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견디니 나도 견뎌야 겠다

[포토에세이] 서대문구 충현동 골목길

등록 2012.06.21 17:20수정 2012.06.2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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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골목길 서대문구 충현동

골목길 서대문구 충현동 ⓒ 김민수


뙤약볕에 몇 걸음만 걸어도 뒤통수가 따갑다. 뜨거운 햇살에 동공은 한껏 조여져 자비심도 없는 눈처럼 보인다. 포도의 열기가 스멀거리며 몸을 타고 올라오고, 위에서는 뜨거운 햇살의 열기가 내려와 내 몸에서 조우를 하는 듯하다.


나만 뜨겁고 목마른 것이 아니다. 삼라만상이 목마르다. 이 가뭄천지에도 가뭄이 아니라 착시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혀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는 한 비는 내리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다. 설마, 하늘이 그러하지는 않겠지.

a 골목길 좁다란 골목 사이, 화분에 심겨진 꽃들은 마당이 있는 집을 꿈꾸는 이들의 소망을 보여주는 듯하다.

골목길 좁다란 골목 사이, 화분에 심겨진 꽃들은 마당이 있는 집을 꿈꾸는 이들의 소망을 보여주는 듯하다. ⓒ 김민수


서대문구 충현동(충정로)에는 제법 골목길 다운 골목길을 간직한 곳이 있다. 4대문 안에 있는 얼마남지 않은 옛 풍경을 간직한 곳일 터이다. 근처에는 1971년 대한민국 최초의 아파트라는 풍림아파트, 금화아파트도 있다. 풍림아파트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으며, 금화아파트는 붕괴위험이 있어 출입이 금지된 상태다.

골목, 어렸을 적에는 한 없이 넓어 보였던 골목이 어른이 되면 좁게만 느껴진다. 그 넓던 학교 운동장이 좁아보이는 것과 같은 현상일 것이다. 이런 착시현상이라면 이해도 가지만, 이 가뭄에 자기들의 죄과를 합리화하기 위해 헛소리를 하는 것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겠다는 시도에 불과하다.

손가락으로 제 눈을 가리고는 '달이 없다'고 하는 미련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국민의 혈세를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앉아있으니 하늘이 노할만도 하다.

a 골목길 도시가스배관을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 어디에 심겨졌어도 자기 안에 들어있는 것을 픠워내고야 말겠다는 듯 피어난다.

골목길 도시가스배관을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 어디에 심겨졌어도 자기 안에 들어있는 것을 픠워내고야 말겠다는 듯 피어난다. ⓒ 김민수


다행히 식물이 심겨진 화분엔 도움의 손길이 있어 물기가 남아있다. 어디서 온 것인지 덩굴식물이 도시가스배관을 타고 하늘로 향하고 있다. 어디에서 피어나도 제 본성대로 살아가는 자연, 자신의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그 순간까지 대충은 살지 않겠다는 옹골진 다짐을 본다.


여전히 뜨거운 햇살에 좁은 골목길은 한증막처럼 달아올랐다. 그나마 좁은 골목이라 햇살은 마음껏 활보하지 못한다. 그늘에 있으면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인다.

a 골목 골목길 사이로 옛날 황토로 구운 굴뚝도 보인다. 정겹다.

골목 골목길 사이로 옛날 황토로 구운 굴뚝도 보인다. 정겹다. ⓒ 김민수


골목사이 어리시절 보았던 황토로 만든 굴뚝이 서 있다. 지금은 하얀 연기를 내뿜지 못하겠지만, 여지껏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향수를 자극한다.


저 골목사이로 겨울이면 "찹쌀떠억~ 메밀무욱~"하는 소리가 울려퍼지지 않았을까? 밤참이 먹고 싶었던 이들이 창문을 열고 찹살떡과 메밀묵을 사고, 살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 국물을 떠와 온 가족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별미뿐 아니라 사랑을 나눴을 것이다.

세상도 변하고 많이 편해졌다고 한다. 나는 정말 그런지 의심을 한다. 조금 불편해도 행복지수는 그때가 훨씬 높았을 것이다.

a 강아지풀 시멘트 깨어진 곳에 드러난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강아지풀, 그 꼿꼿함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강아지풀 시멘트 깨어진 곳에 드러난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강아지풀, 그 꼿꼿함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 김민수


골목을 빠져나와 걷다보니 시멘트 부서진 곳에 마른 흙이 드러나 있다. 물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곳에 강아지풀과 우리가 잡초라 부르는 것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가뭄에 꼿꼿한 강아지풀이라니. 그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며 위로를 받는다.

살아가면서 피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그런데 어김없이 그들은 내 삶을 파고든다. 아픔, 슬픔, 절망, 고통… 이런 단어들이 그들이다. 누구나 품고 사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그것들에 굴복하지 않고 잘 다스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온통 아름다운 말로 가득해서가 아닐 터이다. 원하지 않는 단어들을 잘 이겨내고, 혹은 친구삼아 살아가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뜨겁고, 따갑고, 목마르다. 그러나 그들도 그렇게 견디며 살아가는데 나도 그래야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4대강사업본부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요즘은 가뭄이 아니며, 폭염으로 인한 가뭄착시현상이라고 했다.


덧붙이는 글 4대강사업본부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요즘은 가뭄이 아니며, 폭염으로 인한 가뭄착시현상이라고 했다.
#골목사진 #강아지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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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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