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남자가 녹색 어머니회를 하네~"

처음엔 쑥스러운 녹색 어머니회, 직접 나가보니 뿌듯

등록 2012.06.28 14:26수정 2012.06.2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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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 깃발을 들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운전자와 아이들의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어 교통 안전에 도움이 된다.

이 깃발을 들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운전자와 아이들의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어 교통 안전에 도움이 된다. ⓒ 윤태


지난 26, 27일 양일간 초등학생 1학년 아빠인 제가 녹색 어머니회에 다녀왔습니다. 아침잠이 많은 아내가 하루 나가 보더니 무척이나 힘들어 하는 것 같아 제가 다녀왔습니다. 심한 비탈길을 꽤나 올라가야 하는 초등학교인 만큼 아마 힘이 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녹색 어머니회 활동은 초록색 옷을 입고 하얀 장갑 끼고 모자 쓰고 정지선 지키자는 현수막이 걸린 봉을 들고 아침 등굣길 교문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겁니다. 저는 차마 옷과 모자, 흰 장갑을 착용하고 교통정리를 하는 게 좀 어색할 것 같아 편한 복장으로 참석했습니다.

첫날의 반응은 참 다양했습니다. 남자가 녹색 어머니회를 하고 있으니 등굣길 학생들이나 아이를 데려다 주시는 어머님들이 신기한 듯 보시더군요. 누구네 반 아빠인지 물어보기도 하시고 '정말 대단하다, 열성적이다, 상을 줘야한다' 등 이런 반응들을 보이시더군요.

그런가 하면 몇몇 꼬마 녀석들은 "와, 남자가 하네" 하며 낄낄 거리며 지나갑니다. "요놈들, 너희들 안전 지키자는데 남자, 여자 따질게 뭐 있어?"라고 핀잔주듯 아이들과 장난도 좀 쳤습니다.

"어이, 아들, 딸들! 밥은 먹고 오냐?" 라고 물어보며 올라가는 아이들 등도 두들겨 주었습니다. 등교할 때까지 눈꼽도 떼지 못하고 하품을 하며 올라가는 아이도 있었고 초코파이 하나 먹으며 등교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시험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그런 것인지 몰라도 지난 밤에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늦잠을 잔 모양입니다.

녹색 어머니회 둘째 날은 저와 함께 나와야 하는 어머님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어쩔수 없이 저 혼자 완전히 사각지대인 사거리에서 분주하게 뛰어 다녔습니다. 그렇잖아도 사각지대인데 그곳에 버젓이 불법주차를 하고 벌써 주차 위반 스티커까지 붙은 차량도 있었습니다.


위험 요소 많은 학교 등굣길 지도... 아빠들도 동참하는 건 어떨까요?

a  저 멀리 녹색어머니회 회원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학교 앞 어린이 보호구역안에 이렇게 불법 주차를 해놓으니 교통 통제하기도 쉽지 않다. 차량에 가려 길을 건너는 아이들이 주행하는 차를 못 볼 수도 있고 반대로 차량이 아이들을 못보고 칠 수도 있다. 불법차를 견인해야 하는 차량이 이렇게 불법주차를 하다니...

저 멀리 녹색어머니회 회원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다. 학교 앞 어린이 보호구역안에 이렇게 불법 주차를 해놓으니 교통 통제하기도 쉽지 않다. 차량에 가려 길을 건너는 아이들이 주행하는 차를 못 볼 수도 있고 반대로 차량이 아이들을 못보고 칠 수도 있다. 불법차를 견인해야 하는 차량이 이렇게 불법주차를 하다니... ⓒ 윤태


이런 차량들로 인해 사각지대 안에서 또 사각지대가 생기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불법 주차 차량 차주들에게 전화해서 빨리 차량 이동해달라고 전화하랴, 아이들 통제하랴, 따가운 아침 햇살 속에서 정말 땀이 나도록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사거리에서 아이들 교통 안전지킴이를 해보니 참으로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벽한 사각지대에 비탈길이라 더욱 위험합니다. 사거리 가운데서 통제를 하다보면 네군데 방향 모두에서 차량들이 사거리를 향해 달려오는 상황에 아이들은 이곳저곳에서 건너려 하고 말이죠. 차들끼리 충돌할 위험과 더불어 아이들에게까지도 위험한 상황도 여러번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등굣길 교통 안전이라는 게 우선 이 복장으로 봉을 들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운전자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어 교문 앞이나 사거리에서는 서행을 하고 일단 주위를 살피면서 운전을 하게 되더군요. 운전자들을 살펴보니 말이지요.

저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아이, 차량 안에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운전자들, 아이 손잡고 등교하면서 고생한다고 말씀 건네주시는 어머님, 대여섯 살 정도 되는 어린 동생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초등 1, 2학년들... 이런 모습들을 보고 보면서 아침햇살은 비록 따가웠지만 마음만은 시원해지는 아침이었습니다.

a  비탈진 곳의 사거리. 건물과 외벽으로 완벽하게 사각지대라 상당히 위험하다. 적어도 서너명은 지켜서 있어야 한다.

비탈진 곳의 사거리. 건물과 외벽으로 완벽하게 사각지대라 상당히 위험하다. 적어도 서너명은 지켜서 있어야 한다. ⓒ 윤태


40분 동안의 녹색 어머니회 활동을 마치고 사용한 물건들을 갖다 놓기 위해 정문으로 들어가는데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께서 제게 인사하면서 고생하셨다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인사와 고생하셨다는 멘트가 영 어색하게, 엉거주춤하게 들렸는데요. 제 짐작으로는 교장 선생님이나 교감 선생님 같으신데 역시 남자가 녹색 어머니회를 하고 있으니 그 분들 입장에서도 좀 당황스럽거나 어색하셨던 모양입니다. 따지고 보면 전혀 이상할 것도 없는데 말이지요.

등굣길 아이들 안전 지키자는데 남녀 구분해서 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동안 늘 여성들이 하던 일이더라도 여성이 하기에 좀 벅차고 여건이 어려우면 신체적으로 좀 강한 남자, 남편들이 대신 나와서 하면 그만이죠.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과 배려하는 마음, 그리고 일을 더욱 더 효율적으로 잘 할 수 있으면 그게 좋은 것이죠. 설마 등굣길 교통 안전 지킴이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아빠들보다 엄마들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없겠지요?

아침에 시간 되고 일을 좀 늦게 나가는 아빠들이 계시다면 엄마들 대신 나오면 어떨까요. 아빠들이 잘 하지 않는 일이라 시선이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막상 하고 보면 뿌듯합니다. 등교하는 모든 아이들이 내 아들 딸이려니 생각하면서 하다보니 우리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도 더 절실해지더군요.

아빠들이여! 아침 등굣길에 깃발 들고 나와 보시죠. 여러모로 뿌듯해집니다.

a  사각지대에 또 다른 사각지대를 만드는 불법주차. 이 차는 벌써 주차위반 스티커가 붙었다. 전화해서 서둘러 이동할 것을 요청했다.

사각지대에 또 다른 사각지대를 만드는 불법주차. 이 차는 벌써 주차위반 스티커가 붙었다. 전화해서 서둘러 이동할 것을 요청했다. ⓒ 윤태


#녹색 어머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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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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