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이 섬'이라 부르고 싶은 섬, 선유도

원봉연 문화관광해설사가 전하는 선유도 역사

등록 2012.07.09 14:40수정 2012.07.09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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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부터 매주 화요일 열리는 '群山學'(군산학: 군산을 제대로 이해하기) 아홉 번째 강좌는 7일(토) 오전 9시~오후 5시까지 옥구향교, 은적사, 선유도 오룡묘 등 군산시 서부지역에 남아있는 주요 문화유적 현장탐방으로 치러졌다. 강사는 원봉연 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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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구향교 앞에서 설명을 듣는 군산학 수강생들 ⓒ 조종안

옥구향교 앞에서 설명을 듣는 군산학 수강생들 ⓒ 조종안

이날 현장탐방은 군산시 옥구읍 상평리에 있는 옥구향교(문화재 96호)에서 시작했다. 옥구향교는 조선 태종 3년(1403) 교동(옥구읍 이곡리)에 처음 세워졌고, 성종 15년(1484) 상평리 동북방 광월산 아래로 옮겼으며, 인조 24년(1646)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전학후묘(前學後廟) 구조의 옥구향교는 오늘날의 국립학교에 해당하며 매년 봄가을 공자, 맹자, 주자 등 옛 성현 스물일곱 분(18현은 한국)의 제사를 모시고 있다. 다음은 원봉연 강사의 설명.

 

"향교가 자리한 광월산(86m)에는 옥구읍성(평산성)이 있었는데, 백제가 망할 때 신라군에 의해 무너진 것을 조선 세종 21년(1441) 옥구현을 설치하면서 현을 방위하는 성을 쌓고, 동·서문을 세웠다고 합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중종 19년(1524) 성을 다시 쌓았으며, 둘레 3490척(1057m), 높이 12척(3.6m)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은 토축 성벽 일부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원 강사는 옥구향교 경내에 있는 자천대(紫泉臺: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6호) 유래도 설명했다.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자천대'는 최치원(서기 851년~?)이 소년 시절 글을 읽던 바위(옥구군 선연리 하제) 옆에 조선말 옥구 군수 최학수가 건립한 2층 누각. 일제강점기(1941) 군용비행장으로 편입되어 헐리게 되자, 당시 옥구 유림의 발의로 옥구향교 경내로 옮겨 경현재(景賢齋)라 하였다. 1967년 중창되었고, 1985년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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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적사 대웅전의 ‘석가여래 삼존불상’. 자애로운 미소가 아름답다. ⓒ 조종안

은적사 대웅전의 ‘석가여래 삼존불상’. 자애로운 미소가 아름답다. ⓒ 조종안

옥구향교에서 버스로 15분 거리에 있는 은적사(隱寂寺)를 찾았다. 군산시 소룡동 설림산 기슭에 자리한 '은적사'는 신라 진평왕 35년(서기 613년) 원광법사에 의해 창건됐으며 천방사(千房寺), 선림사(禪林寺)로도 불리었다.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네 차례 중건·중수가 이루어졌으며 대웅전, 명부전 등은 근래(1985~1995) 대규모로 중창되었다. 특히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형식으로 지금의 불주사 대웅전과 비슷했다 한다. 

 

대웅전에 모셔진 '석가여래 삼존불상'(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4호)은 조선 인조 7년(1629) 높이 114cm로 조성한 목조불상으로 조선 후기 불교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형식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좌우에서 석가여래를 모시고 있는 모습으로 석가여래는 사각형 얼굴에 오뚝한 콧날, 당당한 어깨, 균형 잡힌 몸체, 안정감 있는 무릎 자세 등 신체의 비례가 뛰어나고 법의와 옷 주름 표현이 아름답다.

 

선유도 바닷길, 좌우로 도열한 섬들이 가장 먼저 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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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 비응항과 방파제에 세워진 등대 ⓒ 조종안

군산시 비응항과 방파제에 세워진 등대 ⓒ 조종안

오전 10시 35분. 세계 최장의 새만금 방조제(33.9km)가 시작되는 군산시 오식도동 비응항 연안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한 탐방단(43명)은 승선 절차를 마치고 쾌속 유람선 진달래 호(정원 89명)에 올랐다. 선유도 선착장까지 뱃길은 31㎞. 여객선이 군산 내항에서 출발할 때(43.2km)보다 운항거리가 10km 이상 단축되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오전 10시 50분. 쾌속 유람선이 육중한 굉음과 함께 고군산군도 중심 섬, 선유도를 향해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마시는 바닷바람이 상쾌하다. 5분쯤 지났을까. 비응항 등대와 새만금방조제가 가물가물해지면서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목화솜 같은 물안개가 낮게 깔린 야미도와 신시도는 바다에 엎어놓은 조개껍데기처럼 앙증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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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대교 입구에서 바라본 선유도 망주봉 ⓒ 조종안

장자대교 입구에서 바라본 선유도 망주봉 ⓒ 조종안

선유도, 비안도, 무녀도, 장자도, 명도, 말도 등 16개 유인도와 47개 무인도로 이루어진 '고군산군도'는 행정구역상 군산시 옥도면에 속한다. 명칭은 옛적에 '군산도'로 불리었던 선유도에서 유래했다. 조선 태조는 잦은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군산도(선유도)에 수군 만호영을 설치한다. 그래도 왜구가 섬을 우회하여 내륙을 자주 공격하자 세종 8년(1426) 수군 부대를 옥구 북면 진포(현 군산)로 옮긴다. 이후 진포가 군산진이 되고, 기존의 군산도는 옛 군산이라는 뜻의 옛 고(古)자를 붙여 '고군산'이라 칭하게 되었다.

