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같은 곳에서 맞은 '바람', 괜찮네

브르타뉴, 생말로(Saint-Malo) 여행... 매서운 바람마저 아름다운 풍경

등록 2012.07.02 15:43수정 2012.07.0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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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있는 동안 '내가 있는 곳부터 잘 알자'라는 신념으로 유럽의 다른 나라를 여행하기보다는 프랑스 곳곳의 도시를 여행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직 크레페(Crêpe)의 지방 브르타뉴와 카망베르(Camembert) 치즈가 유명한 노르망디 지방을 가보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아쉬웠던 곳이 노르망디에 위치한 몽생미셸(Mont Saint-Michel)이라는 곳이었다. 3년 전 처음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에서 만난 재일교포 아주머니, 승무원과 언어 때문에 대화가 어려워 도와드렸더니 금방 말을 섞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일하는 따님을 뵈러 가는 길이셨다. 어디 구경 가실 거냐는 내 질문에 '몽생미셸'이라고 대답하셨다.


섬 위에 있는 수도원인데 아주 멋있다며 가이드북에 있는 사진까지 보여주셨다. 이렇게 처음 몽생미셸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그 후에도 수차례, 거길 다녀온 친구들이 꼭 가보라며 권유해주었다. 하지만 그동안 기회가 닿지 않아 못 갔는데, 이렇게 프랑스를 떠나기 직전 기회가 찾아올 줄이야. 친구가 몽생미셸에 여행 갈 건데, 같이 갈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 대답은 "Oui!(응)"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생말로'... 한 폭의 수채화같은 풍경

a  생말로에서 브르타뉴 특유의 돌벽과 검정지붕의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생말로에서 브르타뉴 특유의 돌벽과 검정지붕의 건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 이주리


부지런히 구경할 생각으로 우리는 무려 새벽 6시에 출발했다. 그 전날 파리에 비가 와서 걱정했지만 날씨는 맑고, 비 온 덕분에 몽생미셸로 가는 길에 내 평생 본 무지개 중에 가장 큰 무지개까지 보았다.

운전대를 잡은 친구는 파리의 경영대학에서 공부하는 '니콜라'이다. 러시아계 프랑스인인 니콜라는 러시아 고위간부들이 파리를 방문할 때 통역겸 가이드 일도 많이 해보아서 파리의 명소는 물론 맛있는 식당, 바를 낱낱이 알고 있다. 관심사도 다양해서 여행을 갈 때마다 그 지역의 역사책 등을 사기도 한다. 오늘 여행에서도 운전수를 담당했을 뿐 아니라, 가이드역할까지 맡았다.

운전대를 잡는 동안에도 "왼쪽 봐! 여기는… 오른쪽 봐봐! 여기는…" 하면서 이야기 해주느라 정신이 없다.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라 이번에도 준비를 철저히 해왔다. 그 중 하나가 자기 친구에게 빌려온 브르타뉴 음악 시디이다. 흥겹긴 하지만 가사를 통 알아들을 수 없어서 물어보니 자기도 못 알아 듣는단다. 브르타뉴 지방에는 그 지방만의 언어인 브르통(Breton)이 있어서, 아무리 프랑스 사람인 니콜라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한다. 아일랜드어, 스코트랜드어와 같이 켈트어파인 브르통은 대부분의 사용자가 60대 이상이고, 현재 유네스코에서 정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언어' 중 하나이다.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오니 벌써 브르타뉴 지방에 다 와가나 보다. 돌 벽에 검정색 지붕을 한 브르타뉴 특색의 건물들이 하나둘 보인다. 몽생미셸에 가기 전에 거기와 가까이 있는 도시를 한 곳 들리자는 니콜라의 제안을 받아들여 생말로(Saint-Malo)로 향했다.

