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서울 상수동 희망식당 2호점에서 콜텍 해고노동자 임재춘씨가 닭곰탕을 끓이고 있다.
최지용
어른 몸만한 큰 들통 앞에서 삶은 닭을 건져낸 임씨가 국자로 능숙하게 기름을 떠냈다. 한쪽에는 그가 잘게 찢어놓은 살코기가 쌓여 있었다. 국그릇에 살코기 몇 점을 넣고 기름을 떠낸 맑은 국물을 부으니 이날의 메뉴인 닭곰탕이 완성됐다. 뜨끈뜨끈한 곰탕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 불 위에서는 계속 국이 펄펄 끓었고 그도 땀을 뻘뻘 흘렸다. 연두색 땡땡이 앞치마가 제법 잘 어울린다. 불쑥 주방에 들어가 인터뷰 이야기를 꺼내자 그가 껄껄 웃는다.
"아 무슨 인터뷰요. 나 말고 저 아가 말 더 잘하는데…. 같이 할까요?" 임씨는 주방 한쪽에서 일하던 '순대'(닉네임)를 가리켰다. 희망식당 2호점 출발부터 임씨와 함께한 동료다. 일주일에 한 번 문을 열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을 돕는 희망식당에서 매번 함께 일하고 있다. 살짝 빼기는 했지만 임씨가 인터뷰를 거절한 건 아니다. 그는 국자를 휘휘 저으며 "좀 있다 한가해지면 하자"고 말했다. 그는 아까 건져놓은 닭이 식었는지 확인하고 다시 열심히 찢기 시작했다.
희망식당 2호점은 이날도 '대박'이었다. 밥값은 단돈 5000원이지만 함께 식사한 사람 숫자보다 더 많은 돈을 내고도 그냥 가는 사람이 자주 눈에 띄었다. 점심시간 내내 빈자리가 없었고 종종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지난 4월 상도역에 1호점이 문을 열고 상수역의 2호점, 충북 청주에 3호점까지 거침없이 확장 중인 희망식당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1호점에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신동기씨가, 3호점에는 유성기업 해고노동자 김풍년씨가 셰프를 맡고 있다.
손님들의 발걸음이 뜸해졌을 시간, 이날 희망식당 담당자들의 늦은 점심이 준비되는 동안 임재춘씨와 마주 앉았다. 그는 다른 희망식당에 가봤는지 묻는 질문에 "안 가봤다. 보통 월요일에 희망식당이 끝나면 바로 내려가서 일요일 저녁에 올라온다"며 "1호점에는 가볼 시간이 없었고, 3호점에도 가보고는 싶지만 가면 이것저것 참견하게 될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 식당 주방장마다 나름 자긍심이 있으니까"라고 덧붙인다. 이제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편안한 모습이다.
임씨가 일했던 콜텍악기는 대전에 있다. 인천에서 전자악기를 생산하는 '콜트악기'의 자회사로 통기타를 만든다. 지난 2007년 콜트콜택악기는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고 30년 동안 일한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노동자들은 싸웠고 지난 2009년 고등법원은 부당해고 판결을 하지만 이는 2년 뒤 대법원에서 뒤집어졌다. 대법원 판결 당시가 투쟁 1848일째, 오는 25일이면 이들의 복직 투쟁은 2000일을 맞는다. 그는 그렇게 서울과 대전을 오가고 있다. 임씨에게 지금까지 싸우고, 앞으로도 싸우려는 이유를 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되든 원직복직을 해서 몇 개월이라도, 하루라도 일을 해야겠다는 심정입니다. 사실 이렇게 투쟁하다가 합의하면 뭐합니까. 기륭전자도 그렇고, 한진중공업도 합의가 제대로 이행된 게 없잖아요. 그래서 단순히 합의하는 게 목표가 아니에요. 진짜로 복직해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너무나 억울한 심정을 풀 수 있을 거 같아요. 단 하루라도 우리가 일했던 그곳에서 다시 일하는 꿈을 가지고 투쟁하는 겁니다."희망식당, 그를 웃게 만든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