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위한 친절한 등산책> 겉표지
시공사
2010년 8월, '북한산계곡~국녕사'로 산행할 때의 이야기다. 이 구간은 산행의 맛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무척 짧은 구간이다. 그럼에도 이 길을 택한 이유는 북한산 케이블카 설치에 대해 등산객들의 의견을 묻는 사이 산행을 시작하기엔 늦은 시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짧게라도 산행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자 가게 된 것이다.
이 구간을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산행 중 누군가를 만남이 반가울 정도로 등산객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곳이다. 평일 오후 3시 무렵이라 그런지 그날도 산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하여 한참이 지나도 사람 하나 만나지 못하는 산행을 하고 있었다. 반절 쯤 갔을까.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 셋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이 자꾸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나를 끊임없이 의식하며 탐색하고 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다지 어려운 길도 아닌데 한참 팔팔한 나이인 그들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걷거나 자주 쉬었다. 때문에 뒤돌아 뛰든 계속 가든 그들과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끌어도 그들은 나와 일정 거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안 보는 척 하지만 몰래 훔쳐보고 있음이 사진을 찍는 척 그들의 동향을 살피는 내게 계속 감지되었다.
30여 분간을 전전긍긍하다가 국녕사 신도로 보이는 전혀 모르는 한 아주머니를 아는 체 하며 묻어 되돌아오는 것으로 그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날의 섬뜩함은 한동안 산에 가지 못하게 했다.
사람 많이 다니는 구간으로 '안전한 산행'해야이후 혼자 산행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여자 등산객들이 보이면 어색함을 누르고 다가가 그날의 경험을 들려주곤 한다. 조심할 필요성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조심하고 미리 대비해서 나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나처럼 섬뜩한 경험을 했다는 여자 등산객들을 여럿 만났다. 그들의 이야길 들으며 그날 내가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난, 매여 있지 않고 자유롭게 일을 하기 때문에 평일에 시간이 날 때도 많다. 이런지라 평일에, 혼자 산행을 할 때가 많다. 사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혼자 산행하는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난 그들에게 쓸데없는 걱정 사서 한다며 웃곤 했었다. 그런데 막상 겪고 나니 그들의 염려가 공연한 노파심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①혼자 산행 시 사람들이 늘 많이 다니는 구간만 갈 것 ②금반지 같은 장신구는 실수로라도 절대 지니지 말 것 ③낙상 등의 위험이 있는 능선 산행은 절대 하지 말 것 ④어떤 일이 있어도, 아주 조금이라도 등산로를 절대 벗어나지 말 것 ⑤사람의 통행이 많은 시간에만 산행할 것 등과 같은 나름의 기준을 세워놓고 혼자 산행을 하고 있다.
남자들의 단순한 호기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지나치게 민감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자로서 느끼는 것은 일상에서처럼 산에서도 여자들이 훨씬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말이다. 게다가 생리 문제 등 여성들만 신경 써야 하는 것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