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서 '맥가이버' 되기... 정말 어렵습니다

일주일이나 걸린 싱크대 수도꼭지 수리

등록 2012.07.11 14:49수정 2012.07.1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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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새는지 모르게 물이 새 싱크대 주변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 최오균

지난 7월 첫째 주부터 싱크대 주변 부엌 바닥이 조금씩 물이 젖어들고 있었다. 물이 어디서 새는지 싱크대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봐도 그 원인을 쉽게 찾기 어려웠다.


원선과 연결된 수도꼭지를 조금 열어 놓으면 물이 새지 않다가 조금만 세게 틀면 서서히 싱크대 주변 바닥이 젖어들곤 했다.

"도대체 물이 어디서 새는 거지?"
"바닥이 축축해요. 저 싱크대 밑을 샅샅이 뒤져봐야 할 것 같아요."

싱크대 밑 가로막을 뜯어내고 전지를 비춰보니 아내의 생각대로 물이 그 안에서 새고 있었다. 상수도 원선으로 연결되는 호스와 꼭지로 연결되는 노즐 연결부위에서 물이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노즐의 연결나사를 조여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랫집 연희 할머님이 잘 안다는 전곡의 수도수리점에 전화를 해 수리를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너무 멀어서 갈 수 없단다. 수도꼭지 하나를 교체해주기 위해 하루 품을 들여서 갈 수 없다는 것. 몇 군데 더 전화를 해봤지만, 모두 같은 이유로 회피했다. 결국, 철물점에 가서 부품을 사다가 직접 수리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내가 살고 있는 DMZ 인근 연천군 동이리는 전곡에서도 20km 정도 떨어진 오지라서 잡다한 수리는 요청을 해도 잘 오지 않는다. 오가는 기름 값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하루 품을 다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하루 품삯을 다 준다고 해도 올까 말까 할 정도다.


또한 텃밭에서 수확한 농작물을 서울 아이들이나 친지에게 부치고 싶어 택배를 불러도 택배원들조차 오지 않는다. 이 때문에 직접 전곡으로 싣고 가야만 택배를 부칠 수 있다. 또 다른 지방에서 부친 택배도 당일 배달이 되지 않고 거의 3~4일 정도 걸려야 도착한다.

일전에 지리산 구례 해경이 엄마가 부친 감자도 3일 만에 도착했다. 왜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느냐고 택배원에게 물었더니 "이곳은 최전방 오지라서 섬지방에 택배를 부치는 것과 같다"며 "배달도 월, 수, 금 혹은 2~3일 한 번씩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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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 일부교체는 안 되고 싱크대 수도꼭지 부품 전체를 갈아야 한다고 해서 전곡철물점에서 부품 전체를 샀다. ⓒ 최오균


하는 수 없이 전곡에 있는 철물점에 가 새는 부위만 부품을 교체할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철물점 주인은 수도꼭지 전체를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내 생각에는 물이 새는 부위의 부품만 교체하면 될 것 같은데, 거기에 맞는 부속품도 없고 부속품을 일부분만 팔지 않는다는 것.

하기야 요즘은 자동차나, 문고리 등 그 무엇을 수리 하더라도 부속품 일부는 수리가 안 되고 통째로 바꿔야 한다. 통째로 바꾸면 작업은 쉽지만, 자원을 활용하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매우 낭비적인 행위다.

철물점 주인한테 수도꼭지 작업 교습을

물은 계속 새고, 수리공은 오지 못하겠다고 하고... 이를 어찌해야 하나. 인터넷을 뒤져 싱크대 수도꼭지 교체하는 방법을 찾아봤지만, 상세하게 나와 있지 않았다. 방법이 나와 있는 곳이 있다고 해도 수도꼭지 사양이 달라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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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대 수도꼭지 부품교체는 일반인에게는 의외로 복잡하고 어려운 구조로 돼 있다 ⓒ 최오균


싱크대 수도꼭지는 의외로 교체하기가 힘든 구조로 돼 있다. 첫째, 작업공간이 매우 좁다. 둘째, 생각보다 부품구조가 복잡하다. 찬물, 더운물, 노즐 등 세 개의 선이 복잡하게 엉켜있고, 연결작업도 쉽지가 않다. 더구나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 작업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구례에 살 때도 상하수도 관련 수리만큼은 너무 어려워서 손대지 못하고 읍내에 있는 수리소에 요청해 수리하곤 했다. 그런데 이곳은 돈을 줘도 오지 않는다고 하니... 어떻게 생각하면 지리산보다 이곳이 더 오지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지요?
"제가 조립을 하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드릴 테니 그대로 한번 시도해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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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을 늘어놓고 철물점 주인으로부터 조립교습을 받았다. 수도꼭지 연결 고무바킹 ⓒ 최오균


다행히 철물점 주인은 매우 친절하게 부품을 늘어 놓고 조립하는 순서를 하나하나 상세하게 알려줬다.

