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원짜리 얼음가루 커피의 경제학

[현장] 홍대 앞 '커피 전쟁'에서 살아남은 어느 토종 커피집 이야기

등록 2012.08.01 21:36수정 2012.08.0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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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커피 전문점들이 늘어선 서울 홍익대 주변. 가히 '커피 전쟁'을 방불케 한다. 최근에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카페까지 전쟁에 뛰어들었다. 이 틈바구니 속에서 한 중소 토종 카페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주변 학생들은 이곳을 홍대 앞 커피 '종결자'로 부른다. 이곳은 지난 4월 문을 연 G 테이크아웃 전문점(이하 G카페)이다.

G카페의 매장 크기는 26.4제곱미터(약 8평). 학기 중에는 매장 앞에 언제나 학생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김보민 G카페 대표는 "학기 중엔 하루에 최대 1000잔 정도 나간다"고 말했다. 몇 년째 인근 카페에 원두를 공급해 온 동업자 신기욱 로스팅마스터도 "홍대 테이크아웃 전문점 역사상 (단기간에) 가장 많이 팔린 것 같다"고 평했다. 이 카페의 맞은편에는 초국적기업 프랜차이즈 매장이 두 개나 있다. 어떻게 거대 자본에 밀리지 않고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프랜차이즈는 못 하는 디테일로 승부"

인기의 비결은 저렴한 값과 많은 양이다. 홍대 재학생 박성욱(26·남)씨는 "가깝고, 싸고, '벤티'(24온스·700ml) 사이즈도 있어서 학기 중에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찾았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에 다니는 김미소(24·여)씨 역시 "학교랑 가깝고, 싸고, 크기도 큰 데 혹해서 안 마실 것까지 더 마셨다"며 "같은 테이크아웃 목적이라면 맞은 편의 S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보다 G카페를 갈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이 가게의 '벤티' 컵은 S프랜차이즈에서 가장 큰 '벤티' 컵(590ml)보다 용량이 더 크다. 게다가 가격은 S프랜차이즈의 '벤티'가 4900원인 데 비해 G카페는 2300원으로 절반가량이다.

G카페의 '벤티' 사이즈와 S프랜차이즈의 '벤티' 사이즈 비교 왼쪽부터 G카페의 미숫가루, 아이스 아메리카노(벤티·24oz·700ml), S프랜차이즈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벤티·20oz·590ml)
G카페의 '벤티' 사이즈와 S프랜차이즈의 '벤티' 사이즈 비교왼쪽부터 G카페의 미숫가루, 아이스 아메리카노(벤티·24oz·700ml), S프랜차이즈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벤티·20oz·590ml)신한슬

이 카페 제품의 또 다른 특징은 '얼음'이다. 모든 음료 위에 곱게 간 얼음을 수북이 얹어준다. G카페에 "일주일에 두세 번 온다"는 조아무개(25·여)씨는 "얼음이 센스있다"고 말했다. 메뉴 개발자인 김 대표는 "고객이 낸 돈보다 더 가져가는 느낌, 덤을 받은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다 보니 얼음을 얹어주게 됐다"고 밝혔다.

"처음 테이크아웃 전문점을 낼 때부터 최대한 큰 잔을 선택했어요. 거기에 뭔가 덤을 주면서도 편리하게 테이크 아웃해 갈 만한 걸 찾았죠. '그럼 커피 위에 뭔가 올려볼까? 솜사탕은 어떨까?' 이런저런 시도 끝에 간 얼음에 이르게 됐어요."


신씨 역시 "손님 입장에서 기존 프랜차이즈 업체의 테이크아웃 커피를 살 때 '몇 모금 마시면 얼음만 남는다' '얼음이 녹을 때까지 기다려야 시원해진다'는 불만을 가진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우리는 마셔도 마셔도 아직도 많다는 느낌이 나게 만들자' '얼음을 갈면 표면적이 늘어나 빨리 시원해질 것이다'는 식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매장 내부
매장 내부신한슬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김미소씨의 경우 "얼음 덕분에 커피 맛이 쓰거나 떫지 않다"며 "오히려 순해서 좋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박성욱씨는 "다른 음료는 상큼하고 맛있는데, 크기가 커서 그런지 커피가 진하지 않은 편"이라고 평했다.


이에 대해 김보민 대표는 "얼음이 많이 들어가 맛이 옅어질까봐 커피 블렌딩·로스팅 단계부터 많이 연구했다"고 말했다. 다른 메뉴들 역시 진한 맛을 내려다보니 원가가 높아져 "사실 많이 팔아도 이익이 크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박리다매' 전략 덕분에 테이크 아웃 전문점에는 드문 충성도 높은 단골 고객을 다수 확보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평일 고객의 2/3는 단골 고객"이라고 한다.

이들은 프랜차이즈에 밀리지 않는 비결로 '디테일(섬세함)'을 꼽았다.

"우리 같은 작은 기업들은 소비자들하고 생활에서 현장에서 맞닿아 있다는 강점이 있죠. 그래서 소비자의 얼굴에서 반응을 살펴 즉각 레시피와 메뉴에 반영할 수 있어요. 시간 싸움에서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비해 유리해요." 

실제로 김 대표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면 일단 반값에 '풀어' 반응을 살핀다"고 한다. 히트 상품인 '간 얼음'과 '벤티 사이즈 컵' 역시 이렇게 고객의 욕구를 섬세하게 파악했기에 가능했다.

"언제 쫓겨날지 몰라... 자영업자도 '공동체 브랜드'로 뭉쳐야 산다"

이렇게 장사가 잘 된다 해도 홍대 앞 자영업자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건물주가 언제 임대료를 높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건물을 살만한 여윳돈이 없는 이상, 자영업자들은 항상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산다"는 것이 신씨의 말이다.

 G업체 김보민 대표(왼쪽)와 동업자 신기욱 로스팅마스터(오른쪽)
G업체 김보민 대표(왼쪽)와 동업자 신기욱 로스팅마스터(오른쪽)신한슬
이들이 생각하는 해결책은 자영업자들이 하나의 브랜드 아래 뭉쳐 '공동체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신씨가 운영하던 M카페의 간판을 내리고 동업을 결정한 이유도 "개인사업자 혼자서는 대형 프랜차이즈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점포 중 하나가 망해도 프랜차이즈 본사는 배부르게 유지되죠. 결국 개인사업자들도 뭉쳐야만 미래가 있다고 생각해서 몇 년 동안 쓰던 카페 이름을 버리고 G카페에 합류했어요."

김 대표는 "임대료 때문에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아무리 좋은 커피맛을 가지고 있어도 손님들이 지쳐서 카페를 떠난다"며 "여럿이 하나의 이름, 일종의 공동체 브랜드를 형성하면, 한 점포가 자리를 옮겨도 우리를 기억해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동체 브랜드가 성공적으로 형성되면 사업 안정성뿐만 아니라 고용 안정성도 높일 수 있다. 신씨는 "개인사업자 혼자서는 조금만 힘들면 직원을 내보내야 하지만, 공동체 브랜드가 되면 여러 협력업체에서 '고용 승계'가 가능할 것"으로 봤다. 현재 G카페는 매장과 로스팅업체를 합쳐 정직원 7명을 포함한 20명을 고용하고 있다. 신씨는 "최대한 안정적인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 개인사업자에게도 최선"이라며 "그 친구들(직원들)이 돈을 벌어야 돈을 쓰고, 그래야 우리도 먹고 산다"라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신한슬·박명본 기자는 <오마이뉴스> 16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신한슬·박명본 기자는 <오마이뉴스> 16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자영업 #프랜차이즈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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