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깡패라지만... 난 선택지가 없다
 돈 벌어 다음 학기엔 공부만 하고 싶을 뿐"

[기획 : 나는 용역이다] ① 대학생 아르바이트

등록 2012.08.14 15:46수정 2012.08.1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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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택터스 폭력 사태는 오랫동안 곪아왔던 용역 폭력 문제를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정치권에서도 제도개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만,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용역의 세계를 좀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연재기획 '나는 용역이다'는 그렇게 마련됐다. 첫 순서로 용역 세계의 맨 하층인 아르바이트생의 목소리를 담았다. [편집자말]
a  지난 2일 오후 경기도 안산 SJM공장에서 용역업체 '컨택터스' 직원들이 철조망이 겹겹이 쳐진 정문안쪽에서 방패를 들고 서 있다.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일까?

지난 2일 오후 경기도 안산 SJM공장에서 용역업체 '컨택터스' 직원들이 철조망이 겹겹이 쳐진 정문안쪽에서 방패를 들고 서 있다.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일까? ⓒ 권우성


"저희와 맞서 싸우는 노조분들께도 죄송하고, 스스로 두려움을 만드는 선택을 한 제 자신에게도 미안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다음 학기에 학교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안산 반월공단 내 자동차부품업체 에스제이엠(SJM)에 투입된 용역경비업체 컨택터스의 폭력진압에 대한 뉴스가 연이어 터지고 있을 무렵, 한 인권단체에 이메일이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사설용역 업체에서 일하다 잠시 그만 둔 상태에 있는 대학생입니다"로 시작하는 이 이메일에는 거짓 모집공고와 급여 문제, 경비 이수증 문제, 근무형태의 문제, 욕설과 인권 침해 문제, 열악한 근무환경 문제 등 자신이 겪은 '용역 알바'의 세계가 묘사되어 있었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 두렵고 떨리면서도 답답한 마음이 역력했다.

그는 이번에 터진 SJM에 투입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같은 날 더 대규모로 용역이 투입됐던 만도(문막 공장)에 들어갔고 지금은 그만둔 상태다. A4 용지 5페이지에 이르는 이메일 말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다시 일을 구했고 일을 하러 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 일 역시 시설경비 용역입니다."

13일 밤 <오마이뉴스>는 부산에서 이메일 발신자를 만났다. 28살에 부산지역 대학 2학년인 늦깎이 대학생. 부산에 사는 그는 지난달 27일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에 집결했고, 인천 문학경기장으로 이동한 후, 다시 강원도 원주로 이동해 만도 공장에 투입됐다. 그리고 최근 일을 그만두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있었다. 약 열흘 사이 국토를 역삼각형으로 한바퀴 돈 그의 손에는 110만 원이 쥐어져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용역 일당 10만 원이 크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우린 용역깡패가 맞을 수도 있어요. 그렇게 칭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그런데 더 자세히 보면 좋겠어요. 스토리를 자세히 보면 좋겠어요.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있는 게 아니라 선택을 강요받는 거예요. 회사(용역업체)에서 '하기 싫으면 꺼져라'고 해도 포기할 수가 없어요…. 비난받아야 할 대상은 용역업체여야 해요. 나한테 돈 준 사람들을 비난하라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언론 보도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고민하지도 않았을 수도 있죠."

다음은 깊은 밤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인터넷 알바 공고 보고 지원... 노사분규 현장 투입인지 당일 알아

a  A씨는 "우리도 저거랑 같은 옷을 입었어요"라고 말하며 컨택터스 관련 뉴스 화면을 지켜봤다. A씨는 종종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찾아본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들리는 '용역깡패'라는 말이 A씨의 마음을 짓누른다고 했다.

A씨는 "우리도 저거랑 같은 옷을 입었어요"라고 말하며 컨택터스 관련 뉴스 화면을 지켜봤다. A씨는 종종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찾아본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들리는 '용역깡패'라는 말이 A씨의 마음을 짓누른다고 했다. ⓒ 정민규


- 언제 일을 시작했나?
"아르바이트 채용 공고 홈페이지에서 구했다. 인천과 부평의 시설을 보호하는, 경비랑 같은 거라고 했다.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 7월 27일 상암월드컵 경기장에 약 1500명이 모였다. 그 사람들이 각각 다른 회사로 분류됐고, 나는 지원가드로 갔다."


- 노사분규 사업장에 들어간다는 걸 전혀 몰랐나.
"집합 당일에서야 '노조를 막는 일'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싫은 사람은 가라고 했는데, 지방에서 오다 보니 갈 데가 없었다. (나 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서울 사는 몇 명 빼고는 다 남았다. 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이동하는데, 문학경기장에서 잠깐 멈추더니 강원도 원주시로 바뀌었다고 하더라. 원주시 문막동 만도 1·2공장 두 군데에서 정문과 후문, 옆문에 서 있었다."

