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 사는 빨래하는 무슬림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

[새로운 나라 네팔, 내가 만난 네팔 사람들 7] - 압둘거니(74세)와 무하마드 소피(40세)의 삶

등록 2012.07.04 11:48수정 2012.07.0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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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옷을 빠는 사람이 있다. 둘은 날이 맑은 날이면 변함없이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의 일상의 찌든 때가 잔뜩 배어있는 옷들을 쌓아놓고 빨래를 한다. 물 사정이 좋지 않은 곳에서 빨래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에 삶의 근심을 씻어낸다.

말없이 한 동안을 지냈다. 나는 지금 사는 집에서 9개월을 넘게 살고 있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내가 살고 있는 집 옥상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그들이 바로 압둘 거니(74세)와 무하마드 소피(40세)다. 아버지 압둘 거니는 74세인데 벌써 빨래로 살아온 일상이 70년을 넘어선다고 했다. 세 네 살 때부터 빨래를 해오던 집안에서 태어난 때문인데 그의 아들이 또 가업을 잇느라 함께 일상을 보내고 있다.

a 빨래하는 아버지와 아들 네팔 시민권없이 네팔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 압둘 거니(74세)와 아들 무하마드 소피(40세)씨가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빨래하는 아버지와 아들 네팔 시민권없이 네팔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 압둘 거니(74세)와 아들 무하마드 소피(40세)씨가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 김형효



나는 그들이 빨래를 하는 것이 업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낮은 카스트의 네팔 사람들인 것으로 이해했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사는 집 옥상의 주인인 그들과 몇 차례 통성명을 하고 가끔은 찌아를 함께 마시기도 했다. 한국식으로 도너츠를 만든 날에는 빨래를 널러온 그들과 나눠먹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 얼굴을 익히고 낯설지 않은 사이가 되어 사연을 묻게 되었다. 사실 카스트가 낮은 사람에 성을 묻는 일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도비(Dhobi, 빨래하는 직업)는 하나의 카스트와 같다. 힌두에서는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들의 신분이 정해진대로 일생을 사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신분을 표방하는 성씨를 묻는 일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압둘 거니는 아주 오래전 그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가 인도 북서부의 비하르(Bihar)지역을 떠나 네팔로 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버지는 빨래를 하여 생계를 유지했다.

a 무하마드 소피(40세)가 빨래를 걷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집 옥상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 옥상의 주인은 이미 오래전 부터 그들이 주인이었다.

무하마드 소피(40세)가 빨래를 걷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집 옥상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 옥상의 주인은 이미 오래전 부터 그들이 주인이었다. ⓒ 김형효



그러니까 압둘거니는 평범한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지만 인도인으로 네팔시민권자가 아니다. 네팔에서 70년을 넘게 살았지만 아직껏 시민권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네팔은 네팔에 집을 가진 사람에 한해 시민권을 부여한다. 집을 가진 사람의 자식은 자연스럽게 시민권을 얻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시민권을 가질 수 없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가 집이 없었고 그 또한 집을 가지지 못했다. 그 이유는 네팔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3남을 둔 그는 큰 아들과 함께 빨래를 하여 가족의 생계를 잇고 있는데 다른 아들과 큰 아들의 자식들은 모두 인도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평생을 빨래만 하며 살아가는 남자 둘을 만났다. 하지만 그들의 깡마른 몸과 얼굴에는 근심이 없다. 아마도 일평생을 때를 씻어가는 사람들이 하는 일에서 수양된 마음 탓일까? 어쩌면 타인의 찌든 때를 씻어내는 일을 경전을 읽는 일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a 압둘 거니(74세)씨 붉은 담은 인도대사관 담장이다. 순백의 마른 옷을 걷고 있다. 그의 영혼처럼 맑은 빛은 아닐까?

압둘 거니(74세)씨 붉은 담은 인도대사관 담장이다. 순백의 마른 옷을 걷고 있다. 그의 영혼처럼 맑은 빛은 아닐까? ⓒ 김형효




타인의 옷가지에 젖은 때를 씻어내며 얻는 한 달 수익은 2만루피 정도라 한다. 네팔인들의 생활에서 결코 작은 금액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셋방살이를 극복할 수준은 못된다. 여전히 그들은 특별한 변화가 없는 한 빨래로 평생을 살아가는 일 말고 다른 기대를 갖기 힘들다. 한 가지 남은 희망이라면 교육받는 자식들에 대한 기대뿐이다. 하지만 일상을 평온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고된 삶을 이겨내는 모습은 성자와 다르지 않음을 본다.

압둘 거니의 아버지가 빨래를 하며 살던 시절, 지금 인도대사관과 영국대사관이 있는 지역의 집 한 채 지을 땅값은 불과 500루피(한국돈 5,500원)수준이었다고 한다. 압둘거니는 그런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매우 평화로운 웃음을 짓는다. 삶을 초월한 사람처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 게재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e-수원뉴스 게재합니다.
#압둘 거니와 무하마드 소피 #빨래하는 아버지와 아들 #네팔 카트만두 #네팔 시민권 없는 네팔인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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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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