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병에 쓰러져도, 일본인들이 꼭 보는 이것

폭염 속에 종교행사처럼 진행되는 교토 기온마츠리 참관기①

등록 2012.07.19 10:11수정 2012.07.1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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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기온마츠리1 수은주가 36도나 올라갔던 7월 17일 낮 기온마츠리 현장 교토 오이케도오리에서

기온마츠리1 수은주가 36도나 올라갔던 7월 17일 낮 기온마츠리 현장 교토 오이케도오리에서 ⓒ 이윤옥


마츠리가 진행되고 있는 오이케도오리는 아스팔트 위로 쏟아지는 태양빛이 날달걀을 그 자리에서 익혀 버릴 듯 뜨겁고 강렬했다. 2009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기온마츠리 야마보코순행(山鉾巡行, 가마행렬) 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7월의 폭염만큼이나 뜨거운 일본인들의 기온마츠리 열기에 또다시 그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뙤약볕에 미동도 않고 몇 시간씩 기온마츠리를 지켜보는 일본인 그들은 누구인가?

2012년 7월 17일 오전 9시 교토 가라스마도오리에서 시작한 가마행렬은 오후 1시 교토시청이 있는 오이케도오리를 통과하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낮 최고기온 36.4도를 기록할 만큼 맹위를 떨친 폭염 속에 장장 4시간 동안 이어진 가마행렬을 보러 나온 사람들중 교토시 소방국에 따르면 13명이 일사병으로 병원에 실려 갔을 정도로 불볕더위 속에서 행사는 이어졌다.

주최 측에서는 연신 "일사병이 우려되므로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너무 뜨거운 햇볕에 노출되지 마라"고 방송을 하고 있었지만 가마행렬이 지나가는 중앙도로 연변에는 한 뼘의 그늘막도 없음에도 관람객들은 미동도 않고 가마행렬이 지나갈 때마다 환호와 손뼉을 쳐 댔다. 대관절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걸까?

후쿠오카에서 8명이 1박 2일 관광으로 기온마츠리 구경을 왔다는 올해 80살의 이하라도시코 씨는 땡볕 속의 가마행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기온 마츠리를 여러 번 볼 기회가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가마행렬을 보니 감격스럽다"라면서 가마가 지나갈 때마다 "간바레(힘내요), 간바레(힘내요)"라며 응원을 잊지 않았다.
  
a 이하라도시코 후쿠오카에서 기온마츠리를 보러온 이하라도시코(80살) 씨와 함께

이하라도시코 후쿠오카에서 기온마츠리를 보러온 이하라도시코(80살) 씨와 함께 ⓒ 이윤옥



a 나기나타호코 첫번째 가마인 나기나타호코의 행렬 장면

나기나타호코 첫번째 가마인 나기나타호코의 행렬 장면 ⓒ 이윤옥


2년 전 기온마츠리 취재 때 더위를 먹어 고생한 적이 있어 이번에는 하루 전날 호텔 냉동고에 얼음물 서너 병을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물수건 몇 개를 꽁꽁 얼려가지고 갔다. 그뿐만 아니라 좀 더 가까이에서 마츠리를 보려고 1인당 3100엔(4만4700원)이나 하는 마츠리 관람석을 예약하였지만 배정받은 좌석은 운 나쁘게 한 뼘의 솔개그늘도 없는 5블록 뙤약볕이었다.

a 기온마츠리 좌석권 뙤약볕에 의자 하나 달랑 놓고 3,100엔(47,000원)이나 받는 관람석은 한국판 봉이 김선달 같다. (사진은 좌석권)

기온마츠리 좌석권 뙤약볕에 의자 하나 달랑 놓고 3,100엔(47,000원)이나 받는 관람석은 한국판 봉이 김선달 같다. (사진은 좌석권) ⓒ 이윤옥


2012 기온마츠리 가마행렬(가마보코순행)이 시작되는 가라스마도오리에서 9시에 출발한 형형색색의 가마행렬은 예정대로라면 10시 30분에 필자가 표를 예약한 오이케도오리를 통과하여 11시 35분에 32기의 가마가 모두 지나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무더위 탓인지 가마행렬은 예정시간보다 1시간 반이나 늦은 오후 1시 무렵이 되어서야 모든 일정이 막을 내렸다. 폭염 속에서 하마터면 일사병에 쓰러질 뻔한 3시간이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기온마츠리 관광객 때문에 교토시내에 방을 잡지 못한 탓에 인근도시인 오사카에 묵은 필자로서는 아침 7시 30분에 호텔을 나섰으므로 무려 5시간 이상이나 마츠리가 진행되는 폭염 속의 아스팔트 위에서 보낸 셈이다.