-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됐는지.
"오후 1시~새벽 1시까지 번갈아 가며 일했다. 8시간 근무, 8시간 대기, 8시간 휴식을 한다. 대기도 근무다. 당시에는 노조가 휴가를 가서 없었는데 노조가 오면 대기하고 있다가 (근무조에) 합류한다. 일 자체는 고되지 않는데, 낮밤이 바뀌어서 생활하는 게 힘들다. 잠은 옥상에 있는 대강당 바닥에 침낭 깔고 잤다. 여태껏 본 침낭 중에 제일 얇았다. 에어컨을 틀어놓으면 추울 정도였다."

- 경비용역은 다른 것보다 일당이 높다던데.
"하루에 10만 원씩 준다고 해서 시작했다. 실제로는 하청업체냐 원청업체냐에 따라 급여가 달랐다. 집안 형편 때문에 예전에 공사장이나 발전소 막노동을 많이 했다. 많이 다치기도 했다. 하지만 하는 일에 비해 시급도 6만 7000원 정도로 낮다. 근데 용역은 10만 원을 준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일을 했는데, 이번에 돈 벌면 (학기 중에는) 공부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만 하고 싶다."

- 28살에 대학 2학년이면 늦은 편이다.
"돈 때문에…. 원래 다른 대학을 다녔는데 형편 때문에 그만두고 일을 많이 했다. 그때 포기했던 이유는 학비도 있고 생활비도 컸다. 자퇴하고 곧바로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에 막노동도 계속 했고, 옷 장사에 술집 아르바이트, 웨이터도 해봤다."

"이번에 돈 벌면 학기 중에는 공부만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 이번에 용역 일을 중간에 그만두게 된 이유는 뭔가.
"근무시간이 계속 늘어났다. 함께 일하던 40대 아저씨가 그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하니까 용역업체 직원이 '참견하지 말라'는 식으로 무시하더라. 욕을 하거나 비아냥거릴 때도 잦았다. (용역업체 직원들이) 별다른 이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뭐하고 살았냐'고 무시하고, 자기들 잘 때 문 여는 소리에 깬다며 욕하기도 했다. 아르바이트생들을 (경비) 세워놓고, 직원들은 들어가서 자거나 게임하며 쉬었다. 폭력은 없었지만 '패야 한다, 때릴 거다'란 얘기도 많이 했다. 그런 비인격적 처우 때문에 다들 나가려고 했다. 대부분 8월 8일 그만뒀다. 나도 여유가 있었다면 (진작) 그만뒀을 것이다."

- 마음이 불편하거나 스트레스가 컸나 보다.
"그렇다. 그런데도 또 (원서를) 넣어놨다. 남은 방학 기간에도 일을 해야 한다. 대기하고 있다가 연락이 오면 가야 한다. 이번에 가면 250만 원 정도 모을 수 있다. 안 가면 생활비를 마련 못하니까…. (용역 아르바이트하는) 애들 대부분이 그럴 거다. 우리끼리 뉴스 찾아보면서 '사람들이 우리들 보고 용역 깡패라고 하네'라고 이야기한다. 애들이랑 인천공항 매각 같은 사회 문제도 대화했다. 생각 없는 애들이 아니다. 다른 일에 비해 돈을 많이 주니까 용역을 선택한 거다."

- 새로 일하게 될 곳에서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을텐데.
"전문 용역들이 맨 앞줄에 있고, 나 같은 아르바이트생들은 뒤에서 인원수를 채워준다. '공장 뺏기(노조가 농성 중인 공장을 용역업체와 사측이 점거하는 것)'는 전문팀이 따로 있다. 그 사람들은 돈을 더 받는다. 뒤에서 막는 사람들은 30~40%가 대학생이다."

- 이명박 대통령도 그렇고 '만도는 귀족노조'란 사람들도 있는데 본인 생각은 어떤가.
"(만도 직원들은) 귀족노조가 맞는 것 같다. 그 사람들 일하는 건 못 봤는데, 2교대로 돌아간다고 들었다. 그런 환경 때문에 돈을 올려달라는 요구는 할 수 있다. 하지만 9000만 원은 많은 것 같다. 금속노조 자체도 너무 폭력적이다. 용역회사에서는 노조가 각목과 파이프 들고오면 맞서지 말고 도망가라고 했다. 막지도 말고. 그런데 그 사람들이 조롱을 한다. 동영상을 보거나 경험자들 이야기 들으면 부모를 욕하거나 뭔가를 집어던지기도 했다더라."