 

선원 아저씨에게 비응항에서 선유도 선착장까지 얼마나 소요되느냐고 물으니까 "쾌속선이니까 50쯤 걸릴 것"이라며 "돌아올 때는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답한다. 갈 때는 이 섬 저 섬 천혜의 절경을 관광하느라 돌아가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 예전 여객선들은 왕복 5시간 걸렸는데, 유람하면서도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니 놀라움을 넘어 질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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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묘묘한 바위들이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횡경도, 할배바위가 희미하게 보인다. ⓒ 조종안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횡경도, 할배바위가 희미하게 보인다. ⓒ 조종안

15분쯤 지나니까 선유도를 중심으로 무리지어 있는 20여 개 유·무인도 중 면적이 넓으면서도 사람이 살지 않는 횡경도가 가장 먼저 반긴다. 기암괴석이 아기자기하게 이어지는 바위 능선은 탄성을 절로 나오게 한다. '할배바위'와 '거북바위'가 기묘함을 자랑하는 횡경도는 소(小) 횡경도와 횡경도로 나뉘며 30~40년 전 누군가가 풀어놓은 수십 마리의 흑염소들이 지금도 살고 있다고 전한다. 그래서인지 독도처럼 법에 따라 특정 도서(島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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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축도 독립문바위. ⓒ 조종안

방축도 독립문바위. ⓒ 조종안

방축도가 나도 질세라 '독립문 바위'를 내세우며 몸체를 드러낸다. 기묘한 책바위(떡바위)도 한 몫 거든다. 우람한 바위로 이루어진 섬들이 좌우에서 도열하듯 맞으니까 사열을 받는 기분이 든다. 고군산군도 방파제 역할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방축도(防築島). 섬 주변은 암석이 많고, 수심이 얕아 조류가 거세고 파도가 강한 편이지만, 바다낚시 최적지로 꼽힌다. 

 

'맏이 섬'이라 부르고 싶은 섬, 선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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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깔린 안개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무녀도(왼쪽)와 선유도 망주봉(오른쪽). ⓒ 조종안

낮게 깔린 안개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무녀도(왼쪽)와 선유도 망주봉(오른쪽). ⓒ 조종안

20분쯤 지나 낮게 깔린 물안개 위로 선유도의 상징 망주봉(152m)이 얼굴을 살짝 내민다. 두 봉우리가 낙타 등처럼 우뚝 솟은 망주봉은 옛날에 유배되어온 충신이 매일 올라가 한양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전설처럼 내려오는 얘기지만, 옛날 선유도 주민들은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은 바위 사이로 흘러내리는 빗물이 충신의 눈물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섬 경치가 아름다워 신선이 노닐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선유도(仙遊島). 원 강사는 "선착장에서 '진말'(진영 터가 있던 마을)로 가는 길목에서 발견된 조개 무덤으로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며 "빗살무늬토기와 김해식 토기 조각, 뼈로 만든 낚싯바늘 등이 발견되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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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와 무녀도를 이어주는 선유대교 ⓒ 조종안

선유도와 무녀도를 이어주는 선유대교 ⓒ 조종안

선유대교(268m)로 이어진 무녀도와 그 뒤로 장자도가 아슴하게 보인다. 올망졸망한 섬들이 어깨동무하듯 이어진 모습이 정겹다. 믿음직스럽고 아름다운 선유도를 '맏이 섬'이라 하고, 무녀도와 장자도는 '아우섬', 주변에 딸린 무인도들은 '새끼섬'으로 이름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유도는 서해에 그림처럼 수놓은 듯 아름다운 '고군산 8경'(선유낙조·삼도귀범·월영단풍·평사낙안·명사십리·망주폭포·장자어화·무산십이봉) 중 신시도의 '월영단풍'을 제외한 7경을 즐길 수 있는 섬이기도 하다. 이에 원 강사는 "망주봉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면 둥그렇게 둘러싼 산봉우리 안에 호수가 있고, 그 호수 중앙에 선유도가 있는 착각에 빠져 신선의 고향처럼 느껴진다"고 선유도를 얘기했다.  