구경꾼이나 마츠리 참가자에게나 인내의 한계를 넘어 일사병을 각오하고 치러지는 1100여 년 전통의 교토 기온마츠리는 대관절 21세기 일본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왜 일본인들은 이러한 마츠리에 열광하는지를 2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a 가마행렬표 행사 주최측인 교토시관광협회에서 나눠주는 가마행렬표에 따르면 지정된 코스대로 모두 4시간 동안 행렬이 이뤄지는데 일대 장관이다.

가마행렬표 행사 주최측인 교토시관광협회에서 나눠주는 가마행렬표에 따르면 지정된 코스대로 모두 4시간 동안 행렬이 이뤄지는데 일대 장관이다. ⓒ 이윤옥


화려한 축제 행렬에 숨은 '서글픈' 유래


음수사원(飮水思源), 곧 물을 마실 때는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라는 말이 있다. 중국 북주(北周, 556-581) 시대의 문인 유신(庾信, 513-581)의 <유자산집> 7권 <징주곡(徵周曲)>에 나오는 말로, 사물을 볼 때는 그 유래와 근원을 곱씹으라는 말이다. 뜨거운 땡볕 아래서 기온마츠리 가마행렬을 지켜보면서 필자의 뇌리에서는 이 말이 줄곧 떠나지 않았다. 기온마츠리의 유래 때문이었다.

교토의 3대 마츠리(京都三大祭)라고 하면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葵祭), 10월 22일의 지다이 마츠리(時代祭)와 더불어 7월 17일의 기온마츠리(祇園祭)를 꼽는다. 이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만 권해달라고 하면 필자는 단연 기온마츠리를 꼽고 싶다.

역사적으로나 규모 그리고 짜임새와 볼거리 면에서 기온마츠리는 다른 2개의 마츠리를 능가한다. 아오이마츠리와 지다이마츠리가 단순한 가장행렬 성격을 지녔다면 기온마츠리는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이 있고 가마꾼의 동작과 함성이 있는 등 동적(動的)인 면에서 활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149 년 전인 서기 863년 당시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에는 전염병이 유행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오늘날과 같이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 전염병의 발생은 위정자에게 크나큰 재난이었으며 백성의 처지에서도 더 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따라서 조정에서는 전염병이 창궐한 까닭을 역신(疫神)의 노여움 때문으로 보고 그 노여움을 풀 방법을 찾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당시 일본 전국의 행정구역 66개를 상징하는 가마 66개를 만들어 역병(疫病)을 달래는 '어령회(御靈會)'를 지낸 것이 오늘날의 기온마츠리(祈園祭)의 유래이다. 흥미롭게도 이 어령회를 주관하는 신사는 야사카신사[명치 이전에는 기온사(祈園社)]이며 이 신사의 제신이 신라의 우두천왕이란 기록에 눈이 크게 떠진다. 이에 대한 관한 기록은 야사카신사가 1870년에 출판한 <야사카사 구기집록(八坂社旧記集録)>에 상세히 나와 있다.

a 야사카사 구기집록  야사카사 구기집록 상권(八坂社?記集?. 上?) 신라 우두천왕 관련 기록

야사카사 구기집록 야사카사 구기집록 상권(八坂社?記集?. 上?) 신라 우두천왕 관련 기록 ⓒ 이윤옥


한국에서 기원된 신라(新羅)의 신 우두천왕(牛頭天王, 고즈덴노, 일명 스사노오미코토)은 기온사(祇園社, 현 야사카신사)의 제신(祭神)으로 기온천신(祇園天神)으로 불리며 헤이안시대(平安時代,794-1192)부터 역병을 쫓아내는 신으로 숭배되어왔다.

