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 겉표지
교양인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셨다. 이른바 그 당시의 '공산'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로 치우친 건 아니었다. 그저 있는 것을 족하게 여기도록 했다. 다만 많이 가진 자는 없는 자들에게 나눠줄 것을 요청했다. 자발적인 부의 나눔이었다.
'공산'을 넘은 '공산주의'는 이념이자 이상향이다. 그것은 실행을 뒷받침할 때 현실 공산주의 국가를 태동시킨다. 왕성한 공산주의 국가를 유지했던 동유럽 국가들이 실제 그랬다.
사실 전 국민이 함께 벌고 함께 나눠 쓰자는 데 뭐가 나쁘겠는가. 하지만 사회 통제 시스템과 배분 시스템은 호락호락한 게 아니다. 지배 세력이 타락하지 않는다면 괜찮겠지만, 인간은 언제나 자아도취에 취약할 뿐이다.
북한만 보더라도 확실히 알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북한은 모든 제도를 공산주의에 맞췄다. 토지도 건물도 생산물도 국가에 귀속시켰고, 함께 벌고 함께 나눠쓰도록 했다. 그에 비해 남한은 각 개인에게 토지를 배분했고, 개인이 땀 흘려 일한 만큼 먹고 살도록 했다. 출발은 북한 경제가 앞섰지만 시간이 갈수록 남한이 앞서고 말았다. 지배세력의 타락, 백성들을 향한 억압체제가 그토록 힘든 삶을 연명케 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의 시작과 끝, 여기 담겨 있습니다로버트 서비스의 <코뮤니스트>는 공산주의 기원에서부터 실험과 도약, 확산과 변형, 그리고 종언을 고한 '공산주의 승리와 실패의 세계사'를 담고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이전에 조짐을 보인 공산주의 태동에서부터 미국의 공산주의 혁명, 지하정당에서 대중정당으로 발돋움한 서유럽 공산주의 국가, 그리고 1989년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의 도미노 붕괴 현상까지 드러내고 있다.
"볼셰비키는 새 국가의 질서를 잡기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 없이 권력을 장악했다. 그들은 혁명을 수행한 뒤 뒤늦게 정책을 고안했다. 10월 혁명의 첫 몇 주 동안 그들은 권위를 확립하고 기본 정책을 발표하는데 집중했다. 레닌은 재빨리 토지령을 반포했다. 토지령은 왕실과 교회와 귀족들의 토지를 보상 없이 수용하여 농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본문 121쪽)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가들에 관한 모습을 그린 것이다.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귀족과 지주들을 자기 집에서 몰아낼 뿐만 아니라 지식층들을 배에다 실어 추방했다고 한다. 중앙 당 지도부는 거대한 의식을 조직하고 국가 축전을 개최해 국민들의 마음을 얻고자 했다 한다. 물론 레닌이나 스탈린은 '러시아의 여러 민족들에게 문화적인 자기표현을 허용해야 한다'고 고집했다고 한다. 그만큼 여러 공산주의 유형들이 표출되고 있었음을 보여준 예라 할 수 있다. 러시아의 공산주의 체제가 운명을 다한 것도 바로 그같은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해석한다.
중국은 어떠할까. 중국의 공산주의 체제는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왜 중국은 아직까지 견고할까. 이 책은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으로 그걸 설명한다. 마오쩌둥이 죽기 전 10년부터 중국은 혼란의 시대였지만, 덩샤오핑이 실권을 잡으면서 개혁개방경제가 탄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기반으로 지금껏 세계경제대국을 이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길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시장 사회주의' 사상-예를 들어 1920년대의 소련, 1968년의 체코슬로바키아, 1970년대의 헝가리-은 국가 소유 경제 부분보다 더 빨리 성장하는 자본주의 부문을 가진 시스템을 제안해 본 적이 없다. 덩샤오핑 이래 중국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중국적 특성을 지닌 공산주의'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붉은색 천은 이제 현실을 가리지 못했다. 공산주의 질서는 엄격한 정치이데올로기적 통제 수단으로만 유지되었다. 경제사회적 구성 요소는 바람결에 흩어져버렸다."(본문 694쪽)시작은 같다고 하더라도 엇갈린 운명에 놓은 공산주의공산주의는 처음 출발이 같다 할지라도 그 과정은 달랐고, 지금은 엇갈린 운명들을 고하고 있다. 설사 그 체제가 살아남았다 할지라도 자본주의의 외피를 껴입고 있는 형국이다. 다만 종교와 문화의 영향, 그리고 반체제 인사들을 차단하고 처단하는 게 관건일 것이다. 물론 뭔가를 억압하고 차단하고 처단한다고 해서 그 싹이 사라지는 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누르면 누를수록 용수철처럼 머잖아 튀어오를 것이다.
마지막 남은 공산주의의 원조라 해도 과언이 아닌 북한. 우리와 한 형제 사이인 북한도 머잖아 수정 공산주의 체제를 도출해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김정은 체제 속에서 그 유형을 지금쯤 모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국을 그 모델로 삼고서 말이다. 하지만 중국 내에 있는 종교와 문화와 반체제 인사들이 문제이듯, 북한도 그들과 타협점을 찾아야 할지 모른다. 이 책은 그것들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지침이 된다. 공산주의 역사의 승리와 실패를 하나하나 더듬어 주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