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서울 송파구 배명중학교에서 열린 '학교폭력 자정 결의대회'에서 학생들이 학교폭력 추방을 다짐하며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관행은 힘이 세다. 관내 초, 중, 고등학교 학생부장들이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해외 나들이를 떠나게 될 것 같다. 꽤 오랜 기간 행해졌던 것이라 학사일정의 한 꼭지로 여겨온 터여서, 학생부장들이나 공문을 내리고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 중에 토다는 이가 없다. 이런 관행을 두고 일개 교사가 상급관청인 교육청을 상대로 다투려니, 처지가 흡사 '돈키호테' 같다.
지난달 광주광역시교육청은 '학교폭력 예방에 애쓴 생활지도 교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올 여름방학에 국외 체험 연수를 실시한다'는 공문을 일선 학교들에 보냈다. 말이 좋아 '연수'지, 공문을 받아든 학생부장들 중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늘 그래왔듯, 고생 많은 학생부장들에게 해마다 챙겨주는 '위문 관광'일 뿐이다.
신청 대상도 일선 학교 학생부장과 교육청 업무담당자에 상담사, 교원범죄예방위원과 교외생활지도 담당자 등 학교폭력과 관련된 일을 맡고 있는 이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교육청이 예상하고 있는 신청자 수만 해도 총 180명 내외이니, 만만치 않은 규모의 '단체 여행단'이 꾸려지는 셈이다.
학생부장 일이 교사들의 '기피 대상 1호'라지만... 이건 아니잖아교육청은 신청 인원이 초과될 경우, 최근 3년간의 생활지도 실적을 심사하여 선발하겠다고 공문에 명시했다. 하지만 주변 학생부장들 가운데 '연수를 신청했지만 탈락했다'는 얘기가 없는 걸 보면, 예상 인원을 넉넉히 잡았거나 신청자가 예상보다 적었거나 둘 중 하나다. 솔직히 '학생부장을 위로하겠다'며 해외 연수를 보내주는 건데, 실적이 좋지 않다고 탈락시키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소리다.
필자 역시 한 고등학교의 학생부장으로서, 사기 진작을 위한 행사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학교의 어느 업무가 만만할까마는, 특히 최근 들어 교사들의 '기피 대상 1호'인 학생부장 업무에 대한 인센티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른 교사들마저 두루 인정하는 점이다.
문제는 이 '일회성' 행사를 치르는 데 막대한 예산이 쓰인다는 것이다. 참가자 1인당 연수비로 100만 원씩 지원한다고 하니, 교육청의 예상대로 180명이 참가한다면 무려 1억8000만 원이 소요되는 셈이다. 아무리 관행이라지만, 고작 며칠간의 해외여행에 막대한 예산을 허비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반면 며칠 전 필자의 학교에서는 몇 십만 원이 아쉬워 쩔쩔매는 '쪼잔한' 일이 있었다. 학교 상담실에서 또래상담을 위한 워크북을 제작하는 데 예산이 필요했다. 학년 초에 계획되었던 게 아니어서 사전에 예산이 책정되지 않았을 뿐더러 추경 예산 편성 때도 누락된 상태였다.
제작업체에 문의를 했더니, 표지가 무광택인데다 속지조차 모두 컬러로 돼 있어서 면수가 얼마 되지는 않아도 비용이 꽤 든다고 귀띔해주었다. 견적서를 받아보니, 무려 권당 만 원꼴이었다. 또래상담자 교육에 당장 50여 권 정도가 필요했으니, 상담사와 필자는 어떻든 50만 원을 변통하려고 교무실로, 행정실로, 교장실로 찾아다니며 협조를 구해야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올해 우리 학교 상담실이 교육청으로부터 지원받는 예산은 고작 150만 원이다. 방학을 뺀다 해도 한 달에 15만 원꼴인데, 상담 온 아이들에게 읽힐 책 한 권, 주전부리 하나 마련하기 쉽지 않은 '푼돈'이다. 하물며 상담실 안에 기자재를 마련한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나마 필자의 학교는 양호한 편이다. 상담실조차 갖춰져 있지 않은 학교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학교에 남아있는 빈 교실 공간을 상담실로 리모델링하기 위해 교육청에서 지원받은 예산이 2000만 원이었다. 단순히 계산해봐도, 1억8000만 원이면 학교 9곳에 상담실을 마련해줄 수 있는 돈이다.
상담실 9개 만들 돈으로 선생님들 해외연수 보내주면 학교폭력 예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