우두천왕, 곧 스사노미코토는 <일본서기> 신대(神代) 14조에 '소잔명존(素盞鳴尊)'으로 나오며 우두천왕을 모시는 신사는 일본 전역에 3053사로, 총본사는 교토 히가시야마쿠 기온쵸(東山区祇園町)에 있다. 이곳에서 기온마츠리의 모든 것을 관장한다.

a 시죠가와라마치 거리 마츠리 참가자로 넘쳐나는 기온마츠리가 열리는 야사카신사 앞 시죠가와라마치 거리

시죠가와라마치 거리 마츠리 참가자로 넘쳐나는 기온마츠리가 열리는 야사카신사 앞 시죠가와라마치 거리 ⓒ 이윤옥



a 기온마츠리의 전야제의 유카타 젊은이 기온마츠리의 전야제를 즐기러 나온 유카타 차림의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거리

기온마츠리의 전야제의 유카타 젊은이 기온마츠리의 전야제를 즐기러 나온 유카타 차림의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거리 ⓒ 이윤옥


야사카신사 측의 기록 말고도 일본의 많은 사서(史書)들이 밝히고 있는 기온마츠리와 한반도와의 밀접한 이야기. 그러나 안내책자에는 소개되고 있지 않다. 교토시관광협회에서 만든 76쪽짜리 영어와 일본어로된 '기온제(祈園祭)' 안내책자에는 "역병의 유행으로 신천원(神泉苑)에서 어령회(御靈會)를 시작했다"라는 1줄짜리 설명만 있을 뿐이다.

서기 863년 전염병을 일으킨 역신(신라신)을 달래려고 시작한 기온마츠리는 그 뒤 오닌의 난(1467~77년)때 잠시 중단되었으나 1500년에 민중의 손으로 다시 재개되었는데 이때 가마행렬은 36기였다.

각 가마는 화려한 장식품으로 장식하는데 중국과 페르샤, 벨기에 등에서 들어온 태피스트리(색실로 그림을 나타낸 장식용 직물. 벽걸이로 쓰임) 등으로 인해 가마장식은 갈수록 화려해진다. 이 때문에 마츠리 때 쓰이는 가마를 '움직이는 미술관'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2009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록... '관광이벤트화'는 문제  

a  야사카신사에 있는 기온마츠리 행사에 사용되는 가마 보관소

야사카신사에 있는 기온마츠리 행사에 사용되는 가마 보관소 ⓒ 이윤옥


기온마츠리의 꽃인 화려한 가마는 마츠리가 끝난 뒤에는 이듬해까지 잘 보관해두어야 하는데 1708년 교토의 대화재로 키쿠스이호코(菊水鉾) 등 많은 가마가 불에 타버렸다. 게다가 1943년 태평양전쟁 때는 전쟁으로 4년간 가마행렬이 중단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온제를 사랑하는 시민들과 협회가 주축이 되어 꾸준히 전통을 살린 이래 '교토기온제 야마보코행렬'은 2009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으며 올해는 모두 32기의 가마행렬을 선보였다.

특히 140년 만에 33번째 가마행렬에 동참한 오오후네호코(大船鉾)는 500년 역사를 지닌 가마로 1864년에 화재로 불탄 이래 지금껏 가마행렬에 참여하지 못했다. 아직 온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일단 33번째 가마행렬에 합류했으며 하루빨리 소실 전 모습으로 복원되길 바라는 뜻에서 이 가마가 나타나자 길가에 모인 관객들은 크게 손뼉을 치며 열렬한 응원을 했다.

"일본의 마츠리는 지역 경제의 부흥과 밀접하다. 따라서 신사(神社)에서는 단절된 옛 마츠리를 발굴하여 새로운 형태의 마츠리로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라고 민속학자 스가타(菅田正昭)씨가 말하듯이 전염병의 역신을 달래려고 시작한 기온마츠리가 본래의 목적이 퇴색된 채 지역관광협회나 상인협회의 후원을 받아 점점 이벤트화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인 것 같다. 

기온마츠리는 7월 1일부터 31일까지 약 한 달간 진행되는데, 일반인들이 볼 수 있는 가장 볼만한 행사는 16일 밤의 전야제와 17일 낮의 가마행렬이다. 화려하게 장식한 가마를 직접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전야제와 기온마츠리에 등장하는 32기 가마의 이모저모에 대한 이야기는 기온마츠리 참관기 두 번째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a 유카타 젊은이들와 필자 7월 16일 전야제에 곱게 차려입은 유카타 차림의 여성들과 필자

유카타 젊은이들와 필자 7월 16일 전야제에 곱게 차려입은 유카타 차림의 여성들과 필자 ⓒ 이윤옥



a 기온마츠리 전야제의 가마 17일 가마행렬에 쓰일 가마들이 전야제에 등불을 켜고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기온마츠리 전야제의 가마 17일 가마행렬에 쓰일 가마들이 전야제에 등불을 켜고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 이윤옥

덧붙이는 글 | <대자보>에도 보냄


덧붙이는 글 <대자보>에도 보냄
#기온마츠리 #마츠리 #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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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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