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의 결혼, <탁류>의 초봉이와 비슷해

군산대 공종구 교수가 보는 채만식의 생애와 문학

등록 2012.07.15 11:04수정 2012.07.1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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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만식의 생애와 문학에 대해 강의하는 군산대 공종구 교수
채만식의 생애와 문학에 대해 강의하는 군산대 공종구 교수 조종안

지난 10일(화) 오후 7시 전북 군산시 수송동 군산시립도서관 5층 교양문화실에서 열린 '群山學'(군산학: 군산을 제대로 이해하기) 열번째 강좌에서 군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공종구 교수는 풍자소설 <탁류>를 집필한 채만식(1902~1950)의 생애와 문학을 중심으로 강의했다. 

강의에 앞서 김 교수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군산을 얘기할 때 '새만금',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 '빵집 이성당', '소설가 채만식' 이상 넷 중 한두 개는 꼭 들어간다"며 "그중 채만식은 일제식민지 시대 문학을 연구하는데 빠져서는 안 될 정도로 중요한 작가"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채만식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먼저 그의 생애와 개인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며 "보는 사람의 시각과 관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암울했던 시대적 배경, 가부장적 가정환경, 결혼 실패, 49세에 결핵으로 타계 등을 고려할 때 상당히 불행했던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내성적인 성격에 소심했고, 까다로웠으며, 예민했던 채만식은 요즘 유행어로 전형적인 '까칠남'(까칠한 남자)이었다"고 말했다. 채만식은 상대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마음에 없는 소리는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교언영색(巧言令色)을 할 수 없는 성품을 타고났다는 것.

 개성에 거주하던 1936년 당시 채만식 모습
개성에 거주하던 1936년 당시 채만식 모습 군산시

호는 백릉(白菱)이라 했고, 후반에는 채옹(采翁)이라 했으나 잘 사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불란서 백작'이라 부르기도 했다.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단정한 한복 두루마기, 아니면 헌 양복이나마 깔끔하게 다려 입고 중절모를 쓰고 다녀 주위에서 붙여준 별칭이라 한다.

흔히 채만식을 결벽증 환자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필자는 조금 달리 생각한다. 남다르게 소심하고 깔끔한 면은 있으나 부풀려진 것 같아서다. 그가 자기 수저를 휴대하고 다닌 것도 40대 이전부터 폐결핵을 앓고 있어 병균이 옮지 않도록 조심하느라 그러지 않았나 싶다.

채만식의 운명적인 결혼, <탁류>의 초봉이와 비슷해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 채만식 생가.(2008년 12월 촬영)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 채만식 생가.(2008년 12월 촬영) 조종안

채만식(蔡萬植)은 1902년 7월 21일(양력) 전북 옥구군(지금의 군산시) 임피면 취산리에서 아버지 채규섭과 어머니 조우섭 사이에서 6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원래는 9남매였으나 누나 둘과 동생 하나는 어렸을 때 죽은 것으로 전해진다.

중앙고보 3학년 재학(1920) 중 급히 다녀가라는 전보를 받고 고향에 내려와 부모가 정해놓은 한 살 연상의 규수 은선홍을 아내로 맞이한다. 채만식의 순탄치 않은 인생은 운명적인 결혼과 함께 시작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처지가 소설 <탁류>의 주인공 초봉이와 비슷하다.


"그럼 절더러 물어보아서 제(초봉이)가 싫다면 이 혼인을 작파하실려우?"
유 씨는 그저 지날말 같이 웃음엣 말같이 한 말이지만, 은연중에 남편(정주사)을 꼬집는 속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변 유 씨가 자기 자신한테도 일반으로 마음 결리는 데가 없지 못해서 말이다.
"제가 무얼 알아서 싫구 말구 할게 있나?···· 에비 애미가 조옴 알아서 다아 제 배필을 골랐으리라구" (공종구의 <탁류> 196~197쪽)

1920년대는 식민지 조선에 '문화', '연애', '개조' 등의 신조어가 유행했던 시기로 채만식은 여성의 외모를 무척 중요시했으며 신여성과의 자유연애를 꿈꾸었다 한다. 그럼에도 창졸간에 혼인해서 2남 1녀를 두었으나 부인과 금실은 소원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훗날 주변 사람들에게 "이게 어디 아버지가 며느리를 본 것이지, 아들이 장가를 간 것이냐,"고 털어놓는 대목에서도 가부장적 부모에 대한 불만이 잘 나타난다.

