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네스씨가 충격받은 <남경의 강간>은 36세에 요절한 중국인 아이리스 장이 쓴 책으로 전 세계에 일본군의 참상을 고발한 불후의 명작이다.(왼쪽) 남경대학살에서 중국인 목베기 경쟁을 하던 잔인한 일본군 소위의 기사.
이윤옥
조부모가 남경대학살을 몸소 겪은 만큼 아이리스 장은 중국이 일본군에 의해 참혹한 살상을 겪은 것에 분노했고 이러한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남경대학살의 현장증언과 자료를 토대로 불후의 명작인 <남경의 강간>을 남기고 36세의 아까운 나이로 죽게 된다.
필자도 남경대학살에 관한 책을 읽었을 때 충격이 컸지만 아그네스씨의 충격은 나보다 몇 곱절 컸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태어난 아그네스씨는 그때까지 그의 고백처럼 일제강점기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던 데다가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아시아 제국의 참상에 대해서도 배운 바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동양인으로서 미국에서 살아남으려고 철저히 미국인으로 교육받으며 성장했던 것이다.
남경대학살기념관을 방문한 사람은 기념관 안의 한 신문 기사에 눈을 떼지 못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일본군 소위(少尉) 무카이 도시아키와 노다 츠요시의 기사로 그들은 누가 먼저 100명의 목을 베는가 경쟁을 벌였는데 106대 105로 두 사람은 다시 연장전에 들어갔다는 내용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이야말로 당시 피비린내로 물든 남경의 참상을 말해주는 그 어떤 말보다 우선한다. 일본군의 잔학한 만행이 기록된 '남경의 강간'은 애국지사 오정화 여사의 손녀 아그네스씨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모국 조선의 일제강점기 역사에 대해 차츰 눈 떠가면서 아그네스씨는 평범한 의사에서 일본의 역사 왜곡에 깊은 관심을 두는 '신 독립운동가'가 된다. 아무렴, 독립운동가 후손의 피 속에 흐르는 유전자가 그를 가만 놔두었을 리가 없다. 아그네스씨의 식민지 조선과 가해국 일본에 대한 역사공부 독학은 무서운 속도로 진전을 보였다. 그녀는 하버드대학 도서관을 위시하여 역사의 기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그러한 기록의 보따리는 대담을 하는 동안 가방 속에서 주렁주렁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져 나왔다.
일제강점기의 가해국인 일본이 피해자로 둔갑하여 가냘픈 소녀의 체험이라는 탈을 쓴 채 <요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꾸며진 책이 미국의 초·중등학교 교재로 읽히고 있는 현실을 눈앞에 두고 아그네스씨가 받았을 충격의 크기는 안 봐도 짐작이 간다.
그러나 아그네스씨가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문제의 책 <요코 이야기>가 15년간이나 미국 초·중등학교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아그네스씨를 포함한 한인 학부모들은 이 책의 문제점을 낱낱이 지적해 미국 공립학교 추천도서 목록에서 빼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아그네스씨도 그 한가운데서 적극적으로 투쟁했다.
2007년 1월 31일 자 <연합뉴스>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미국 뉴욕의 한 공립중학교가 한국인을 가해자, 일본인을 피해자로 묘사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요코 이야기>의 수업을 30일 전격 중단했다. 또 보스턴 지역의 한 공립중학교는 지난 13년간 해마다 계속돼온 작가 요코의 학교 방문 강의를 중단하기로 공식 결정했다. 뉴욕시 퀸즈에 있는 '제67 공립중학교(MS 67)'는 지난주부터 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에 들어갔으나 한인 학부모와 학생들의 반대의견을 받아들여 29일부터 이 책의 수업을 멈추고 교재로 나눠줬던 책을 수거했다……. " 요코 웟킨스(78)씨가 줄기차게 자서전이라고 주장하는 '선량한 일본인, 나쁜 한국인' 책을 한인 학부모들이 더는 좌시할 수 없어 투쟁한 저항의 결과였다. 아그네스 아들 마이클의 학교인 보스턴 도버 셔번중학교(Dover Sherborn Middle Schoo)에서도 2007년부터 이 책을 더는 학생들에게 수업교재로 쓰지 않게 되었다고 아그네스씨는 그간의 정황을 전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많은 학교에서 이미 필독서에서 빼거나 뺄 것을 검토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이것은 오로지 역사왜곡을 바로 잡으려고 앞장선 아그네스씨 같은 한인교포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에 의한 것이다.
조용히 눈 감은 애국지사 할머니... 영문 한국 역사책 없어 안타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