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부터 수첩에 깨알 기록...
박지원, 무죄입증 승부수 던졌나

[진단] 버티던 박지원 전격출두, 왜?

등록 2012.07.31 19:17수정 2012.08.01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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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은 뒤 1일 새벽 귀가하고 있다.
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은 뒤 1일 새벽 귀가하고 있다. 남소연

저축은행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박지원(70)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31일 전격 검찰에 자진 출두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2시57분경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사 앞에 도착했다. 이에 앞선 오후 2시 35분경에는 우원식 원내대변인이 그의 검찰출석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우원식 원내대변인을 통해 "검찰 출석과 관련해 당의 입장도 완강하고 저도 있지도 않은 사실에 대해 조사를 받는 게 억울하지만 당과 여야 동료 의원들에게 부담을 드리기 싫었다"며 "시급한 민생현안 처리를 위해 8월 민생국회가 필요한데 제 문제로 인해 실종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출두의 변을 밝혔다.

이어 박 원내대표는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내곡동 사저 특검 등 여야 19대 국회 개원 합의사항이 지켜져야 하고,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차질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법원에서 체포영장 청구에 대한 국회의 동의요구가 있어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검찰에 출석해 저의 입장과 결백을 설명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필리버스터 등 검찰 공작 굴하지 않겠다던 박지원, 왜?

하루 전날인 30일, 검찰이 박 원내대표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한 뒤에도 민주통합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체포동의안 처리를 막겠다"며 "검찰의 수사는 표적, 물 타기, 끼워 넣기 수사이기 때문에 검찰의 의도대로 응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모았다.

이해찬 대표는 "내 명예와 당의 명운을 걸고 검찰에 당당히 맞서 싸우겠다"며 "40년간 민주화 운동을 해오고 나라를 바로잡겠다고 살아온 내가 검찰 공작에 굴해 우리 원내대표를 잡아가는 것을 두 눈 뜨고 보겠냐"고 주장했다. 박 원내대표도 "나는 그런 일(저축은행으로부터의 뇌물 수수)을 하지 않았다"며 "다시 한 번 결백을 주장한다, 나를 믿어 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민주통합당은 필리버스터 등 당력을 총동원해 국회 본회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박 원내대표가 이날 전격 검찰에 출두함에 따라 그가 왜 갑자기 이런 결정을 하게 됐는지 그 배경을 둘러싸고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선 검찰은 박 원내대표가 저축은행으로부터 모두 8000만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다고 보고,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해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원내대표에 대한 체포영장에는 세 가지 혐의 사실을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 지난 2007년 가을 임석(50·구속기소)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3000만 원을, ▲ 2008년 3월, ▲ 2010년 6월 전남 목포에서 오문철(59·구속기소) 보해저축은행 대표로부터 각각 2000만 원과 3000만 원을 수수했다는 혐의다.


정치권 일각에는 박 원내대표에 대해 정치자금법은 물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나 알선수뢰 혐의를 적용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내용은 그와 다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치자금법을 제외한 다른 법률 위반을 특정해서 규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 박 원내대표에게 검찰이 특정범죄가중철벌법상 알선수재 혹은 알선수뢰 혐의를 적용했다면 뇌물죄가 적용돼 구속을 피할 수 없게 되지만, 그것이 아닐 경우에는 재판 과정에서 얼마든지 무죄를 입증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실제 박 원내대표는 전격적인 검찰 출두를 앞두고 당내 의원들과 숙의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이번 재판을 통해 충분히 무죄를 입증할 수 있다고 설파한 것으로 전해진다. 차일피일 검찰수사를 피하느니 차라리 정면대응으로 출구전략을 세웠다는 게다. 그와 함께 이번 사건을 준비해온 한 민주통합당의 고위 관계자는 "검찰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반드시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전했다.

