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왜 멀쩡한 회사를 계열분리시켰나

[재벌개혁, 구체적으로 말하자②] 계열분리명령제·기업분할명령제 도입해야

등록 2012.08.06 16:49수정 2012.08.0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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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온 국민이 피부로 느낄 만큼 명확한데도 이에 대한 논의는 생산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전경련을 앞세운 재계는 헌법을 들먹이며 재벌개혁이 위헌이라고 반박한다. 어떤 이들은 재벌개혁을 무조건 재벌해체로 몰아가기도 한다. 이제 재벌개혁의 구체적인 방안을 두고 토론해야 한다. 무엇을 목표로 하여,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나 규제할 것인지에 대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 새사연이 먼저 재벌개혁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 기자말

지금 한국사회 재벌개혁의 핵심은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는 것이다. 경제의 각계 분야에서 재벌이 지닌 과도한 독점력을 해체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출자총액제한제, 순환출자 금지, 지주회사제도 강화 등 역시 재벌의 독점력을 억제하는 규제 방안들이다.

경제력 집중 해소, 사전적 규제만으로는 역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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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현대자동차 그룹 사옥, 삼성전자 사옥, LG 트윈타워 전경 ⓒ 오마이뉴스


하지만 이 제도들은 사전적 성격의 규제 방안이다. 따라서 이 제도를 도입하면 앞으로 재벌의 독점력이 더욱 강화되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이미 과도해진 독점력을 약화시킬 수는 없다. 물론 재벌 규제의 한 방안으로 이 제도들도 다시 부활시키거나 도입해야 한다. (현재 출자총액제한제나 지주회사제도는 규제 강도가 약화되었으며, 순환출자는 금지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삼성의 막강한 힘을 분산시킬 수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미 과도해진 독점에 대해서 사후적으로 규제하는 방안, 단순한 행태규제가 아니라 독점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 자체를 규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바로 계열분리명령제와 기업분할명령제이다. 이를 공정거래법 안에 신규로 제정해야 한다.

계열분리명령제는 지분매각을 명령하여 재벌의 계열사를 분리하는 제도이다. 기업분할명령제는 단일한 거대 독점기업을 쪼개도록 하는 제도이다. 너무 비대해져서 시장경제를 훼손한다거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경우 분리와 분할을 통해서 규모를 축소하도록 강제하는 제도이다.

이를 공정거래위원회가 직접 명령할 경우 명령제라 부르며, 법원에 청구하여 최종판단을 받을 경우 청구제라 부른다. 명령제로 할 것인지 청구제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향후 논의가 더 구체화되면 우리 현실에 더 적합하고 효율적인 방안으로 선택하면 된다.


현재 미국과 일본에 기업분할법이 존재한다. 그리고 사실 2003년 참여정부의 인수위원회에서 이 방안들을 매우 적극적으로 검토한 적이 있었다. 당시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완화된 형태로 이 방안들을 도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냈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시행되지 못했다.

미국 반독점 기업분할명령 시행 사례
- 석유왕 존 록펠러가 설립하여 미국 석유시장에서 점유율 90%를 차지했던 스탠더드오일(Standard Oil)은 1911년 33개의 지역회사로 분할되었다.


- 미국 담배시장 점유율 95%를 차지했던 아메리칸타바코(American Tabacco)는 1911년 16개의 지역회사로 분할되었다.

- 미국 알루미늄 독점생산 기업이었던 알코아(Alcoa)는 1945년 공장 설비 매각을 통해 3개의 기업으로 분리되었다.

- 미국 통신 독점기업인 AT&T는 1982년 시내전화사업부문을 7개의 지역회사로 분할하였다.

참여정부에서 도입 구상했으나 실행 못해

참여정부가 구상했던 것은 금융계열사에 국한한 계열분리명령제였다. 재벌의 지배주주가 금융계열사를 이용하여 시장의 공정성과 안정성을 교란하다가 적발되거나 그럴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재벌그룹에서 금융계열사를 분리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이제는 금융으로만 제한하지 말고 전 산업에 이 규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재벌이 골목상권을 해치는 대표적 사례가 빵집이었다면, 재벌이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투한 대표적 사례가 MRO(기업소모성자재)사업이었다. 재벌이 빵집이나 MRO 사업에 무분별하게 뛰어들 경우 해당 계열사를 분리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또한 금융, 보건, 사회복지 서비스 등 공익에 중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재벌이 마음대로 영향력을 휘두르게 놔두어서는 안 되는 분야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이런 사업에 뛰어들고자 한다면 재벌 계열사나 거대 독점 기업으로의 규모를 유지한 채로는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규제(홍명수 저, 2006)>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경우에 계열분리를 적용할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적용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개별 시장에서의 경쟁 제한성이 근본적으로 재벌 구조 및 집단적 행태에 기인하는 경우에, 개별 계열기업의 분리가 문제될 수 있으며, 재벌과의 관계를 차단하는 것만이 당해 시장에서 경쟁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 동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

"당해 계열 기업의 형태가 독점 규제법 제3조의 2에서 규정한 시장 지배적 지위의 남용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될 경우에, 동 규정에 의한 시정조치로서 계열기업의 분리를 명령할 수 있는지도 고려될 수 있다."

IMK가 2011년 말 삼성에서 분리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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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상반기 삼성은 아이마켓코리아(IMK)라는 계열사를 통해서 MRO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계열분리시켰다. 사진은 IMK 홈페이지. ⓒ IMK


그러면 어떤 방식을 분리 또는 분할할 수 있을까? 우선 주식 청산을 통해서 지분관계를 해소하는 방식이 기본이 될 것이다. 또한 일시적으로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미국에서 있었던 스태던드오일이나 AT&T의 기업분할은 주식교환과 매각을 통해서 진행되었다. 일본에서도 전후 재벌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주식 매각 방식을 사용했다.

멀쩡한 기업을 쪼개다니 너무 강압적인 방안이 아닌가 걱정할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서는 우선 이런 법안이 가진 잠재적 규율 효과를 이야기하고 싶다. 즉, 실제로 이런 법안을 적용되지 않더라도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재벌을 규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1890년 셔먼법에서 출발하여 가장 오래된 반독점법 역사를 갖고 있지만 실제 기업분할명령제가 실시된 사례는 많지 않다. 일본의 경우 1977년에 도입되었지만 아직 시행된 적은 없다.

두 번째로는 기업을 분할한다는 것은 시장 경제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분할과 합병을 반복한다. 물론 사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적 이해관계에 따라서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2011년 상반기에 삼성이 아이마켓코리아(IMK)라는 계열사를 통해서 MRO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국민 여론이 악화되고, 정부 차원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그러자 삼성은 IMK의 지분을 전량 매각하는 방식으로 계열분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2011년 말 IMK는 삼성으로부터 분리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재벌규제 #재벌개혁 #계열분리명령제 #기업분할명령제 #반독점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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