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열린 보험범죄 방지대책 세미나에서 발표자들이 자료 설명을 하고 있다.
김동환
"벤츠나 포르쉐 같은 외제차에 블랙박스를 장착해서 실제로 50km 속도로 달리면서 부딪치는, 진짜 같은 교통사고를 연출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적발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측면이 있지요."정부와 보험업계 관계자들이 날로 고도화되는 보험사기에 대한 대책마련에 나섰다. 금융감독원(금감원)과 정부합동보험범죄전담대책반은 10일 오후 서울 통의동 금감원 연수원에서 보험범죄 방지대책 세미나를 열었다.
입원에 실종에... 보험금 노리고 친족 살해하기도이날 세미나에서 소개된 보험 범죄 유형은 천차만별이었다. 한 40대 무직 남성은 2009년 12월 한 달 사이 11개 보험사에서 11개의 재해 상해 특약보험에 가입했다. 440만 원에 가까운 월 보험료를 납입한 그는 납입을 마친 다음 날 철판절단기로 왼손을 자르고 사고로 위장해 6개 보험사로부터 2억 7700만 원 상당의 보험료를 받아냈다.
이 남성과 공범 1명은 금융감독원의 제보로 수사기관에 덜미가 잡혔다. 그들이 범죄를 저지른 이유는 도박 빚 때문이었다.
8년 간 치밀한 계획을 세워 24억 원 상당의 보험사기를 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도 있었다. 모텔을 운영하던 한 30대 남성은 카드빚에 힘들어하던 여종업원에게 실종선고를 이용한 범죄를 제안했다. 여종업원이 수익자를 남성으로 하는 생명보험을 맺고 잠적해 실종선고를 받으면 남성이 보험금을 수령해 나눠 갖는 방식이었다.
두 사람은 2003년 12월부터 8개월 간 13건의 보험계약을 체결했다. 13건의 사망 보험금은 60억 원을 넘는 규모였다. 이들은 의심을 피하기 위해 보험계약을 체결하는 와중에 혼인신고를 했고, 여종업원은 2004년 8월 계획적으로 종적을 감췄다. 5년이 지난 후 남성은 8개 보험에 대해 24억 원 상당의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지만 보험사기가 의심된다는 법원의 판결로 돈을 챙기지는 못했다.
이 사건은 8년 간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도피생활을 하던 여종업원이 검찰에 자진출두하면서 세상에 밝혀졌다. 사실상 여종업원의 자백이 없었다면 적발할 수 없었던 사건이다.
강원도 태백에서는 도시인구의 1% 가량인 410명이 보험사기를 친 사건도 있었다. 검찰에서는 2011년 11월 강원 태백시 소재 3개 병원 원장 등 의료인 7명과 환자 403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통원가능 치료환자를 입원시키는 방법으로 서로 짜고 총 157억 원의 보험료를 타냈다.
보험금을 노리고 배우자나 친족을 살인, 방화하는 강력사건들도 다수 발견되고 있다. 지난 달에는 친인척 명의로 고액 보험에 가입한 후 10년 간 부인과 친동생, 처남 등 3명을 교통사고로 위장 살해하고 20억 원의 보험금을 타낸 보험 사기범이 검거되기도 했다.
보험사기 피해액 연간 3조4000억 원... 가구당 20만 원 손해지난해 보험범죄 적발금액은 4237억 원. 그러나 학계에서 추정하는 한국의 보험사기 규모는 연간 약 3조4000억 원이다. 보험사기로 인한 경제적 피해액은 1인당 7만 원, 가구당 20만 원에 해당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세미나 토론자로 나선 이득로 손해보험협회 상무는 "과거에는 소액의 보험금을 노린 생계형 범죄가 많았다면 요즘은 조직화, 대규모화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험사기는 전파성이 강하다"면서 "요즘 같은 경기 침체기에 사회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어 정부의 강력한 대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보험사기를 처벌할 만한 마땅한 법률이 없다는 것이다. 보험사기 형량이 형법상 사기죄 형량보다 더 낮은 경우도 있다. 고용보험법의 경우 보험사기를 치다가 적발되면 1년 미만의 징역이나 300만 원 미만의 벌금을 받는데 이는 형법 사기죄의 처벌 기준보다 한참 가벼운 수준이다.
보험사기뿐만 아니라 보험사기와 결합된 여러 가지 범죄들에 대한 처벌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이날 제기됐다. 관련 주제 발표자로 나선 이상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보험사기와 강력범죄가 결합되었을 때 처벌할 수 있는 법 규정이 특히 미흡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현재 보험사기 적발율이 10% 남짓에 불과한 상황에서 보험범죄 관제탑 역할을 해온 보험범죄전담 합동대책반의 운영기한도 올 12월로 만료돼 우려를 더하고 있다. 보험범죄 수사 효율성 강화를 위해 9개 유관기관이 모여 2009년 7월 만들어진 보험범죄전담 합동대책반은 지난 3년 동안 다양한 유형의 보험사기를 적발해왔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서울중앙지검 안형준 검사는 "매년 1월에 운영기한이 연장되어 왔지만 내년에는 대선도 있고 인수위 구성도 있어서 대책반 활동이 연장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관제탑 역할을 해온 대책반이 없어질 경우 보험사기 검거율도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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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박스로 교통사고 조작... 보험사기 '고공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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