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 생명이 자라는 소리가 들리나요

대전 카이스트 동산에 위치한 백로 서식지 이야기

등록 2012.06.23 14:18수정 2012.06.2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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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카이스트 동산의 백로 서식지 알을 품고 있거나 새끼를 키우는 백로들

카이스트 동산의 백로 서식지 알을 품고 있거나 새끼를 키우는 백로들 ⓒ 최수경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카이스트 학생회관 뒷동산에는 대전 최대의 백로 서식지가 있습니다. 학교가 갑천과 가까워 먹거리 구하기가 쉽고, 교육의 터전인만큼 뭍생물들이 보호받아서일까요? 비단 백로뿐만 아니라 교정에는 거위, 오리, 고양이 등이 학생들의 사랑을 받으며 함께 살고 있습니다.

카이스트 내 백로 서식지는 해가 갈수록 범위도 커지고, 개체 수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백로는 대개 참나무나 소나무에 둥지를 짓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적의 둥지 자리
경쟁에서 밀려난 녀석들은  벚나무, 단풍나무, 아까시나무, 목련나무 등 가리지 않고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학생들을 위한 나무 그늘 벤치는 백로들의 배설물로 얼룩졌고, 그 아래를 지나자면 자칫 새똥 세례를 받을 지도 모르니, 학교 측에게 백로는 골칫덩어리일 수도 있습니다.

a 카이스트 동산의 중대백로 짝짓기 시기에는 눈가에 푸른 아이섀도우 빛을 내는 중대백로

카이스트 동산의 중대백로 짝짓기 시기에는 눈가에 푸른 아이섀도우 빛을 내는 중대백로 ⓒ 최수경


a 카이스트 동산의 황로 모내기 논이나 소의 등에 올라타기를 잘 하는 황로

카이스트 동산의 황로 모내기 논이나 소의 등에 올라타기를 잘 하는 황로 ⓒ 최수경


하지만 백로에게는 이곳이 안전한 서식처로 인식이 되는지, 해가 갈수록 알을 품는 둥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6월의 숲속 동산은 알에서 깨어난 새끼 백로들의 울음 소리로 가득합니다.

a 카이스트 동산의 해오라기 둥지 속 알을 품고 있는 해오라기

카이스트 동산의 해오라기 둥지 속 알을 품고 있는 해오라기 ⓒ 최수경


a 푸른 알을 품고있는 중대백로 알의 크기는 계란보다 작고 메추라기알보다는 크다

푸른 알을 품고있는 중대백로 알의 크기는 계란보다 작고 메추라기알보다는 크다 ⓒ 최수경


백로 서식지에서 까치는 무법자... 호시탐탐 알만 노리고 있어

그런데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던 지난 봄에는, 둥지 속에 있어야 할 알들이 깨져 땅에 나뒹구는 모습이 잦았습니다. 노른자가 흥건하거나 부화 전의 젖은 털이 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왜 이 깨진 백로 알들이 땅에 떨어져 있었을까요?

a 깨어진 백로의 알들 둥지속에 있어야 할 알들이 깨어진 채 땅에 떨어져 뒹군다

깨어진 백로의 알들 둥지속에 있어야 할 알들이 깨어진 채 땅에 떨어져 뒹군다 ⓒ 최수경


바로 까치나 어치들의 소행이었습니다. 평소 교대로 알을 품고 있던 부모 백로가 잠깐이라도 둥지를 비우면, 때를 노리고 있던 까치들은 가차없이 덤벼들어 알을 물고 갑니다.

a 백로의 알을 물고가는 까치 백로 서식지에는 어미가 잠시 둥지를 비우는 때를 호시탐탐 노리는 까치가 많다.

백로의 알을 물고가는 까치 백로 서식지에는 어미가 잠시 둥지를 비우는 때를 호시탐탐 노리는 까치가 많다. ⓒ 최수경


a 백로 서식지의 깡패 까치 백로 서식지에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까치들이 자주 눈에 띈다.