"이거, 성공적으로 작업을 완성하면 수업료 톡톡히 내야겠는데요? 허허..."
"교체하시다가 의문 나는 점이 있으면 언제라도 전화주세요. 가까우면 제가 가서 좀 도와 드릴 텐데... 그 작업이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요."

화장실에서 사전 리허설까지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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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꼭지와 호스를 연결하는 고무 나사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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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즐에 다는 추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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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킹도 순서대로 끼워야 한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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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개의 선을 원선과 연결해야 한다. ⓒ 최오균


지난 3일 오후 3시, 나는 드디어 수도꼭지 교체 작업을 시작했다. 철물점 주인이 일러준 대로 부품을 늘어놓고 화장실에서 순서대로 조립해 사전 리허설(?)까지 했다.

일단 별 탈 없이 꼭지에 물이 콸콸 나오는 것으로 보아 리허설은 성공적이었다. 이대로만 잘 연결하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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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사온 싱크대 수도꼭지 부품을 늘어 놓고 화장실에서 사전 리허설을... ⓒ 최오균


나는 대문 밖에 있는 수도계기를 잠가놓고 수도꼭지를 교체하는 본 작업에 돌입했다. 다음 날 손님이 올 예정이었기에 이날 안으로 수리를 해야 한다. 그러나 싱크대 밑은 작업공간은 너무 좋은데다가 어둡기까지 해 작업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싱크대 전체를 뜯어내고 작업을 하는 것. 하지만, 그건 보통 큰 일이 아닐 것이다. 또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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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밖에 있는 상수도 수도계기를 잠갔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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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누워서 작업을 해야 하는 어둡고 좁은 싱크대 작업공간 ⓒ 최오균


할 수없이 좁은 싱크대 안에 전지를 켜 놓은 채 거꾸로 누워 작업을 시작했다. 말이 쉽지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 스패너, 렌치, 스패너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었다. 게다가 호수 연결 나사 부위가 너무 짧아 렌치에 잘 물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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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싱크대 안에서 전지를 켜놓고 거꾸로 누워서 작업을 시작했다. ⓒ 최오균


렌치에 나사 부위가 겨우 물렸지만 옆으로 돌릴 공간이 없다. 렌치에 물려도 나사가 자꾸만 헛돌기만 하고... 쉽게 풀리지 않았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아내에게 나사가 헛돌아가지 않도록 수도꼭지 상단을 잡아달라고 했다. 아내와 나는 끙끙대며 수십 번을 시도한 끝에 겨우 나사를 풀어냈다.

"와, 성공이다!"
"풀어졌나요?"
"응, 겨우 풀어냈어!"
"여보, 좀 쉬었다 해요..."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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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풀어낸 연결 나사 ⓒ 최오균


나사 하나를 풀어내고 우리는 함성을 질렀다. 일이란 그런 거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해냈다는 성취감은 크다. 시계를 보니 오후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무려 4시간 동안 끙끙대며 우리는 겨우 나사 하나를 풀어낸 것이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구 수도꼭지를 철거하고, 새로 사온 수도꼭지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새 수도꼭지는 나사 연결 부위가 길어 작업이 훨씬 수월했다. 다시 거꾸로 누워 싱크대 안에 수도꼭지를 조립하고 연결 나사를 조이는 데 성공했다.

이거야 정말, 산 넘어 산이네!

그런데, 원선으로 연결할 호스가 2cm 가량 짧았다. 이거야 정말... 산넘어 산이네! 우리 집 싱크대는 보통 싱크대보다 약간 높다. 그런데다가 이번에는 연결 나사부위가 너무 길어 호스를 옆으로 돌리는 유도리가 없어져 선이 더 짧아지고 만 것. 철물점 주인의 말로는 이 규격은 국제 규격으로 어느 싱크대나 다 동일하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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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호스가 너무 짧아 원선에 닿지 않네! ⓒ 최오균


이마에 흘리는 진땀을 닦고 시계를 보니 오후 10시. 철물점 문은 이미 닫혀 있을 것이다. 오전 7시에 문을 연다고 하니 다음 날 연락을 할 수밖에.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니 전곡에서 수리하러 오지 않는 이유가 이해되기도 했다.

4일 오전 7시, 철물점에 전화를 걸었더니 일단 부품을 가져와 보라고 했다. 뜯어낸 고장난 수도꼭지까지 들고 철물점으로 갔다. 임진강변에는 안개가 짙게 끼어 있고, 도로변에는 개망초가 마치 메밀꽃처럼 수없이 피어 있었다.

