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왕상작가 최명희의 눈에는 칠장사의 사천왕의 눈이 슬프게 보였나 보다
김정봉
천왕문을 벗어나면 바로 마주하는 건물이 명부전이다. 명부전은 칠장사의 여러 이야기를 그림동화처럼 보여준다. 칠장사에 얽힌 설화와 전설, 서사적 이야기를 벽화로 담고 있다. 활 쏘는 궁예의 모습, 임꺽정과 그 무리, 임꺽정의 스승인 병해대사, 혜소대사와 7인의 도적을 벽화로 그렸다.
벽화마다 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의 주요무대도 칠장사다. 임꺽정의 스승 병해대사가 이 곳 칠장사에 머물러 임꺽정과 칠장사의 연은 깊다. 병해대사와 임꺽정 모두 백정 출신이다. 천한 신분을 뛰어넘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의적과 대사로 변화한다. 이들 모두 사회가 인정하지 않았을 뿐 스스로는 이미 신분의 제약을 뛰어넘어 평등의 세상을 구가했을지 모른다.
칠장사는 삼라만상 속세의 이야기를 모두 포용하는 너그러움을 보여준다. 불교가 민간신앙과 사람 냄새나는 속세의 이야기를 아무 거리낌 없이 포용하고 있는 것이다. 명부전이기에 가능하리라. 천왕문에서 <혼불>의 최명희를 만나고 명부전에서 <임꺽정>의 홍명희를 만나고 있다. 두 거장 '명희'를 만나고 있다.
전각으로 그래도 볼만한 것은 대웅전이다. 칠장사에 있는 집은 범종각을 제외하면 모두 맞배지붕이다. 대웅전은 다포계 공포를 갖춘 맞배지붕인데 조선후기에 나타나는 양식으로 독특한 것이다. 맞배지붕의 깔끔함과 다포계 공포의 화려함이 어우러져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도 볼만하다. 빛바랜 채색은 제 나이에 비해 겉늙어 보여 예스러운 풍치가 그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