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조건 변화와 노동자 현실이 요구하는 산별노조

[왜 다시 산별노조인가⑥]

등록 2012.07.16 10:58수정 2012.07.1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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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금융노조·보건의료노조 등이 참여하고 있는 '산별노조연석회의'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는 '2012 노동 있는 민주주의와 노사관계개혁을 위한 연속기고 - 왜 다시 산별노조인가?' 연중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2012년 권력교체기, 한국 사회에서 노동 있는 민주주의 담론 확산과 산별노조운동 진전을 위한 실질적인 공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 자료와는 다르지만,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1977년 노조조직률은 25.4%였고, 조합원수는 약 95만 5천명이었다. 1974년부터 1978년까지 매년 조합원이 약 10만명 정도가 늘어난 결과다. 그러던 것이 1980년에 경제위기와 전두환정권의 대대적인 노조탄압으로 노조조직률은 그 전 해에 24.4%에서 약 21%로 3.4%포인트가 하락했고, 조합원수는 그 전 해에 108만 8천명에서 94만 8천명으로 14만명이 줄어들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전까지 전두환 정권 내내 노조조직률이 줄어들어 1986년에 16.8%까지 줄어들었다. 전두환 정권 하에서 무려 7.6%포인트가 줄어든 것이다. 1986년에 조합원수는 약 103만 6천명이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효과로 1987년에 23만여명, 1988년에 약 46만명, 1989년에 약 22만 5천명이라는 조합원 폭증이 있었다. 그 결과 1989년에 조직률은 약 19.8%로 증가하였고, 조합원수는 193만 2천여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그 이후 노조조직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져 2010년에는 급기야 9.8%로 줄어들어 한자릿수 조직률을 보이고 있다. 조합원수는 경제위기가 극심한 해였던 1998년에 1989년 이후 최저치인 140만 2천명을 기록하였고, 2010년 현재 164만 3천명을 기록하고 있다. 낮은 조직률에도 불구하고 조합원수가 는 것은 취업노동자수가 증가한 때문이다.

1989년 이후 1998년까지 조합원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든 것은 경제성장 둔화/산업구조재편 및 경제위기/인력구조조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하겠다. 

 한국의 노조조직률과 조합원 수
한국의 노조조직률과 조합원 수박하순

노조조직률만이 아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조합의 투쟁은 지속적으로 패배해 왔다. 1996년-1997년의 노동법 개악 반대투쟁에서 민주노총으로 조직된 노동조합들이 일정한 위력을 보여주었으나 1998년 경제위기 이후 그 위력도 눈에 띄게 축소되어 갔다. 파업일수는 현저히 감소하였으며, 실질임금인상률은 생산성증가율에 현저히 못 미쳤다. 반면에 기업들은 엄청난 이윤을 축적하였다. 노동조합의 힘이 현저히 약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왜 이렇게 부진한 결과를 낳았을까? 이는 경제적 조건이나 정부의 정책 그리고 기업의 변화에 노조운동이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라 해야 할 것이다. 아니 기업별 노조 관행에 익숙한 노동조합으로서는 이런 변화에  대응할 태세가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해야겠다. 우리로서는 노동자 내부의 단결을 강화하는 산별노조운동이 지지부진했던 것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노동조합 운동 환경에 어떤 변화가 초래되었던가? 그 변화는 왜 강력한 산별노조나 이에 기반한 총연맹 수준의 전 노동자적 대응이 아니었으면 대응이 불가능했는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노동조합 환경 변화 : 저성장궤도로의 진입과 자본축적 둔화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70년대 10%대 초반에서 최근 대체로 3-4%로 떨어졌다. 잠재성장률이 5%대 아래로 떨어진 결과다. 1970년대, 1980년대 초반에서 아이엠에프 위기 이전 시기, 2000년대의 시기를 거치면서 저성장궤도로 진입한 것이다.

 한국의 경제성장률
한국의 경제성장률박하순

또한 설비투자규모로 본 자본축적의 추세도 앞의 경제성장률 추세와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은 그래프 상 어디에서나 같은 수직선 길이는 같은 배수를 표시해 주는 log 스케일로 그린 아래 그래프를 보면 잘 나타나고 있는데 70년대, 80년대 초반에서 아이엠에프 위기 전의 시기, 아이엠에프 위기 이후 2000년대의 설비투자 증가율이 차이가 나고 있다. 아이엠에프 위기 이후 그래프 경사도는 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의 경사도에 비해 매우 완만하다. 1997년부터 줄어든 투자는 2004년에 들어서서야 위기 직전, 즉 1996년 수준의 설비투자 규모를 회복한다. 그 기간이 무려 8년이 걸린 것이다(경제위기 이후 투자부진이 진행된 상황은 1980년대 초반에도 있었다. 1980년 경제위기로 투자부진 현상이 나타나 위기 이전인 1979년의 실질 설비투자 규모를 회복한 것은 1984년에 이르러서였고, 5년이 걸린 셈이다. 또한 <그림 3>에서 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의 경사도는 70년대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 즉 한국경제는 몇 차례 위기를 겪으면서 투자증가율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설비투자증가는 신규 고용규모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는 바, 설비투자규모 증가의 규모로 보건대 신규 고용규모가 이전 시기의 신규 고용규모에 비해 월등히 크지는 않을 것임은 명확하다. 더구나 감가상각과 단위투자 당 고용 창출계수의 감소를 감안하면 갈수록 이전 시기에 비해 신규 고용규모가 더 줄어들 가능성마저 있다고 하겠다.