조금 생소한 이름이지만 브르타뉴지방에서는 관광객이 제일 많이 찾는 지역 중 하나라고 한다. 영국해협과 가까워 프랑스의 중요한 항구 역할도 하고 있다. 눈앞에 펼쳐진 바다가 유난히 예쁜 이유가 4시간 가까이 차 안에만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햇볕에 반사되는 바다와 구름, 그 위에 떠있는 배들까지 마치 한 폭의 수채화 작품같다. 옷을 얇게 입고 온 탓에 브르타뉴 특유의 매서운 바람이 야속하기만 했지만, 이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보고 있자니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바람이 가슴을 뻥 뚫어주는 것 같다.


a  생말로는 브르타뉴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이자 프랑스의 중요한 항구도시이기도 하다.

생말로는 브르타뉴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이자 프랑스의 중요한 항구도시이기도 하다. ⓒ 이주리


그 다음 향한 곳은 생말로 성. 이 성은 브르타뉴의 공작들에 의해 12세기경에 지어졌다. 1590년부터 4년 동안 생말로는 '독립 공화국'을 선언하기도 하였다. 성을 따라서 성벽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이 성벽과 항구의 80%가 1944년에 일어난 전투에서 파괴되었다고 한다. 성벽을 따라 걸으면 촘촘하게 꽂혀있는 방파제가 눈에 띈다. 브르타뉴 지방의 강한 바람을 직접 맞아보니, 파도의 위력은 어떨지 상상이 간다. 또한 여기는 조수간만의 차가 클 때는 14m라고 하니 조수의 차가 특히 크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정말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한다.

a   생말로 성과 성을 둘러싼 성벽. 거친 파도 때문에 방파제가 설치되어있다.

생말로 성과 성을 둘러싼 성벽. 거친 파도 때문에 방파제가 설치되어있다. ⓒ 이주리


고서적 파는 서점, 제2차 세계 대전 때 엽서도...

돌아오는 길에 잠시 고서적을 파는 서점에 들렀다. 니콜라가 책을 고르는 동안 서점을 둘러보니 한쪽에 모여 있는 엽서들이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엽서들이 꽤 오래돼 보였다. 뒷면을 보니 글씨까지 쓰여 있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옛날에 주고받았던 엽서들을 모아서 파는 거라고 한다. 오래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주고 받은 엽서도 있다고 한다. 2012년, 여행자로 여기에 온 내가 이 엽서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해진다.

a  생말로에서는 해산물 그 중에서도 특히 굴이 유명하다.

생말로에서는 해산물 그 중에서도 특히 굴이 유명하다. ⓒ 이주리


니콜라가 출발할 때부터 여기서는 해산물을 먹어야 된다고 입이 닳도록 말했는데, 서점 아주머니께서 식당을 추천해주신 덕에 맛이 보장된 곳으로 갈 수 있었다. 넉살이 좋은 니콜라는 주문하기 전부터 오른쪽에 식사하고 있는 분들에게 음식이 맛있냐며 재차 확인한다.

해산물이 나오기 전에 먼저 여러 가지 연장(?)들이 식탁에 얹혀졌다. 도구 하나씩을 사용해 해산물을 하나씩 먹을 수 있다. 다슬기를 찌르는 이쑤시개만한 꼬치부터, 게 껍질을 깨는 이빨달린 가위까지 해산물 먹기 참 힘들다. 해산물이 나오고, 니코가 알려준 대로 굴에는 레몬을 뿌려서 씹지 않고 삼키고, 고동은 마요네즈에 찍어먹었다. 조금 색다르지만 맛있다.

우리가 정신없이 먹는 동안 니콜라는 게살을 발라서 우리에게 준다.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이럴 땐 꼭 아빠 같다. 이런 배려에서부터, 옆 테이블 사람들이 다 먹고 나갈 때 인사까지 하는 오지랖까지, 한국에 오면 아줌마들의 사랑은 따 놓은 당상이겠다 싶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브르타뉴지방에서 유명한 능금주(cidre)를 한잔씩 마시고, 우리의 목적지인 몽생미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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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리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생말로 #브르타뉴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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