박 원내대표가 이런 자신감을 갖게 된 배경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2003년부터 깨알같은 수첩 기록... 무죄 입증 가능하다 본 듯

 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검찰 소환에 불응키로 한 지난 1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다이어리를 펼쳐 스케줄을 확인하고 있다. 박 원내대표가 늘 휴대하는 조그만 수첩에는 정보와 일정, 메모, 단상 등이 깨알같은 글씨로 촘촘히 적혀 있다. 틈날 때마다 메모를 잊지 않는 박 의원의 이 '수첩' 속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박 원내대표의 정보력이 나온다고 주변에선 말한다.
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검찰 소환에 불응키로 한 지난 1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다이어리를 펼쳐 스케줄을 확인하고 있다. 박 원내대표가 늘 휴대하는 조그만 수첩에는 정보와 일정, 메모, 단상 등이 깨알같은 글씨로 촘촘히 적혀 있다. 틈날 때마다 메모를 잊지 않는 박 의원의 이 '수첩' 속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박 원내대표의 정보력이 나온다고 주변에선 말한다. 남소연

민주통합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박 원내대표가 왜 이렇게 자신감을 갖고 전격 검찰에 출두할 수 있었는지 그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박 원내대표는 김대중 정부 이후 청와대를 나오면서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수첩 내용을 삭제했다. 그러나 이내 박 원내대표는 이를 무척 후회했다. 김 전 대통령과의 내밀한 대화 등은 사실상 '역사기록물'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기록들을 전부 삭제한 것만으로도 상당히 아쉬워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 원내대표는 지난 2003년부터 아주 꼼꼼하게 자신과 관련된 내용을 수첩에 깨알같이 기록했다고 한다. 이번 체포영장에 담긴 혐의 내용이 모두 2007년, 2008년, 2010년으로 최장 5년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는 자신의 수첩기록과 대조해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는 게다.

이 수첩 속의 사실들과 대조할 때, 검찰이 박 원내대표에게 혐의사실이라고 적시한 내용들을 충분히 반박할 수 있고 무죄를 입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 그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박 원내대표가 전격 검찰출두를 결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박 원내대표가 지난 19일부터 세 차례 이어진 검찰의 출석요구에 불응하면서 체포영장을 가져오면 직접 출석하겠다고 검찰을 압박한 것도 사실은 영장 내용을 보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동반경을 정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

박 원내대표가 이날 첫 검찰조사에서 얼마나 혐의사실을 반박하게 될지, 검찰이 새로운 사실을 적시하게 될지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도 과도하게 '박지원 사건'을 엮었다가는 되레 정치적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돼, 향후 박 원내대표에 대한 수사가 어떻게 귀결될지 주목된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대선을 앞둔 시기에 제1야당 원내대표를 소환하는 것은 부당한 정치개입이라고 생각해 당에서 소환을 거부하도록 건의했지만 박 원내대표 스스로 불체포 특권 뒤에 숨는 것은 비겁하다"며 "죄가 없다면 당당하게 조사 받으라는 국민들의 얘기가 있고, 대선에도 악영향이 되는 상황이 지속돼 박 원내대표에게 크게 부담이 된 것 같다"며 출석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일단 환영...특권 내려놓는 국회 쇄신 계속 돼야

박지원 원내대표를 앞세워 '방탄국회'를 열려고 한다며 민주통합당을 압박했던 새누리당은 일단 박 원내대표의 자진 출두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홍일표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박지원 원내대표의 검찰 자진 출석은 뒤늦은 감이 있지만 큰 결단을 내렸다고 평가한다"며 "앞으로 우리 국회가 법을 지키고 특권을 내려놓는 쇄신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여야가 더욱 노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검은색 정장에 넥타이를 착용하지 않은 수수한 차림으로 검찰에 출석했으며, 검찰청사에는 민주통합당의 이춘석, 박범계, 송호창 등 법조인 출신 의원 등이 동행했다. 박 원내대표에 대한 검찰수사는 이날 밤 늦게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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