백로 서식지의 깡패 까치 백로 서식지에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까치들이 자주 눈에 띈다. ⓒ 최수경


어미 백로가 까치로부터 알들을 안전하게 지킨 덕분에 무사히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은 벌써 이만큼 컸습니다. 한 둥지에 다섯 마리나 되는 걸 보니, 이곳은 까치가 범접하기 힘든 아주 좋은 위치였나 봅니다. 이제 어미가 부지런히 먹이를 날라와 새끼들을 기를 차례인데, 식구가 많아 제법 힘이 부칠 것 같습니다.


a 먹이 경쟁이 치열한 새끼 백로들 둥지 속 다섯 마리 형제들은 치열한 먹이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한 둥지 속이라도 벌써 몸집 차이가 날 정도로 성장 속도가 다르다.

먹이 경쟁이 치열한 새끼 백로들 둥지 속 다섯 마리 형제들은 치열한 먹이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한 둥지 속이라도 벌써 몸집 차이가 날 정도로 성장 속도가 다르다. ⓒ 최수경


새끼 백로 세 마리가 이제나 저제나 어미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이 아주 안쓰럽습니다. 한 둥지 속에서 자라더라도 형제들끼리 덩치가 다른 걸 보면, 먹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도 일이겠지요.

a 이번엔 내 차례야 어미가 오기만을 눈 빠져라 기다리는 새끼들

이번엔 내 차례야 어미가 오기만을 눈 빠져라 기다리는 새끼들 ⓒ 최수경


무사히 알에서 깨어난 새끼 백로들 '내가 먼저 먹을 거야'


어미가 다가오면, 새끼 백로들은 저마다 입을 벌려 먹이를 먹겠다 난리입니다. 제일 먼저 받아 먹은 녀석은 또 달라고 어미를 심하게 보채는데,  아직 날지도 못하는 녀석들이 둥지 속에서 과도하게 몸놀림을 하는 것을 보면 둥지에서 떨어질까 위태위태해 보입니다.

a 먹이를 달라는 새끼 백로 어미가 다가오자 일제히 입을 벌려 서로 먹이를 달라고 조른다.

먹이를 달라는 새끼 백로 어미가 다가오자 일제히 입을 벌려 서로 먹이를 달라고 조른다. ⓒ 최수경


형제들과 장난치다 혹은 부모에게 대들다가 떨어졌는지, 아님 힘센 형제들이 밀어냈는지 모르지만, 백로 서식지 숲바닥에는 둥지에서 떨어진 녀석들이 서성입니다.

a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백로 날지 못하는 새끼는 부모가 포기할 수 밖에 없다.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백로 날지 못하는 새끼는 부모가 포기할 수 밖에 없다. ⓒ 최수경


아직 날지 못하는 녀석들이 둥지에서 떨어진 자리 주변을 맴돌며 나무 위만 애처롭게 올려다보는 것이 처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더러는 어미 백로가 안타까워하며 옆에 내려 앉아 있다가도, 이내 포기한 듯 나무 위로 올라가 내려오지 않습니다.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미 백로는  둥지 위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녀석들이나 살리는 데 몰입할 수 밖에 없겠지요. 안타깝게도 어미에게 버림받은 이 녀석은 오늘밤, 카이스트 동산에 사는 너구리의 밥이 될 운명입니다. 그것이 자연의 질서라면 어쩔 수 없겠죠.

a 카이스트의 백로 카이스트를 가로질러 갑천으로 날아가는 짝짓기철의 중대백로

카이스트의 백로 카이스트를 가로질러 갑천으로 날아가는 짝짓기철의 중대백로 ⓒ 최수경


오늘도 나무 위 둥지에서 어미 백로는 알을 품거나 먹이를 나르느라 분주하고, 새끼들은 먹이를 두고 다투느라 소란스럽습니다. 가능한 많은 백로의 새끼들이 건강하게 자라, 카이스트 동산을 가로질러 날아가 갑천 여기저기에서 먹이를 잡는 모습을 많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대전의 한 가운데, 카이스트 뒷동산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대전사람들에게 큰 복 아닐까요? 지속가능한 생태환경을 위해 주민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환경부 블로그 '자연스러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환경부 블로그 '자연스러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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