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조카의 '혼란', 리모델링 때문이었다

[서평] 최성애·조벽 교수의 <청소년 감정코칭>

등록 2012.08.09 10:26수정 2012.08.09 10:49
0
원고료로 응원
a 책겉그림 〈청소년 감정코칭〉

책겉그림 〈청소년 감정코칭〉 ⓒ 해냄

내 조카 녀석이 있습니다. 벌써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녀석이죠. '벌써'라는 말에는 그 동안 긴긴 세월 같은 힘든 과정을 헤집고 나온 까닭입니다. 녀석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2년 동안 정말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엄마와 다투고, 동생들과 싸우고, 혼자만의 방에 틀어박혀 온 밤을 지새우고….
그때 누나가 내게 이야기를 했죠.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그때 나는 김두식 교수가 쓴 책을 읽고 '지랄총량의 법칙'을 이야기해준 적이 있습니다. 사춘기 시절을 겪는 동안 청소년들은 걷잡을 수 없는 행동들을 한다는 내용이었죠. 그것은 잡으려고 해서 잡히는 게 아니라 가만히 내버려두면 스스로 조절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까지, 녀석은 스스로 조절케 된 걸까요? 누나는 그냥 조카를 내버려 뒀을까요? 아닙니다. 처음에는 야단도 치고, 소리도 쳤다고 합니다. 물론 매형은 점잖은 성격이라 조카의 성격까지 버릴까봐 뭐라고 나무라지도 않았다고 하죠. 자식교육은 엄마 몫임을 나로서는 절실히 깨달은 바였죠.


그런 조카에게 누나가 2년이라는 세월 동안 터득한 게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감성으로 대하는 게 그것이었습니다. 화가 나면 화가 난 상태로 조카를 받아주고, 또 즐거운 일이 있으면 즐겁게 조카에게 맞장구를 치는 것 말이죠. 누나가 조카와 동질감을 형성하면서부터 조카는 서서히 누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고, 지금은 한결 나아진 상태라고 합니다. 생각할수록 감사한 일이죠.

감정기복 심한 사춘기 청소년들을 대하는 방법

최성애·조벽 교수의 <청소년 감정코칭>도 바로 그런 깨달음을 얻게 하는 책입니다. '교사와 부모들을 위한 사랑의 기술'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현장에 있는 교사들은 물론이고, 가정 속에서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 아내와 남편을 위한 교육지침서입니다. 아이들, 특별히 감정기복이 심한 사춘기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그 실전을 다루고 있어서 참 좋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생각, 판단, 계획, 충동조절, 감정조절 등을 관장하는 전두엽은 사춘기에 대대적인 리모델링과 확장공사를 겪습니다. 집에 비유하자면 20평 아파트를 100평으로 확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요. 확장공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4학년 때까지 가완성된 전두엽으로도 학교와 집을 오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만, 성인이 되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복잡다단한 일들을 다면적으로 처리하려면 20평짜리 집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61쪽)

이걸 읽어보니 내 조카가 어수선하고 혼란스런 상태를 겪은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집도 확장공사를 하면 다 부수고 새로 짓듯이, 조카의 뇌세포 연결망과 뉴런과 시냅스들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새롭게 연결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밤에 늦게 자고 아침에는 또 늦게 일어났던 것이고요. 누나는 그런 조카의 단면만 보고 속상해서 울고, 또 소리쳐도 듣지 않아서 울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쓴 최성애·조벽 교수는 사춘기에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할까요? 무엇보다도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격려하라고 일러줍니다. 20평에서 50평짜리 집을 짓는 데도 다양한 건축자재와 도구들이 필요하듯이, 사춘기 아이들에게도 그런 경험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각자의 특성과 적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니, 더욱 생각해 볼 부분이겠죠.

집을 제대로 지으려면 건축자재와 아울러 제대로 된 설계도가 필요합니다. 신뢰감, 독립심, 겸손함, 현실감각, 자기통제력, 자아 존중감, 인성과 감성 개발 등이 모두 설계도에 들어가야 합니다. 굉장히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서 감정을 통해 아이에게 접근하면 그런 설계도를 그려줄 수 있습니다.(67쪽)


누나도 '감정코칭형 양육자'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정작 이 책에서 강조하는 '감정코칭'이란 뭘까요? 사춘기에 있는 아이들 혹은 많은 스트레스에 찌들려 있는 아이들, 왕따를 당하거나 학교를 떠나버리고 싶은 아이들, 심지어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깊숙이 파고들 수 있는 방법이 그것이라고 합니다.

일례로 성적이 떨어져서 대학을 포기해야 할 것 같은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도 그렇습니다. 그 상황에 직면에 있는 아이들은 정말로 심각한 고민을 안고 씨름하는 경우라고 하죠. 그때 대부분의 학부모나 교사들은 그런 네 가지 유형으로 대한다고 하죠.

그 첫째는 아이의 감정표현을 불편해하는 '억압형 양육자, 둘째는 아이가 원하는 바를 모르는 '축소전환형 양육자', 셋째는 아이가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방관형 양육자, 그리고 마지막은 이 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감정코칭형 양육자'입니다. 물론 그 유형들은 대부분 양육자 자신의 부모 대에서 물려받은 영향이 크다고 하죠. 그것이 양육자 스스로가 자신의 초감정을 지혜롭게 조절해야 할 이유라고도 하고요.

감정코칭은 5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단계는 '감정 포착하기', 2단계는 '좋은 기회로 여기기', 3단계는 '감정을 들어주고 공감하기', 4단계는 '감정에 이름 붙이기', 마지막 5단계는 '바람직한 행동으로 이끌어주기'입니다. 첫 세 단계는 큰 의미가 없거나 일반 상식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첫 세 단계를 얼마나 잘 실천하는가에 따라 감정코칭의 결과는 확연히 달라집니다.(155쪽)

감정코칭의 5단계는 이 책을 자세히 살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다만 그 실천에 있어서 다소 어려움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여태 해온 말과 태도들을 한꺼번에 바꿔나간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어쩌면 조카를 대했던 누나의 태도도 그랬었겠죠? 어렸을 적 고래고래 소리치고 입에 욕을 달고 살던 우리 엄마의 말투가 누나에게 고스란히 녹아 있었을 테니 말이죠.

그래도 우리 누나가 조카의 감정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단계까지 나아갔으니, 실로 대단한 변화이지 않을까요? 아직은 4단계라든지 혹은 5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앞으로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그 조카 밑으로도 세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더 있으니, 우리 누나에게 이 책을 권한다면 제법 '감정코칭형 양육자'가 될 수 있겠죠?

최성애.조벽 교수의 청소년 감정코칭 - 교사와 부모들을 위한 사랑의 기술

최성애.조벽 지음,
해냄, 2012

이 책의 다른 기사

4당5락! 우리 아이들이 아프다

#최성애?조벽 교수 # 〈청소년 감정코칭〉 #지랄총량의 법칙 #전두엽 #감정코칭 5단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4. 4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5. 5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