제목을 정한 이유가 얼마간 해명되었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덧붙여 '발견'이라는 단어를 쓴 또 다른 소이(所以)가 있다. 일곱 명의 필자가 붓을 놓고 난 뒤의 막간 글 때문이다. 이 글들은 '김두관의 발견 기획위원회'에서 쓰지 않았나 싶은데, 김두관에 대해 미처 모르고 있었거나 안다고 해도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것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되었다. 소중한 '발견'이 되는 것이다.

동아일보 등 보수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동아일보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자신을 왜 이렇게 심하게 때리느냐며 하소연하면서, 자신이 과거 생활이 어려워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하던 월간지 <신동아> 외판을 했던 적이 있다는 것을 들더라는 것이다. 과거의 고난을 유머로 승화시킨 실 예화이다. 남해신문을 만들면서 기사에서 배달까지 1인6역을 하며 지역 주민들을 섬겼다는 이야기, 지방자치와 분권의 중요성을 잘 아는 김두관 지사의 의회 출석률이 100%(참고로 서울시장을 지낸 오세훈은 같은 기간 의회 출석률 29.7%)로 도의회(道議會)를 존중했다는 이야기 등이 신선한 삽화처럼 글 사이에 끼어 있다.

김두관의 큰형은 독일 광부 출신이다.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남해군에 아름다운 관광명소 독일마을을 만들었고, 이명박 정권의 4대강 개발에 강력하게 대항한 것은 댐 건설로 파괴되는 환경 문제도 문제이지만 실제 농민들이 입을 피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였다는 것, 70세 이상의 가난한 노인 분들에게 혜택을 주는 틀니 사업은 '사람 중심 행정'의 모범 사례로 꼽을 수 있는데도 처음엔 다수당의 반대가 심했다는 것 등은 오늘날 필요한 환경 보호와 진정한 복지가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하겠다.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나는 봉하 마을로 조문을 갔었다. 상가(喪家)를 지키고 있을 김두관에게 연락을 하니 밤샘을 한 뒤, 싸우나에 가서 씻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의 영결식장이 서울로 잡혔다. 서울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김두관에게 연락을 취하니 뒷정리를 위해 봉하 마을에 남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영결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두 봉하 마을을 뜬다면 그 뒷일을 누가 처리하겠는가? 대청소, 회계정리, 황색 리본 간수, 방문자 명단 정리 등등을 말이다. 그때 김두관으로 인해 한 방에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책은 적고 있다.

"제가 이 동네 경남 촌놈입니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소리 소문 없이, 대부분이 모르게 뒷마무리는 완벽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김두관 자신인들 장례식장에 가고 싶지 않았겠는가며 감동적이라고 적고 있다.

김두관의 섬김은 몸에 체화되어 있는 듯하다. 겸손에서 나올 수 있는 행동이다. 섬김의 리더십이 대권 주자에게 뺄 수 없는 덕목이 될 것이다. <김두관의 발견>을 쓴 일곱 명의 필자가 모두 김두관 열렬 지지자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예전의 잣대인 혈연 지연 학연 교연(敎緣) 등을 떠나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오는 12월 대선에서 김두관이 야권 후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들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은 한 정치인에 대해 포장된 미화가 아니라 객관적 평가라는 점에서 다른 정치인 관련 책자와 차이가 난다. 필자 각인이 주어진 영역에 전문성을 담지하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글의 논리성도 돋보인다. 끝으로 '옥의 티'같이 여겨지는 것은 일곱 사람이 한 정치인에 대해 글을 쓰는 만큼 내용의 중복성이 가끔 눈에 띈다는 점이다. 하지만 책의 성격 상 피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다가오는 12월 대선 뿐만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두어야 할 책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일독을 권한다.

김두관의 발견

남재희.박석무.김삼웅 외 지음,
사회평론, 2012


#김두관의 발견 #일곱 명의 필자 #경남도지사 #서민대통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100개의 눈을 가진 모래 속 은둔자', 낙동강서 대거 출몰
  2. 2 국가 수도 옮기고 1300명 이주... 이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3. 3 '삼성-엔비디아 보도'에 속지 마세요... 외신은 다릅니다
  4. 4 장미란, 그리 띄울 때는 언제고
  5. 5 "삼성반도체 위기 누구 책임? 이재용이 오너라면 이럴순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