공 교수는 "채만식 문학은 '전통 가부장적 가정'과 '그릇된 자본주의 의식'을 혐오에 가까울 정도로 비판하고 있다"며 "소설 <탁류>에서 채만식의 작가 의식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인물로 초봉이 혼인 소식을 듣고 분노를 터뜨렸던 남승재와 계봉이, 그리고 미두장"을 꼽았다.

이어 공 교수는 "일제가 문화통치를 시작하던 1920년대는 '뭐니뭐니해도 머니(Money)가 최고'라는 말이 있듯 돈 중심 사회로 전환하던 시기로 채만식의 소설도 대부분 돈 때문에 딸을 팔거나 인간성을 파괴하는 군상들을 모티프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채만식이 마지막 선보인 작품도 고전을 윤색한 <심청전>이었다는 것.

"채만식도 친일작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그러나..."

공 교수는 "일제 식민지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일제의 부당한 식민통치를 끊임없이 비판하고, 고발하고, 증언했어야 했다"며 "스스로 일제에 편입한 부류도 있었으나,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가혹한 폭력과 검열로 적잖은 작가가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채만식이 본격적인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로 선언하고, 마지막 직장인 <조선일보>를 퇴사한 뒤 거주지를 가족과 함께 개성으로 옮긴 1936년은 만주사변(1931)을 시작으로 15년 전쟁이 파국으로 치닫는 변곡점을 형성한 중일전쟁(1937)을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공 교수는 "1936년은 황국식민화론(내선일체)과 대동아공영권, 전쟁동원령을 축으로 천황제 파시즘의 집단적 광기가 정점을 향해 치달으며, 시국에 적극적인 협력을 강요하는 창작 지침이 구체적인 수준으로 하달되던 시기로 상당수 작가가 친일로 들어서게 된다"고 덧붙였다. 

 채만식 문학관에 비치된 채만식 유작들
채만식 문학관에 비치된 채만식 유작들 조종안

공 교수는 "채만식도 친일작가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그러나 그의 친일 얘기가 나올 때마다 우려됐던 점은 <탁류>, <태평천하>, <레디메이드 인생> 등 뼈아픈 역사의식과 사회 문제점을 지적한 명작들과 일제 말 친일 작품을 싸잡아 부정하는 모습이었다."라고 당시 심정을 밝혔다.

이어 공 교수는 "친일을 평가할 때 중요한 기준은 주도적, 적극적이었는지 아니면 생계형이었는지, 훗날 참회와 반성이 뒤따랐는지 등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며 "당시 채만식의 복합적인 정황과 처지 즉 적빈여세, 금광 몰락, 신병, 실질적인 세 가정의 가장 노릇 등을 외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채만식도 사회주의 영향받았을 것"

공 교수는 수강생들과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채만식이 작가로 활동하던 당시 대중의 평가는 어땠냐?"는 질문에 공 교수는 "암울하고 억눌린 시대여서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문학공동체도 궁극적으로 사람 사는 동네인데, 교언영색이 부족하고 친교 범위가 좁았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채만식은 사회주의자였나?"라는 질문에는 "사회주의 책이 많이 발간되었던 1926~1929년까지는 채만식에게도 가장 중요했던 시기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용감한 투사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스타일이 어진 심성이었다고 할까, 소심한 성격이었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공종구 교수는 "모국어를 배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년, 남의 말 제대로 듣기까지는 50년 걸린다고 하는데, 두 시간 동안 진지하게 집중해서 듣는 수강생들을 보며 군산의 밝은 미래를 보았고,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은 것 같아 고마움도 느낀다"며 강의를 마쳤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군산학 #공종구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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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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