다시 시작된 작업... 코브라 같이 생긴 수도꼭지와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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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변에 피어 있는 개망초. 메밀꽃보다 아름답다! ⓒ 최오균


철물점에 도착하자 주인은 고장난 수도꼭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이건 똑같은 제품을 사야만 해결이 되겠는데요?"라며 전곡에서 가장 큰 철물점을 소개해줬다. 그러더니 그곳으로 가보란다. 그러나 그 철물점은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손님이 오는데 싱크대 수도를 사용하지 못하면 큰일이다. 할 수 없이 그 옆에 있는 철물점에 갔다. 철물점 주인은 가져간 옛 수도꼭지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스프레이 꼭지와 연결하는 노즐선은 고장이 나기 쉬운 부위인데요, 이 노즐만 한 번 갈아 써보세요"라며 노즐을 호스에다 연결해주는 친절함까지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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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물점 주인이 구 수도꼭지 호스에 새 노즐을 연결해주는 친절까지 베풀어 주었는데... ⓒ 최오균


"호스가 짧으면 보조선을 연결해 쓰는 방법도 있어요."
"아, 그거 좋겠군요. 그 제품을 하나 주세요. 노즐을 교체해 물이 새지 않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으면 다시 와야 하니까요."
"그게 좋겠군요."

노즐 교체해 물이 새지 않는다면 비용도 절감되고 좋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 새 수도꼭지도 하나를 따로 구입해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옛 수도꼭지를 연결하는 것은 성공했으나 수도꼭지에서는 여전히 물이 새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번에는 꼭지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밸브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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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하였지만 이번에는 연결 밸브에서 물이 샜다. ⓒ 최오균


"이런! 낭패군."

그 작업을 하는데 3~4시간을 써버렸다. 이 와중에 아내 친구들이 삼화교를 지나고 있다는 전화가 왔다. 삼화교는 우리집에서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손님들이 오고 있었다.

"큰일 났네! 친구들이 거의 다 왔다고 해요..."
"하는 수 없지. 다 고칠 때까지 화장실 물을 받아서 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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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립 순서를 사전에 리허설을 하고,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 ⓒ 최오균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씻어내며 다시 수도꼭지에 매달렸다. 여벌로 사온 수도꼭지는 노즐에 추가 달린 것이 아니라 노즐이 두 개인 '코브라' 형 수도꼭지였다. 노즐이 세 개일 때보다 작업이 더 수월했다. 낮 12시가 넘어서야 작업이 겨우 끝났다.

제품 불량으로 다시 물이 새다

그러나, 다음 날(5일) 아침 수도꼭지를 틀어보니 싱크대 꼭지 밸브에서 물이 솟아나오며 내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이거야 정말 사람잡네! 물이 왜 또 새지? 꼭지를 여기저기 아무리 조여봐도 소용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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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교체에 성공했으나 이번에는 제품 불량으로 수도꼭지 밸브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 최오균


철물점에 다시 전화해 상황을 전했더니 휴대전화로 새는 부위를 촬영해서 전송해달란다. 사진을 봐야 새는 부위와 원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 물이 새는 부위를 촬영해 철물점 주인에게 보냈더니, 철물점 주인은 "제품 자체가 불량이니 가져오면 교체해주겠다"고 말했다.

사실 불량품 교환이 문제가 아니었다. 다시 고개를 처박고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 큰일이었다. 좁은 공간에서 몸을 뒤틀다 옆구리 갈비뼈까지 다쳐 통증이 심했다. 파스를 붙였지만, 통증은 잘 가라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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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바꿔 온 코브라 형 수도꼭지.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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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선이 길어 원선과 연결하기가 넉넉하군요.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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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품을 새 제품으로 교체하고나니 물이 콸콸 잘 나왔다. ⓒ 최오균


9일이 돼서야 전곡철물점에 가 불량품을 새 제품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후 나는 가까스로 다시 작업을 재개해 수도꼭지를 교체했다. 일단 물은 새지 않고, 콸콸 잘 나왔다.

"우와! 물이 너무 시원하게 잘 나오네요! 당신 너무 수고 많이 했어요. 오늘부터 진짜 맥가이버로 대접을 해 드려야겠네요!"
"이거... 맥가이버 소리 두 번 듣다간 사람 죽겠군."

일주일이나 걸려 수리를 한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나오는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도심의 아파트에 살 때는 꿈에도 생각을 해 보지 못할 일들을 나는 해내고 있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하지만, 귀농귀촌은 결코 낭만이 아니다.

'그래, 낭만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해.'

덧붙이는 글 | 수리공도 택배원도 잘 오지 않는 오지에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싱크대 수리 같은 작업은 저에게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수리공을 불렀지만 오지 못한다고 해 가까스로 작업했습니다. 오지에 살며 스스로 수도꼭지 수리를 해야 하는 경우를 생각하며 사진과 작업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귀농 귀촌은 결코 낭만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어 이 기사를 상세하게 작성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수리공도 택배원도 잘 오지 않는 오지에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싱크대 수리 같은 작업은 저에게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수리공을 불렀지만 오지 못한다고 해 가까스로 작업했습니다. 오지에 살며 스스로 수도꼭지 수리를 해야 하는 경우를 생각하며 사진과 작업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귀농 귀촌은 결코 낭만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어 이 기사를 상세하게 작성했습니다.
#싱크대수도꼭지 교체 #전곡, 연천군 동이리 #맥가이버 #낭만의 대가 #귀농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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