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적자본 풍부해도 인적자본 빈약하면 사상누각"

군산대 김민영 교수가 보는 '군산의 산업과 미래 전망'

등록 2012.06.30 15:58수정 2012.06.3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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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군산학’ 강의가 열리는 군산시립도서관 5층 교양문화실 ⓒ 조종안



26일(화) 오후 7시 전북 군산시 수송동 군산시립도서관 5층 교양문화실에서 열린 '群山學'(군산학: 군산을 제대로 이해하기) 여덟 번째 강좌에서 군산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 김민영 교수는 '군산의 산업과 미래의 전망'이란 주제로 강의를 펼쳤다.


시작에 앞서 김 교수는 "'군산학' 강의가 장르별로 나눠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반가웠다"고 말했다. 개항 100주년(1999)을 10년쯤 앞둔 1980년대 후반부터 대두했어야 하는데 1990년대 중반이 넘도록 조용해서 의아했었다는 것. 그러나 "처음 1등이 끝까지 1등 하라는 법은 없다"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격언을 인용했다.

김 교수는 1세기가 넘는 군산의 경제발전 전개 과정을 개발과 수탈의 시대(1899~1945), 단절과 연속의 시대(1945~1960), 정체와 모색의 시대(1961~1985), 전환과 굴절의 시대(1986~1999), 비전과 성숙의 시대(2000~) 등 다섯 시기로 나눠 강의했다.

일제강점기, 군산 지역 산업의 전개 과정

김 교수는 개항(1899) 이후 거류지제도가 철폐되는 1914년까지 15년 동안 일제의 전관지역이었던 군산을 '무간섭의 별천지'로, 해방(1945)을 맞이하기까지 30여 년은 일제의 토지 점탈과 식민지 경영의 교두보이자, 쌀의 집산과 유출을 방조했던 '식민지도시'로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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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수탈을 목적으로 1920년대 일제가 군산에 세운 정미소 ⓒ 군산시


김 교수 강의를 정리하면 일제가 조선에서 수행한 정책은 기존 사회를 유지해온 봉건적 질서체계를 어떻게 하면 식민지적 착취에 적합한 구조로 재편할 것인가에 초점을 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내재적 발전의 역동성에 발맞춰 진행된 게 아니고, 침탈이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식민지적 농업 구조로 식량 착취에 자신감을 얻은 일제는 1920년대에 이르러 군산에도 자본 축적을 위한 근대적 공장을 신설하고, 일인 경영의 기업을 설립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 군산의 제조업은 정미·양조 중심으로 발달했는데, 전국 최대 곡창지대였음을 반영하고 있다. 철공소, 농기구 제작, 고무공장, 연화 공장 등도 있었으나 영세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1930년대 조선은 일본 독점자본의 본격적인 진출과 함께 극단적인 수탈경제 체제가 들어선다. 이때는 세계적인 대공황기에 접어드는 시기였으며 일본도 경제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는 새로운 이윤 취득을 위해 1931년 '주요산업 통제법'을 공포하면서 통제경제로 전환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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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및 전북지역 귀속재산 기업체 수(출처: 군산 시사) ⓒ 군산시


식민지 말기 군산에 존재했던 회사 대부분은 일본자본의 집중적인 투자와 진출을 통해 이루어졌으나 대부분 경공업에 해당하는 소규모 형태였다. 그러나 1948년 정부 수립 후 전북의 총 귀속기업체 219개 가운데 군산이 67개 업체로, 일본 독점자본에 의한 것이었다고 하지만, 경제 규모가 어느 정도 형성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제강점기 군산은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 하게 된다. 개발과 수탈이 동시에 일어난 이율배반적인 성장은 전통 문화와 정체성 상실, 역사의식 부재 등으로 정신적 고통이 뒤따랐으며, 지역의 사회·경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남는다. 이승만 정권의 친일청산 실패 영향도 적잖게 작용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단절과 연속의 시대(1945~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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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지금의 군산시 경암동에 들어선 제지공장(풍국제지). 일제는 경암동을 공업단지로 조성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 군산시



해방(1945) 이후 한국은 광공업지대인 이북과 농업지대인 이남으로 갈라져 남한의 공업은 상당기간 부진을 면치 못하게 된다. 남농(南農) 북공(北工)의 경제구조에서 원료 공급과 기계류 반입이 어렵고 판로가 끊어져 생산이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 군산의 공업도 정체를 면치 못했다.