 

선유도가 해상 교역의 주요 거점이었음을 알리는 '오룡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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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공사중인 오룡묘. 이곳엔 당집 두 채가 지붕을 맞대고 있는데, 섬 주민들은 앞 당집(오룡묘)을 ‘아랫당’, 뒤쪽 당집을 ‘윗당’이라 부른다고 한다. ⓒ 조종안

보수공사중인 오룡묘. 이곳엔 당집 두 채가 지붕을 맞대고 있는데, 섬 주민들은 앞 당집(오룡묘)을 ‘아랫당’, 뒤쪽 당집을 ‘윗당’이라 부른다고 한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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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묘에서 바라본 선유도 8경의 평사낙안. 팽나무가 사라져 아쉬웠다. ⓒ 조종안

오룡묘에서 바라본 선유도 8경의 평사낙안. 팽나무가 사라져 아쉬웠다. ⓒ 조종안

오전 11시 40분 선유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첫 탐방지로 선유도가 수군 기지가 있던 섬임을 알리는 '절제사 비석군(群)'을 돌아보고 해수욕장 특설무대로 이동해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은 뒤 오룡묘(군산시 향토문화유산 제19호)로 이동했다. 오룡묘는 위로는 망주봉, 아래로는 평사낙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오르막길에 있었다.

 

원 강사는 "오룡묘는 고려 인종 원년(1123) 송나라 사신으로 왔던 서긍(徐兢)이 한 달가량 머무르며 집필한 <선화봉사고려도경>에 '군산도(현 선유도) 객관 서쪽의 한 봉우리 안에 있다'고 기록되어 고려 시대에 이미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며 일부를 소개했다.

 

"아침 밀물을 타고 운항하여 진각(오전 7시~9시)에 군산도에 정박하였다. 산에는 열두 봉우리가 잇따라 연결되어 있는데 둥그렇게 둘러쳐진 성과 같다. 고려 배 여섯 척이 맞아주었는데, 징을 울리고 호각을 불면서 호위하였다. (중략) 정자(群山亭)는 바닷가 뒤에 있고, 두 봉우리가 받쳐주고 있는데, 나란히 우뚝 서 있고, 넓은 절벽을 이루어 수백 길이나 치솟아 있다. 문밖에는 관가 건물 10여 채가 있고, 서쪽 작은 산 위에는 오룡묘(五龍廟)와 자복사(資福寺)가 있다. 또 서쪽에 숭산행궁(崧山行宮)이 있고, 좌우에는 민가 10여 호가 있다···." (宣和奉使高麗圖經 권36 海道3 群山島)

 

서긍은 책에서 일행의 행적과 군산도 관사에 머물면서 보고 느낀 점, 궁궐을 바라보며 배례했던 일까지 세세히 적고 있다. 서긍의 기록은 고려 시대 군산도가 해상교역의 주요 거점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목조기와 건물인 오룡묘는 다섯 마리 용이 모여 산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라 한다. 

 

초분(草墳)은 한국의 섬과 해안지역의 전통 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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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에서 장자도 가는 길목 좌측 언덕에 있는 초분공원. ⓒ 조종안

선유도에서 장자도 가는 길목 좌측 언덕에 있는 초분공원. ⓒ 조종안

오룡묘에서 내려와 선유 3구 선착장을 돌아 군산지역 섬주민들의 장례문화를 엿볼 수 있는 '초분(草墳) 공원'으로 이동해서 초분의 유래와 분포 등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초분 공원은 해수욕장에서 장자대교 가는 길목 좌측언덕에 조성되어 있었다.

 

"군산지역 초분은 무녀도에 40여 년 전에 사망한 1기만 남아 있습니다. 초분은 무녀도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선유도, 장자도, 관리도, 어청도 등 고군산군도 전체에 남아 있었습니다. 명칭도 어청도는 '건품', 선유도는 '최빈', 무녀도는 '초빈'으로 불렀습니다. 금강하구 일대 육지에서도 초분과 비슷한 이중 장례가 치러졌지요."

 

원 강사는 "섬이나 해안지방에서 전통 장례풍속으로 내려오는 초분은 섬에서 상(喪)이 났을 때 조상이 묻혀 있는 땅에 생(날) 송장을 묻을 수 없다는 믿음과 정월에는 사람이 죽어도 땅을 파지 않는다는 풍습 때문에 2~3년 임시매장을 했다가 육탈이 된 후에 매장하는 이중 장례를 말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원 강사는 "육탈이 되지 않거나 자손과 망자의 운이 맞지 않으면 10년 넘게 초분으로 있는 예도 있다"며 "다양한 외래 장례방식이 도입되면서 이중 장례가 육지에서는 사라져가지만, 지역적으로 고립되어 있던 서남해안과 도서지역에서는 오늘날에도 전승되고 있다"며 강의를 마쳤다.  

 

현장 탐방으로 치러진 '群山學' 아홉 번째 강좌는 초분공원 답사를 끝으로 공식 일정을 마쳤다. 탐방에 참여한 정진수 인재양성과장은 "그동안 몰랐던 군산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관광 현장도 둘러본 뜻깊은 시간이었다"며 진행에 협조해준 수강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군산학 #선유도 #옥구향교 #은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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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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