 실질 설비투자(1970-2010)(기준연도=2005)(단위: 10억 원)(주 : log 스케일 그래프)
실질 설비투자(1970-2010)(기준연도=2005)(단위: 10억 원)(주 : log 스케일 그래프)박하순

노동유연화와 노동자 내부의 분화

이런 경제성장률 저하와 자본축적 둔화는 노조의 개입이 없이 신자유주의적 정부나 자본의 시장논리에 맡겨둔다면 고용증가 속도를 늦출 것은 필지의 사실이라 하겠다.

이는 아래 그래프에 잘 나타나 있는데, 취업자의 증가추세선이 아이엠에프 위기 이후 한 계단 내려왔고, 증가추세도 이전보다 더 완만해졌다. 15세 이상 인구와 취업자 사이의 간극(=비경제활동인구 + 실업자)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고용률은 아이엠에프 위기 직전 최고치를 아직 못 넘어서고 있다. 위기 직후 고용률이 일정하게 회복되다가 그 이후로는 수평선을 형성하고 있고, 이번 금융위기를 맞이해서 약간 더 내려갔다.

 15세 이상인구/취업자/고용률(단위 : 천 명, %)
15세 이상인구/취업자/고용률(단위 : 천 명, %)박하순

정부는 이런 둔화된 고용증가에 발맞추어 지속적으로 노동 유연화를 가능케 할 노동법제를 개악하였고, 노동자를 형식적으로 자영업자로 탈바꿈시키는 각종 법제도를 도입하였다. 또한 그나마 법적 규제를 어기고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불법 탈법 기업에 대해서는 처벌을 미루거나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였다.

이런 정부의 정책은 성장률 둔화 및 자본축적 둔화와 결부되면서 사내하청 중소영세 비정규직과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양산하였다. 정규직 채용은 아이엠에프 위기 이후에는 거의 중단되다시피 하였다.

그 결과 기존에 조직된 대규모 재벌 사업장의 노동자와 미조직 중소 영세 사업장의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로의 분할이 이루어졌다. 이 분할에는 세대적 분할과 성적 분할이 중첩되어 있다고 해야겠다. 즉 전자는 경향적으로 중고령 남성 노동자인 경우가 많고 후자는 젊은 여성 노동자인 경우가 많다. 어떻든 이 후자의 노동자군은 기존 재벌대기업에 직접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내하청 파견 등의 형태로 고용되어 있어 기존에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들과 기업조직으로 보면 형식적으로는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근로조건 고용형태 기업조직의 측면에서 아이엠에프 경제위기 이후에 새로운 노동자군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별 노조의 관행을 지속시킨 기존 노조에다가 정부와 자본의 비협조 내지 탄압은 이런 신규 노동자의 조직화를 어렵게 하였고 이 둘 사이의 근로조건의 차이는 계속 심화되었다. 이들은 심지어 대립적인 갈등에 놓이게까지 되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노동자 민중과 자본 사이의 양극화이지만 노동자 내부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는 양극화의 일종이라 해야겠다.

결: 계급적 단결과 역량을 강화할 산별노조

서구에서 산별노조 조직화가 경제 상황 또는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한 대응이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19세기 후반까지 노동조합은 숙련공 중심의 직능노조였다. 그러던 것이 독점자본주의 아래에서 반숙련/미숙련 노동자가 대거 등장하면서 영국을 비롯하여 새 노조운동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계급적 단결을 강화할 수 있는 산별노조 또는 일반노조 운동이었다. 직능 또는 숙련 여부와 관계없이 한 산업 또한 한 지역에 있는 모든 노동자들이 단결하자는 취지였다. 그래서 노동자 내부의 분할을 극복하고 크게 뭉쳐 당해 사회의 모순을 지양하자는 운동이었다.