남한 공업의 전반적 부진과 함께 군산은 일제강점기 가졌던 항구도시로서의 위상을 급속하게 잃어갔으며 북한, 만주, 중국, 일본과의 거래 및 왕래가 거의 중단됨으로써 무역항 및 상업도시 면모를 일시에 상실하면서 오랜 침체에 빠져들게 된다. 원료 구입난, 기술 부족, 판로 상실 등으로 공장 대부분이 문을 닫게 된다.

1950년대 말 군산지역 경제는 약간의 성장세를 보였다. 당시 군산에서 생산된 청주, 제지, 가위, 합판, 고무신 등의 품목은 전국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본력 생산기술 유통분야에서 경쟁력이 취약한 군산 공장들은 상당 부분 도산한다. 반면 군산항은 원조물자와 원목, 화공품, 무연탄, 가축사료 등을 중심으로 하는 수입항으로 명맥을 유지한다. 

정체와 모색의 시대(1961~1985)

1965년 군산시 경제력은 전국 32개 시 단위 도시 중 1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인구 및 생태적인 집적도는 서울, 대구에 이어 3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았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일제강점기 개발 효과가 누적으로 작용하여 그 영향력이 1960년대 중반까지 지속했기 때문이다."라고 풀이했다.

이어 김 교수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7~1971) 기간에 전북 경제가 약간의 신장세를 보였으나 1970년대 중반 이후 절대적, 상대적 낙후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며 "이러한 원인은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된 중화학공업의 지역 편향성 추진전략에 있다"고 지적했다. 영남의 몇몇 신흥도시들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지만, 호남 도시들은 소외당했던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2~1976)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는 것.   

김 교수는 "1971년 이후 1980년대 중반에 이르는 약 15년 동안의 군산시 산업구조의 변화 양상을 보더라도 군산을 공업도시로 육성하겠다는 여러 계획은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고 평가했다. 15년 동안 군산의 제조업 및 비제조업체 성장률이 지극히 낮았던 점이 반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지역 편향적 발전정책으로 소외당하던 군산 지역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국가 차원의 산업구조조정 정책과 서해안 개발 사업이 발표되면서 미래를 꿈꾸는 성장의 관심 지역으로 떠오른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매우 다른 두 가지 이론적 설명이 제기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나는 196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배제되어 온 군산 지역이 1980년대 중반에 나온 서해안 개발 붐을 타고 '노동집약적인 사양산업 또는 구조불황사업의 공간으로 변모되어 가고 있다'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성장 및 성숙산업 지대로 전환하여 산업구조 고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신규투자지역으로 바뀌고 있다'는 입장으로 나뉜다고 했다. 

"새로운 시대는 열린 시민의식과 신뢰감 회복에서 시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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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미래에 대해 강의하는 군산대 김민영 교수 ⓒ 조종안



김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IMF) 이후 격심한 구조조정을 겪으며 한때 침체를 경험했지만, 2000년대 들어 회복세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비전과 성숙을 준비하는 시대에 진입한 군산 지역의 미래 주요과제를 세 가지 항목으로 요약해서 제시했다.

첫째는 서해안권 자동차 기계부품 및 조선 기제 산업의 광역적 생산기지로 웅비. 둘째, 지역의 상업서비스와 금융발전의 선순환 구조 정착. 셋째, 개항 110년을 지내며 지역발전의 한 차원 높은 비약을 위한 새로운 전략 구상 등으로 정리했다. 

이어 김 교수는 "동북아 환황해권 시대를 맞이하여 군산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여건과 강점을 살려 새만금 산업단지와 새만금-군산경제자유구역(SG-FEZ) 등을 활용하는 신재생에너지 산업과 문화-관광 분야에서도 괄목할만한 발전이 기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비전들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국정과제 및 국가단위 중장기계획의 반영을 위해 설득력 있는 논리 개발과 여러 각도의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며 "군산이 21세기 지식기반 사회를 선도할 수 있도록 역량을 총집결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지역의 균형발전과 상대적 소득격차 축소, 삶의 질 개선, 최적 인구대책, 정체성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역발전의 중장기 좌표와 지침 재검토도 필요하며, 역사문화와 생태환경을 아우르는 새로운 '어메니티(Amenity) 군산'을 표상하는 미래 산업 발전에 필요한 창조적 인재양성도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김민영 교수는 "한 사회의 도약과 발전은 물적 자본이 풍부해도 인적, 사회적 자본이 빈약하면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며 "열린 시민의식과 상호 간 신뢰감 회복, 산관학 연의 소통, 상생 전략의 네트워크 구축 등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자"며 강의를 마쳤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군산학 #김민영 #군산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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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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