- 하지만 SJM 사태 계기로 용역을 비판하는 언론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린 용역깡패가 맞을 수도 있다. 그렇게 칭하는 게 맞는 거 같다. 그런데 더 자세히 보면 좋겠다. 스토리를 자세히 보면 좋겠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있는 게 아니라 선택을 강요받는다. 회사(용역업체)에서 '하기 싫으면 꺼져라'고 해도 포기할 수가 없다. 원주까지 갔는데, 하지 말라는 얘기 들었다고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 말 듣고 돌아가면 챙겨가는 돈도 없고, 교통비도 못 건진다.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사는 게 힘드니까…. 거기 있던 분들 대부분 그랬을 거다. 비난 받아야 할 대상은 용역업체여야 한다. 저한테 돈 준 사람들을 비난하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언론 보도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고민하지도 않았을 거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있는 게 아니라 선택을 강요받는다"

a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용역폭력 피해자 증언대회'에 참석한 SJM과 유성기업 노조원들이 사측에서 동원한 용역폭력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조합원들의 실태를 토로하고 있다.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용역폭력 피해자 증언대회'에 참석한 SJM과 유성기업 노조원들이 사측에서 동원한 용역폭력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조합원들의 실태를 토로하고 있다. ⓒ 남소연


- 학교 다닐 때는 시간이 없을 텐데, 아르바이트는 어떻게 해왔나.
"주말마다 막노동하고, 평일엔 오전 6~11시 동안 물건 나르는 일 하다가 아는 형 집에서 씻고 바로 학교로 간다. 학교에서 틈틈이 잔다. 보통 4~5시간 자는데, 만도에 있을 때는 하루에 2시간 잔 날도 있고, 밥 한 끼만 먹을 때도 있었다. 샤워하기도 어려웠다."

- 필요한 만큼 돈이 모이면, 용역 일을 그만 둘 생각은 있나.
"그래도 일은 해야 될 것 같다. 돈이 있으면 쓸 수 있어서가 아니라 잔고가 있는 통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안정적인 느낌이다. 이번에 일해서 110만 원 모았다. 지난해에는 장학금을 받았는데, 올해엔 못 받아서…."

- 일하면서 공부하려면 시간이 별로 없을 텐데.
"이틀 동안 안 잘 때도 있다. 자더라도 눕지 않는다. 그래야 빨리 일어난다. 공부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돈 적게 내려고 하는 거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니까 안 잘 수는 없더라. 막노동 할 때는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끝나고 집에 오면 꼭 술을 먹어야 했다. 안 그러면 몸이 너무 아프니까, 새벽 1~2시까지 술 마시다가 들어와서 자고, 일어나서 또 일하고. 학교 가기 전에는 그랬다."

- 바라는 게 있다면?
"예전엔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인문학 공부를 해서 책도 쓰고 싶었다. 근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일하면서 (세상의) 어두운 면을 많이 봤다. 술집이나 막노동하면서 보는 게 밝은 게 없다. 그래서 직업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

"꿈? 예전에는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다면, 일 대신 해보고 싶은 건?
"… (한참 고민하다가) 여행을 한 번 가보고 싶다. 친구들이 '미국 가기 전에 연락한다', '터키에 있어서 전화 못 받았다' 하면서 연락하면 짜증도 난다. 나는 막노동한다고 전화를 못 받는데…."

- 여유가 없어서 취미생활도 어려울 듯하다.
"운동을 했는데, 취미로 유지하고 싶어도 어렵다. 바짝 벌면 클라이밍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복싱도 잠깐 했다."

- 돈을 벌어서 스스로를 위해 무언가를 사본 적이 있나?
"없다. 코트 하나 정도? 옷을 사도 다 벌어서 사야 하니까."

"우린 용역깡패가 맞을 수도 있다"는, "지금은 꿈이 없다"는 그는 가난에 시달리는 20대 젊은 대학생이었다. 인터뷰 내내 그는 힘들어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잠시 눈을 부친 뒤 또 신문배달을 나간다고 했다. 내일이라도 당장 용역회사에서 연락이 오면 그는 바로 짐을 싸고 집을 나설 것이다. 일당 10만 원을 위해, 등록금과 생활비에 쓸 250만 원을 모으기 위해.

a  13일 <오마이뉴스>가 만난 A씨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불안한 내일은 또다른 용역 현장으로 그를 내몰고 있었다. 남들 처럼 토익공부를 하고 여행도 다녀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언제쯤 이뤄질까?

13일 <오마이뉴스>가 만난 A씨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불안한 내일은 또다른 용역 현장으로 그를 내몰고 있었다. 남들 처럼 토익공부를 하고 여행도 다녀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언제쯤 이뤄질까? ⓒ 정민규

#용역 #용역깡패 #컨택터스 #S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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