오늘날 이런 산별노조 정신을 한국사회에서 응용하면 어떻게 될까? 한국 사회에 직능 및 숙련 여부별 차이가 어느 정도 있고 이에 따른 조직 분화가 어느 정도는 존재한다. 이것은 극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노동자 내부의 분할의 핵심은 앞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독점 대재벌 또는 공기업 산하 정규직과 중소 영세 하청 산하의 저임금 비정규직 사이의 분할이라 해야겠다. 그래서 산별노조의 핵심은 이제까지의 기업별 노조의 관행을 깨고 실질적으로 이 두 노동자군의 계급적 단결을 이룩할 수 있는 실천이라 해야겠다.

그런데 이 두 노동자군의 분할에는 앞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경제위기 또는 경제 상황의 변화, 법제도 개악 및 위법한 실천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별 노조의 실천으로 이런 것에 대처할 수 있겠는가? 기업별 노조의 의제에도 오르지 않고 교섭틀도 없으며 이를 해결할만한 힘도 없는 것이다. 강력한 계급적 단결을 가능하게 할 산별노조 또는 이에 기반한 총연맹의 정치적 사회적 노조운동이 있어야만 대응이 가능한 사안들인 것이다.

한편 전자의 노동자군으로서는 현재의 지위가 보장만 된다면 기업별 노조 관행에 안주하고 싶은 생각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재의 노동자 분할이 숙련여부에 따른 분할도 아니어서 전자의 노동자군이 누리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근로조건은 지속적으로 공격을 받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그 양호한 근로조건은 중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특수한 조건이 조성되어 일정기간에만 존속이 가능하고 이 조건이 사라지면 곧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한, 이른바 "상황적 지대"라 해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의 활용, 혹은 세계적으로는 중국 인도 등 주변부 노동자의 지속적인 대거 진출에 의해 이내 허물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더구나 현재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대공황은 아니더라도 저성장 및 금융위기가 빈발할 장기불황이 예고되어 있는 시기라는 것도 고려해야 해야 할 것이다.

아래 그래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몇 나라의 노조조직률이다. 자본주의 황금기인 60년대 초반부터 2009년까지의 조직률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야기하면서 글을 마치기로 하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주요국의 노조조직률(자료 : OECD)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주요국의 노조조직률(자료 : OECD)박하순

우선, 조직률 격차가 크다. 여전히 스웨덴처럼 60%대 후반을 나타내는 나라도 있고(표에는 없지만 덴마크, 핀란드 등도 60-70% 조직률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미국, 일본처럼 10%대의 조직률을 나타내는 나라도 있다.

둘째, 조직률의 변화는 다양하다. 60년대 초반부터 조직률이 하락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을 제외하면 70년대 말-80년대 초까지는 대체로 조직률이 상승하고 있다. 이 시기  이후 조직률의 변화는 각국마다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호주나 이탈리아 같은 나라는 미국과 일본처럼 조직률이 하락하지만, 스웨덴, 벨기에, 캐나다, 독일처럼 굳건하게 버티거나 오히려 조직률이 상승하는 나라로 나뉜다. 한국도 80년대 초반 경제위기와 전두환정권의 폭압적인 노조탄합으로 조직률이 하락했지만 1987년 이후 노동자대투쟁의 효과로 조직률이 상승하기도 한다. 한편 스웨덴, 벨기에, 캐나다, 독일도 90년대 초중반 이후 조직률이 하락하지만 조직률 하락 속도에서는 차이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 벨기에처럼 다시 복원력을 보여주는 나라도 있다. 한편 90년대 중반 이후로는 벨기에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조직률이 하락하고 있기는 한데, 조직률이 하락하는 나라들 중에서도 조직률 하락이 큰 나라와 그렇지 않는 캐나다와 이탈리아같은 나라도 있다.

또한 경제위기에는 반드시 조직률이 하락한다는 속설도 정확히 들어맞은 얘기는 아니다. 예를 들어 스웨덴의 경우 1990년과 1993년 사이에 커다란 경제위기를 겪었으나, 1990년 조직률이 80%에서 1993년에는 83.9%로 오히려 상승했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80%대의 조직률을 유지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결론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60년대 초반 이후 지속적으로 조직률이 하락하고 있고, 조직률도 매우 낮은 미국이나 일본이 노조조직률 변화의 전형적인 사례가 결코 아니고, 오히려 예외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또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대체로 조직률이 하락하고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고 조직률 하락 시기나 정도도 나라마다 다 다르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경제위기에는 반드시 조직률이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경제적 조건의 변화에 대한 노조의 대응 여하에 따라서는 그 결과가 일정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계급적 단결과 노동자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제 2 산별노조운동을 다시 전개할 필요가 있다. 이번 7-8월에 전개될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의 투쟁이 잘 된다면 좋은 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노동자운동연구소 소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노동자운동연구소 소장입니다.
#산별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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